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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Feb 28. 2023

신발이 사라졌다

 신발이 사라졌다.

 요가 수업 시작 전에 분명히 신발장 제일 칸에 슬리퍼를 넣었는데 없다. 내가 자리를 착각한 걸까. 그러나 그다지 크지 않은 신발장 어디에도 내 신발은 없다.

 발이 커서 사시사철 슬리퍼를 즐겨 신는 지인의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식당에 슬리퍼를 신고 가면 화장실 갈 때 쓰라고 비치해 놓은  줄 알고 사람들이 신고 다닌단다. 그러나 주위를 살펴보아도 같이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이 모두 제 신을 신고 나갈 때까지 기다려도 내 신발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나간 빈 신발장에 나의 슬리퍼와 몹시 비슷하게 생긴 신발이 덜렁 남겨진 것을 발견한다. 아. 그제야 이유를 알겠다. 브랜드마다 비슷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어내는 신발이었다. 내 슬리퍼는 위에 아무 무늬가 없는데 남 슬리퍼 위에는 브랜드 로고가 새겨있다. 잘못 신고 갔을 누군가가 알아채고 다시 돌아올까 봐 한참을 기다렸는데 오지 않는다.


 하릴없이 그 신발을 신고 왔다. 신발은 나에게 터무니없이 작았다. 뒤가 뚫렸으니 발은 들어갔지만 발 뒤꿈치 끝 부분은 공중부양을 한 채로 집까지 왔다. 슬리퍼가 벗겨질까 힘을 주고 걸었더니 발목이 욱신거렸다.


 잘못신고 간 누군가에게 내 신발은 엄청 클 텐데. 신발 안에서 발이 돌아다닐 거다.

 어떻게 착각하고 까지 갔다 해도 이내 발견하고는 내 신발을 갖다 두고 본인의 신발을 가지러 올 것 같다. 주말이 껴 다음 수업까지는 텀이 길다.  집에 오자마자 쇼핑백에 신발을 넣고 요가하는 곳까지 다시 가서 신발장에 아마 신발을 잘못 신고 가신 것 같다는  쪽지와 함께 신발을 두었다.


 슬리퍼가 없으니 상당히 불편하다. 쓰레기 버릴 때, 분리수거할 때처럼 집 앞에 잠깐씩 나갈 때마다 발만 쓱 집어넣어서 신고 다녔는데 매번 허리를 숙여 운동화를 신고 나갔다 오려니 귀찮다. 슬리퍼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당장 돌아올 것 같았던 슬리퍼는 그러나 계속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요가를 갈 때마다 매의 눈으로 신발장을 샅샅이 훑었지만 보이지 않았고 내가 갖다 놓은 슬리퍼도 그대로 있었다. 쪽지만 어디로 사라졌다. 슬리퍼 하나 때문에 어디 물어보기도 귀찮고 또 딱히 어디에 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면서 4주 차가 됐다.


 계단을 오르는데 내 앞에 나의 슬리퍼로 추정되는 신발을 신은 분이 올라간다. 몸은 계단을 오르고 있지만 눈은 슬리퍼만 훑어본다. 모양도 무늬도 색깔도 때가 탄 정도도 이건 분명 나의 슬리퍼다.

 요가 수업에 100퍼센트 집중을 해도 동작을 쫓아하기에 무리가 있는 수준이면서 머리 한쪽에서 뭐라고 말을 해야 기분이 상하지 않고 간결하게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한다. 아 일단 요가에 집중을 하자! 이래놓고 또 신발 생각을 하고 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신발장 앞으로 튀어 나가 대기를 한다. 내가 신발을 자주 두던 그 자리에 나의 신발이 있다. 아 이분도 이 자리를 애용했나 보다. 드디어 그분이 나와 내 신발을 집는다.


