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대충 집에서 해 먹지 뭐'라고 하면서 레스토랑에서 나올만한 음식 사진들을 보낸다. 집이 너무 더러워 부를 수는 없다는 그녀는 본인에게 정리 유전자가 없어 그런다며, 자신의 엄마를 보면 '나는 그래도 상식 선에서 정리를 하고 있다'는 희망을 가진단다.
A의 어머니는 일평생 정리와는 거리가 먼 분이셨는데, 신기한 건 본인은 늘 당신만의 룰에 의해 완벽하게 정돈이 되어있는 상태라 하신다는 거다. 정신없는 찬장을 좀 정리해놓으면, 본인의 동선에 딱 맞춰서 배열을 해놓은 건데 그걸 망쳐놓았다고 하신다. 게다가 늘 발 벗고 나서 다른 사람 정리를 도와주려고 하신단다.
A가 이사하는 날, '제발 우리 엄마가 바쁘셔야 할 텐데' 했으나. 어머니는 시간을 쪼개 딸 집에 오셨고, A가 바쁜 사이, 나름 이삿짐 정리를 끝내 놓으시고는 '내가 정리 싹 해놓았으니 넌 이제 쉬어라' 하시며 가셨단다. A는 물건을 찾을 때마다 이것이 여기서 나올 수 있는 건가 하며 경악을 했는데, 심지어 신발장에다 전장김(김밥김)을 열을 지어 차곡차곡 넣어두고 가셨단다.
A가 하루는 부엌을 정리하겠다며 살림을 싹 다 꺼냈다. 의욕에 불탔으나 이미 꺼내면서 기운이 빠진 A는 온갖 살림이 널브러진 데 자기 앉을자리만 겨우 만들어 앉아 내가 왜 이것들을 꺼냈을까 후회하고 있었다. 그때 낮잠을 자고 있던 딸이 방에서 나와 난장판이 된 집을 보더니 "엄마, 할머니 오셨어?" 이런다.
이미 중학생인 딸아이가 사용했던 이유식기와 빨대컵, 식판 몇 개와 분명 투명했는데 불투명해졌다는 플라스틱 물통 몇 개를 버렸다. 모델하우스에 방문하라며 나누어 준 색색깔깔 부직포 같은 행주를 각기 다른 장소에서 10개 넘게 찾아냈다. 그게 끝. A는 며칠에 걸쳐 원래 자리에 다시 집어넣는 것으로 부엌 정리를 마무리했다. 애초에 계획했던 부엌 정리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A는 그동안 잊고 있던 그릇 세트를 찾았다며 아주 기뻐했다.
부엌을 보기에 말끔하게 정돈하지 못했다고 A가 사는데 요만큼의 지장이 있냐면 절대 아니다. A는 여전히 그녀의 부엌에서 불편함 없이 맛있는 집밥을 뚝딱 해 먹고, 가끔 찾는 물건이 보이지 않아도 다른 것으로 척척 대체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부엌에서 A의 마음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는 거다. 딸이 할머니가 오셨냐고 물었던 그날을 교훈 삼아 괜히 대청소하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도록 노력할 뿐이다.
미니멀 부엌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갓 인테리어 작업을 마친 듯 가지런히 정돈된 사용감 하나 없는 반짝이는 부엌일 필요는 없다. 그곳에서는 늘어놓고 무언가를 해 먹는다는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 내 부엌을 보면 한숨이 나오고 마음이 갑갑해 정신건강에 해롭다거나, 요리 조금 하려고 하면 정리가 되지 않은 통에 동선이 나오지 않아 불편하지 않으면 되는 거다. 단순할수록 편하다 느껴지면 점점 미니멀한 부엌으로 가꾸면 되는 거고, 난 이 정도면 됐다 싶을 때 거기서 멈추면 된다. 어떻게든 몸을 덜 움직이고 에너지를 덜 쓰는 편한 부엌살림을 추구하는데 부엌이 작다 보니 미니멀한 부엌이 그 방법이 된 것뿐이다.
요리를 엄청나게 잘할 필요도 없다. 고백하건대 나는 과일이라도 깎으려고 하면 옆에서 "줘봐, 내가 할게" 소리를 들을 정도로 칼질을 못한다. 그래도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고 엉성한 칼질과 날렵한 스텐 가위질로 쉽고 내 몸 편한 요리 위주로 잘해 먹고 산다. 요리 프로그램처럼 프라이팬에 뿌리는 식용유 하나, 설탕 하나 일일이 다 예쁜 그릇에 옮겨 담아 조리하고 플레이팅 하는 건 안된다. 무조건 쉽고 편하고 설거지는 적어야 한다.
작아도 편하고 효율적인 동선을 누릴 수 있는 부엌에서 요리하는 시간을 즐길 수 있으면 된다.
너무 애쓰지 않는 부엌,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