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를 키우면서 미니멀 라이프를 꾸리는 분들의 글을 보면 참으로 감탄스럽다. 아이가 어렸던 때가 내 인생 최대의 맥시멀 시기였다. 아이 물건에는 '필수'라는 것은 왜 그다지도 많고 부피는 또 왜 그렇게 큰 건지. 그렇다고 또 그런 것 다 필요 없으니 내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겠다는 강력한 소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것만 산다 했는데도 아이 집에 어른이 세 들어 사는 모양새였다.
지금도 아이 물건이 많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이 줄었다. 미니멀 라이프 근처에라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이가 많이 자란 덕이다.
대학 동기 중 하나가 휴학을 하고 대형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일을 했다. 다른 코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매대 정리해놓고 또 다른 일을 하러 가고 하지만 장난감 코너는 매대를 거의 떠날 수가 없단다. 방금 각 잡아 정리하고 돌아섰는데 단 한 명이 상자를 몽땅 다 바닥으로 내팽개쳐놓고, 수습해 놓으면 또 다른 아이가 아이스크림 묻은 손으로 장난감 상자들에 쓰윽 손자국을 내놓는 통에 바닥에 쭈그려서 상자를 닦는 것이 무한 반복이랬다. 어느 날은 아이가 매장 바닥에 쉬를 몽땅하고 가서 그걸 치우고 왔다며 "제발 13살까지 애들을 인큐베이터에서 키우자"라며 울부짖었다. 그때는 그 표현이 그저 웃겼지만아이를 키우면서 대형마트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장난감 상자들을 보면 이걸 몇 번을 다시 쌓은 걸까 싶었다.
어린아이를 키우면서는 미니멀 라이프는 고사하고 청소가 된 상태로 집을 유지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 여기 정리하고 뒤돌아서면 이미 저기에다 저지레를 해놓았다. 아이 손 높이의 가구 표면은 묘하게 늘 끈적거린다. 아이들 손에는 끈끈이가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를 의심한 지는 오래됐다. 육아 서적에서는 창의력 발달을 위해 최대한 많이 만지고 던지고 주무르게 두라는데 아무리 큰 매트를 깔고 시작해도 꼭 밀가루는 매트 밖으로 던진다. 치우다 보면 결국은 또 놀아달라는 아이에게 '잠깐만 잠깐만'을 외치고 이미 지친다. 그 사람들은 치워주는 사람이 따로 있었던 거 아냐? 하는 못난 생각을 하고 있다. 결국 그런 건 나에게는 무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집에서는 하지 않았지만, 지저분한 것에 무뎠다면 아이를 좀 더 자유롭게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 많이 자랐는데도내 아이는 손 씻고 오라고 하면 세균에 물만 주고 온다. 물 주고 나온 손으로 끈 욕실 스위치에는 회색 손가락무늬가 있다. 놀이터에서 놀고 들어온 흙투성이 발에도 물만 묻히고 나와 돌아다니니 발자국으로 한눈에 동선을 파악할 수 있다. 차라리 물을 안 묻히면 나은데, 그렇게 물 묻은 까만 발자국은 끈적거리고 잘 지워지지 않는다. 계피 에탄올을 뿌려 가며 바닥을 닦아야 하는 이유다.
집 정리를 마치고 이제 글을 좀 써 볼까 하면, 야식으로 컵라면을 먹어야겠다면서 라면 수프 반은 바닥과 소파에 흘리고 반만 넣는다. 이러니 라면이 싱거울 수밖에 없다. 청소 따위로 아이를 나무라지 말자며 매일 도를 닦지만 소파 직물 사이사이 낀 라면 수프를 치우며 잔소리가 나온다. 그래 놓고 자기 전에는 또 반성한다. 이놈의 잔소리-반성 굴레.
발도 신났다
새로 산 수면 양말을 삐뚤게 신고 오락을 하고 있는 아이 발은 아직은 나보다 작다. 세균에 물을 줄지언정 좀 더 천천히 컸으면 좋겠다고 또 생각한다. 아이가 어린데모니터 안의 깔끔한 다른 집 사진을 보며 우리 집은 정리가 안될까를 고민한다면 지금은 그게 당연한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당신 집도 아이 있는데 깨끗하지 않냐' 반문한다면, 정리된 모습만 올려서 그렇지, 아이랑 한 시간만 같이 있으면 참으로 동질감 느낄 수 있는 사진을 올릴 수 있다고 답하겠다.다른 집 사진도 청소 직후의 사진일 거라고 믿자.
인큐베이터에서 키우자고 그 친구가 목놓아 외쳤던 13살까지는 청소에는 눈을 좀 감고 살아도 된다고, 조금 더 무뎌지자고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