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성미니멀 Jan 24. 2023

냉동실 추위 헤치고 출근하려니

안 그래도 가기 싫은데 춥기까지 하면 어떡하나

 "휴일에 충분한 휴식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일터에 나가 보람찬 하루를 보낸다."

 이런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객관적 사실은 남들보다 더 오래  것이나  "으응? 내가 언제 쉬었다고?" 되묻고 싶다. 전혀 쉰 것 같지 않고 출근을 앞두고 에너지는 방전 상태다. 휴일이 시작했을 때도 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마지막 날이고 심지어 이제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아주 언짢다.

 안 그래도 가기 싫은데 북극 한파는 무슨 말인가.

 게다가 내일 아침 근길이 절정이란다. 아. 이럴 수가.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어도, 바닥에 꽃이 가득 깔려 있대도 가기 싫을 것을. 

 영하 18도라니. 우리 집 냉동실 온도 아닌가! 아. 냉동실 안을 걸어 다니는 것은 얼마나 울 것인가.


 이럴 때는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 부럽다.

겨울잠을 자기 직전의 곰 사진이 인터넷 유머 게시판에 돌아다녔나 보다. 어디 하나 둥글지 않은 곳이 없는 저 반질반질한 몸뚱아리를 보니 혹시라도 자다가 배가 고플까 봐 착실하게 먹고 포동포동 몸을 찌워놓은 정성과 노력이 흐뭇해 웃음이 난다.

 야식 덕에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었는데 나도 이 상태로 동면에 들어간다면 상당히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아무 쓸데없는 계산을 해 본다.

 밖에 나가기 싫으면 내킬 때까지 마음껏 집 안에 머물러도 되는 자유.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고는 이런 자유가 허락되는 날은 참으로 드물다.

 오랜 기간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를 갔고 아르바이트를 위해 나갔으며 매일매일 나가야 하는 직장 생활을 위해  굳이 돈을 들여 또 수업을 듣고 공부를 했다. 취업 후에는 뭐 말 다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못 나간 기간은 있었지만 이건 내 의지가 아니었고 아이가 조금 커서부터는 놀이터는 물론 동네 구석구석을 행군하듯 걸어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돈을 벌기 위해 매일 회사를 간다.


 대학교 1학년 때 비가 많이 온다고 학교를 가지 않은 적이 몇 번 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분명 우산을 썼는데도 온몸이 다 젖고 한 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종아리 뒷부분에 빗물이 튀기는 게 정말 싫었다.

 -아. 현재형이다. 정말 싫다. 어딘가 안에 들어있을 때나 비 오는 게 운치 있는 거지, 비 오는 날 돌아다니는  딱 질색이다.

 심하게 비가 내리면 '아 정말 나가기 싫다.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학교를 안 갔는데 아주 대담한 척 객기를 부렸지만 마음 한 구석의 소심함 때문에 솔직히 몹시 개운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훗날 학점관리를 하며 그런 방탕한 날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루기도 했다.


 집 안에 있는 것이 딱 체질에 맞다.

 며칠 밖에 나가지 않아도 전혀 답답하지 않다. 심지어 코로나 확진으로 자가격리 됐을 때에도 아픈 게 힘들었지 나가지 못해 괴롭지는 않았다. 괜히 히키코모리라고 하는 게 아니다.

 주말이나 연휴에도 가능하면 집 안에 가만히 있고 싶다. 봄과 가을의 화창한 날에는 날씨를 누리겠다는 욕심에 나가거나, 운동을 위해 걸어야겠다는 굳은 의지로 을 일으키는 거다. 집 안에 있기 답답하니까 나가야지 이런 건 절대 아니다.  


 히키코모리는 집에 가만 들어앉아 하루 종일 음악을 듣고, 시간이 흐르면서 해가 드는 창이 바뀌고 볕이 들어오는 길이 변하는 것을 보는 게 좋다. 중간중간 커피를 내리고 연필을 깎고 물을 끓이는 것이 즐겁다. 밥 먹는 것도 귀찮지만 정직한 배가 꼬르륵 소리를 내면 아주 게으르게 냉동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책 보면서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떠먹으면 그게 최고다.

 아무리 이렇게 집에 있는 것이 좋다며 몸부림을 쳐 봤자 내일 아침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나서 샤워를 하겠지. 이렇게 추운 날 덜 마른 머리카락이 얼면 큰일이니 꼼꼼하게 드라이를 하고 있을 게 뻔하다. 더욱 슬프게도 회사에 가서는 마치 연속해 일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일을 시작할 테다.  


 그래도 여전히 내일 아침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


 이번 주말은 미리 단단히 계획을 세우고 실천자.

  안에 코옥 박혀 최선을 다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겠다.

 



커버사진출처 https://naver.me/5vYxBRS0

매거진의 이전글 순간 이동하는 까만 날벌레의 정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