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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개월치의 글쓰기 수익, 곱창구이

by 경계성미니멀

중학교 2학년 첫 짝이었던 그녀는 1년간 지킬 계획을 세우고 함께 나누는 시간에 '간음하지 않겠습니다'를 적어서 독실한 신앙을 한방에 각인시켰다.

수학 시간. 한참 설명을 하고 있는 선생님도, 순식간에 흰 글씨로 채워지는 칠판도 보지 않고 머리를 푹 묻은 채 혼자 뭔가를 아주 열심히 적고 있던 그녀의 공책 한 바닥을 채운 문장. "하나님 공부 열심히 하게 해 주세요." 샤프를 꼭 쥐고 한 자 한 자 적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그렇게 절실할 수 없었다.

@pixabay

혼자만의 공간에서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두루뭉술 나의 장래희망. 오래되었고 마치 일반적 습관 같은 현재형이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돌이켜 보았을 때 단 한 개의 손가락도 꼽을 수가 없다. 현실에 불만은 많았으나 여기서 탈출하기 위한 노력은 전무했다. 나의 로망을 이룬 사람들의 현재를 보며 부럽다를 연발했으나 그들이 과거에 기울였을 노력은 들여다보지 않았다.

음부터 현 가능성이 낮은 바람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놓았던 것도 나였고 하고 싶다는 간절함을 그저 바라기만 하는 우물쭈물한 로망에 그치게 두었던 것도 나였다. 이렇게도 오랜 시간 원하는 것이라면 현재의 삶을 누릴 수 있기 위해 노력했던 것보다 몇 배나 더 치열하게 준비해도 부족할 판에 나는 그저 '그렇게 살았으면 참 좋겠네~'하고 있었다.

한 줄의 글을 쓰지 않았다. 글을 읽는 시간조차 턱없이 부족했으며 많은 것을 경험하며 새로운 것을 깨닫고 느끼는 것에도 게을렀다. 수업은 듣지 않고 '공부를 잘하게 해 주세요'도 아니고 '열심히 하게 해 주세요' 했던 그녀의 기도도 나에 비하면 가능성이 높은 거였다.


쓰기란 것을 하지 않으면서 을 쓰는 일을 하고 싶다던 나는 드어 브런치를 시작했다. 사람의 욕심이란 것이 참으로 희한해서 바로 글을 쓰는 것만으로 생계를 꾸리고 싶다는 나의 바람에 불이 확 붙는다. 이제 그저 로망으로 끝나게 두지 않겠다며 의욕을 불태우며 '수익'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번 달 산정된 수익금은 천 원.

어제저녁 곱창구이를 사 먹고 5만 천 원을 내고 나왔다. 나는 51개월치의 익을 한 끼 식사에 지불했다. 와우. 욜로도 이런 욜로가 없다. 수입에 합당한 지출을 하려면 나는 한 달에 한번 공깃밥만 사 먹을 수 있다. 또 몹쓸 조급함이 옹글거리고 올라오만 유명 작가들조차 회사를 다니면서 시간을 쪼개 글을 쓰고 있다는데, 이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반년 조금 넘었으니 당연한 거라며 짐짓 담대 사람 흉내를 내 본다.

나는 여전히 거울에 비친 낯선 둥그런 실루엣이 영 싫다면서도 야식을 끊지 못했고 같은 나이인데 얼굴에 모공 하나 없는 텔레비전 속 그녀의 피부를 부러워하면서도 씻으러 가는 길이 제일 멀다며 게으름을 피운다. 건강이 최고라고 말만 하다가 적정량에도 미치지 못하는 운동 이제 겨우 시작했다. 월급 외에 파이프라인이 필요하다 하면서도 시도차 하지 않은 채 일단 아껴 쓰는 것부터 하자 해놓고 아직 외식비조차 줄이지 못하고 있다. 라는 건 꾸준히 많지만 실행은 느리작거리면서 핑계는 많다.


그에 비하면 한 달에 공깃밥 한 그릇만큼의 수입이지만서도 글쓰기로 수익란 걸 만들어 낸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품어왔던 로망에 성큼 가까워진 거다. 입금 예정이라는 1,000 숫자를 보며 그동안 저 멀리 있던 꿈을 내 곁에 바짝 붙여놓은 기분다.


이제 정말 쓸 말이 없어서 어쩌나 했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 나는 글을 쓰고 있으니, 오늘의 나는 이걸로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다.






커버사진 출처

https://naver.me/Ft8lGic9업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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