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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Apr 12. 2023

텔레비전 앞에서 세월을 말하다

 아이돌은 시작하지 말자.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 없게 된 지 이미 오래다.


 드라마를 보면서 어느 순간 주인공들은 다 모르겠고, 주인공들의 엄마 아빠로 나오는 사람들이 익숙하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 이름이 한 번에 떠오르냐면 그것도 아니다. 저 사람 예전에 어디 나왔던 사람인데! 하지만 그 어디가 어디인지가 가물가물거린다. 왜 그 누구 있잖아. 그 사람이랑 같이 나왔잖아. 그래놓고 그 상대방도 얼굴만 동동 떠 다니고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용케 바로 떠올랐다 해도 다른 성을 갖다 붙인다. 뭔가 어색한데 싶어 찾아보면 김 씨가 아니고 이 씨다. 아무리 애써도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그 사람과 저 사람이 연인으로 나왔던 그 예전 드라마 이름을 겨우겨우 기억해 내 검색을 했더니 핵심 단어만 맞뒤 서술어가 다르다. 이런 허접한 검색어에도 그 드라마를 떡 하니 띄워주고 심지어 거기 등장했던 사람들을 촤라락 정리해서 보여주는 검색엔진이 그저 고맙다.


 지금은 주인공의 엄마로 나오지만 예전에 내가 열심히 봤던 드라마에서는 이 사람이 현재 그녀의 딸처럼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과 사랑에 빠져 가슴 아파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그때 그녀의 얼굴에 물을 뿌려대던 상대편 엄마는 요새 안 보이나 검색해 봤더니 이런... 돌아가셨다. 지금 화면에 나오고 있는 저분도 돌아가셨는데. 그 숫자가 상당하고 아직 가실 나이가 되지 않았는데 불의의 사고로 가신 분들이 보이면 마음이 그렇다.

네이버이미지검색 후 편집

 지금 창가에 곱게 모셔져 있는 우리 집 텔레비전은 제조사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며 인터넷티브이도 가입하지 않고 넷플릭스도 티빙도 구독하지 않는 우리 집에 예능과 드라마를 선사했다. 최근 방영한 프로그램과 더불어 학교 다닐 때 방영했던 드라마가 나오고 예능이나 다큐, 시사 프로그램도 아주아주 오래된 회차와 최근 회차가 뒤섞여 나오며 한 자리에서 수십 년의 간극을 체험한다.


 바로 앞 채널에서 공유 배우가 8년 전 촬영한 도깨비가 나오는데 그다음 채널에서 그가 17년 전 등장한 커피프린스가 나오는 식이다. 그 사이 최근의 광고까지 나오면 한 사람의 17년 변천사를 10분 안에 모두 목격할 수 있으며 감탄과 신기함을 포함한 여러 감정들이 교차한다.

  

 그 많은 프로그램 중에 그것이 알고 싶다를 또 열심히 찾아본다. 지금 김상중 배우 이전에 문성근 배우와 진영 배우가 진행하던 회차까지 나온다.(정진영 배우의 얼굴은 또렷이 기억나는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 '약속'을 검색해서 등장인물을 조회하고 거기서 그의 이름을 확인해 썼다. 아... 앞부분에 말한 것이 바로 이런 거다)

네이버 이미지 검색과 쿠팡플레이 재생화면 촬영 편집

 같은 김상중 배우가 진행하는데 어찌나 젊으신지 감탄이 나온다. '와 진짜 젊다' 소리를 육성으로 내뱉는다.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표창원 교수와 이수정 교수마저도 젊으시다. 계속해서 나오는 젊다, 어리다, 어머어머 소리에 아이도 자꾸 화면을 들여다보며 와 정말이네, 젊다 젊다 이런다.


그러더니 카메라 앞에서 사건 개요를 설명하는 형사를 보며 아이는 말한다.

"와 이 형사, 진짜 젊네. 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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