 전에 갖다 둔 신발을 보이며 혹시 이 신발주인이 아니시냐고, 지금 신은 신발은 아무래도 내 신발 같은데 4주 전쯤 신발을 바꿔서 신고 가신 것 같다. 그날 바로 갖다 두었는데 못 보신 것 같다 주절주절거리자 그분은  아주 평화롭고 느긋한 말투로 "아-그래요?" 하시며 본인의 신발을 가져간다. 그분의 일행이 "어머, 몰랐어? 발 사이즈가 같아?"물으니 "또 느릿한 조용한 말투로 "응, 많이 크더라고~" 하며 천천히 돌아가셨다.


 되찾은 신발을 신고 오는데 그분의 화법을 곱씹게 된다. 마치 딱히 관심 없는데 누군가가 어제 봤다는 드라마의 줄거리를 이야기할 때 나오는 참으로 담담한 리액션. 같았으면 신발을 바꿔 신고 갔다는 그 시점부터 너무 죄송하다 랩을 하기 시작해서 4주 단어에는 이미 머리는 하얘지고 할 말 안 할 말 천지분간 못하고 나불거리고 있었을 게 틀림없다.

 부럽다. 저런 화법 나도 배우고 싶다.


 버스를 타면서 목적지를 이야기하면 버스기사님이 그에 맞는 요금을 찍어주던 시외버스가 얼마 전부터는 모바일앱으로 예매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바뀐 직후에 예매를 못했다는 승객에게 기사분은 승차가 되지 않는다며 정류장에 있는 기계에서라도 예매를 하고 오라 하신 것도 보았다.


며칠 전 같은 버스를 타고 오는데 유난히 예매를 못했다는 사람이 많다.


 큐알코드를 찍는 대신 행선지를 말한 첫 남자에게 기사는 "미리 예매를 하시라고요!" 하며  큰 소리를 내고 남자는 '네네, 알겠어요' 짧게 답한다.


 두 번째 여학생에게 기사는  똑같이 "모바일앱으로 예매를 하고 타야 된다고요!" 소리를 치자 여학생은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급해가지고, 죄송합니다." 했고 기사는 원래 태울 수가 없는 건데 내가 지금 태워는 주지만 예매를 해야 한다. 학생 할인을 받으려면 미리 앱으로 예매를 해야 하지 않겠냐며 계속해서 화를 내시고 여학생은 계속해서 아 네네,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세 번째 여자가 행선지를 이야기하자마자 기사는 "모바일로 예매를 하고 타야 해요!" 소리를 치고 바뀐 제도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려는데 여자는 말을 딱 끊고 재차 행선지만 짧게 이야기한다. 기사님에게 딱 좌석번호만 안내받고 자리에 온 여자를 흘끔 보았는데 이어폰은 없다.

 결국 가장 미안해하고 반복해서 죄송하다 표현한 그 여학생이 가장 크고 긴 질타를 들었다.


 이전 기사님처럼 무조건 안된다고 하지 않고 일일이 행선지를 찍어 태워주고 설명까지 해준 기사분도 분명 고마운 분이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그냥 안되니까 표를 다시 끊어오라고 한 그 기사님보다 결과적으로는 더 큰 소리를 내게 되었다.


 뭔가가 불합리한 것 같은데 또 이게 너무 자주 보이는 현상 같단 말이다.


 방학중에도 매일 출석해야 했던 나름 위계질서를 따지던 그 옛날 대학교 동아리 시절에도 그랬다. 화가 난 선배들의 전화를 받고 학교로 다시 나온 우리들은 땡볕에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돌았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라고 말로도 수십 분 깨졌다. 그러나 그냥 전화를 받지 않고 전원을 꺼두었다가 며칠 후 나타난 동기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순간 저 사람 마음도 불편하고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나 보다를 헤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래 너도 네 잘못을 아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당해봐라 하는 마음으로 더 큰 분노를 표출하고,  몇 번 당하니까 이제 잘못한 걸 알아도 미안하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 사회.


 반복되어 익숙하다. 그런데 매번 씁쓸하다.




이미지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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