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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Jul 21. 2022

20평을 줄여 이사왔다

작은 집을 예찬하지는 않습니다만

 20평을 줄여 이사 왔다. 아주 큰 집에서 보통 집으로 줄여 온 게 아니라 30평대에서 10평대로 줄여왔다. 미니멀 라이프의 경지에 올라 간소한 삶을 위해 집의 크기를 줄인 거라면 폼이 났을 텐데 비자발적인 선택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하나도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였다.


 이사를 결심하고 '작은 집', '작은 집 인테리어', '평수 줄여 이사' 등으로 검색을 시작한다. 제목에 '작은 집'이 들어간 책을 쌓아놓고 보고, 밤마다 남의 집 사진을 그렇게 들여다본다. 자꾸 20평대 집이 나온다. '아니 인간적으로 20평대 후반은 작은 집이라고 하지 말자!' 혼자 이런다. 사람이 이렇게 옹졸하면 못쓴다. 10평대 인테리어 사진은 대부분 혼자 사는 사람들의 집이다.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꾸며져 있거나 아니면 정말 미니멀 라이프의 진수 같은 모습이다. 10평대에 아이가 있는 집 사진은 찾기 힘들다.


 생활을 위한 필수품을 제외하고 어른의 물건은 그렇게 많지 않다. 옷도 신발도 다른 사람에 비하면 적다. 하지만 아이의 물건은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일단 책상과 책, 어느 정도의 장난감은 필수다. 아이 책은 아무리 줄여도 너비 2미터의 책장에 꽉 찬다. 많이 정리했다 생각한 어른의 책은 두고두고 보고 싶은 책 10권 미만으로 추려진다. 모든 물건이 이렇다. 무엇을 버릴까를 고민하면 안 되는 거고 뭘 가져갈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망가지거나 고장 나면 냉장고, 세탁기 이 정도 필수 레벨이 아니면 제 미련 없이 버려지는 거다.


 이사 다가올수록 우리 집의 물건들은 비워다. 침대, 큰 소파, 식탁, 책장 세 개, 책상 두 개,  체어 두 개, 서랍장, 화장대, 소파의자, 레인지 수납장 같은 큰 물건부터 작은 물건들까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니 막판에는 집안이 울린다.


 큰 집에 있는 붙박이장과 수납장의 수를 세본다. 이사 갈 집의 그것들의 수를 세본다. 여기서 4분의 3만 비우면 다 넣을 수 있다. 긍정적 계산법이다. 일부러 수납장 물건을 다 빼 몇 개의 수납장에 몰아넣어보면서 시뮬레이션까지 거친다.


 휑한 집을 보고 오늘 일찍 끝나겠다며 좋아하던 이사업체는 작은 집에 와서는 넣을 데가 없다며 난감해한다. 이곳의 수납장은 개수만 은 게 아니라 크기도 작다는 걸 계산 못했다. 결국 바닥에 수납박스들이 줄줄이 놓인다. 비웠다 해도 두 개 화장실에 나뉘어 있던 짐들을 넣기에는 화장실 수납장이 너무 작다. 이사가 끝났는데 세면대에는 두루마리 휴지들이 예쁘게 들어있다.


 왜 작은 집 사진을 찾기 힘든지 이사 후에 깨닫는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 전경을 찍는데 몇 발짝 뒤로 무르니 벽에 닿는다. 공간이 작으니 이 정도 정리정돈쯤이야 금방 할 수 있다 하고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할 게 많다. 여기 넣었던 걸 다시 빼 저기 넣기를 반복한다.

 

 이사 초반에는 매일 일이 많다. 분명 내가 읽은 책들에서는 작은 집에 오면 집안일이 확 줄어들어 시간과 체력이 남는다 했거늘, 이건 뭐 외출해서 옷이랑 가방만 잠깐 바닥에 벗어두면 집이 지저분하다. 싱크대가 좁아 컵 몇 개만 올려놓아도 요리할 때 번잡하다. 싱크볼이 작으니 한 끼 먹은 것만 넣어도 수북이 쌓인다. 줄어든 용량의 가전은 많이 들어가질 않으니 자주 돌려야 한다. 어느 순간 보니 쉴 새 없이 정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집은 더 간소해다. 꼭 필요하다 싶어 갖고 왔던 소가구비우고, 물건도 더 비운다. 물건을 켜켜이 놓이면 꺼내기 불편하니 잘 버린다. 1cm의 빈 공간이 소중하다. 물건 사는 데 이렇게 신중했던 적이 있었던가. 물건을 새로 들여 느끼는 기쁨보다 비워내 공간을 얻을 때의 만족이 더 커지는 날이 내게도 오는구나.

 지내다 보니 청소기 한번 들고 온 집안을 돌아도 주행 거리가 짧다. 특히 걸레질할 때는 이 정도 사이즈가 딱이다 싶다. 늘 치우기 힘들었던 화장실 구석까지 샤워 물줄기가 닿는다. 큰 집에서 모니터냐고 종종 의심받던 텔레비전은 의자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니 실감 나는 화면을 선보인다. 온 집안에 쓰레기통을 하나만 놓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오디오 볼륨을 조금만 키워도 서라운드 시스템 안 부럽다. 많은 가구를 비웠지만 다기능을 하는 몇 개의 가구로 커버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집 안 어느 한 공간도 허투루 쓰이는 데가 없다. 큰 집의 방 하나는 물건을 가지러 왔다 갔다만 었는데 여기는 참 구석구석 알차게 쓰인다. 수시로 치우긴 하지만 조금 치우면 금방 깨끗해지니 부담이 없다.


 이사를 하고 나니 너무 과하게 걱정했나 싶다. 작은 집으로 이사 다고 가구를 머리에 이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집안에서 까치발로 다녀야 하는 것도 아니며, 서서 밥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물건을 더 줄였지만 공간이 작으니 휑하지 않아서 성격이 덜 이상해 보인다. 20평을 줄여 와도 괜찮다. 작은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아늑함도 있다.


 경계성 미니멀나는 책 제목처럼 작은 집을 예찬하며 더 작은 집으로 갈 생각은 못하겠다. 더 큰 집으로 갈 수 있으면 갈 테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오늘 하루를 보내는 이 작은 집에서 나는 지금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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