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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May 09. 2022

계산은 네가, 포인트 적립은 내가

@pixabay

 몇 년 전 근무했던 팀은 회사 내에서 업무강도가 센 걸로 명성이 자자했다. 근무 희망자가 없으니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가 힘들어 구성원 변동이 적었다. 무려 지원을 해 팀에 합류해보니 외부 스트레스가 많아 그런가 상사들도 내부 사기 진작에 애를 썼고 다 같이 고생한다는 생각에 팀원들끼리 끈끈한 전우애 같은 것이 있었다. 

 독특한 건 7명이나 되는 인원이 점심을 다 함께 먹는다는 점이었다. 외근 등으로 빠져도 4-5명이 함께 했고, 계산대에 줄을 서 각자 카드로 계산하는 모습이 이미 익숙하던 때였는데도 서로 돌아가며 점심을 사고 커피를 사고 있었다.


   오늘 누가 밥을 사면 '밥 잘 먹었으니 커피는 내가 게' 하며 다른 가 커피를 사고, 그다음 날에는 '어제 잘 먹었으니 오늘은 내가 살게'하며 또 다른 이가 밥을 산다. 이러니 더치페이가 되지 않고 '오늘은 내가', '오늘은 내가' 이렇게 돌아가면서 밥과 커피를 사게 되는 거였다. 순서를 정한 것도 아니고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굴러가는 모습이 겹기도 하고 매번 특별한 점심 약속이 있것 같기도 다. 그 팀에 오래 있던 직원은 어쩌다 보니까 서로 이렇게 밥을 사게 되었다면서 '몇 번 밥 먹으면 열받을 수도 있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달 뒤 커피를  사겠다고 카드를 내밀고 있는데  F대리가 계산대  포인트 적립 패드에 본인 핸드폰 번호를 누르려고 한다. 그런데 옆에서 'F대리, OO도 여기 전화번호 있어'라며 그를 저지한다. 그러고 보니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내가 계산할 때마다 그 대리는 매번 포인트 적립 카드를 꺼내 도장을 찍거나 번호를 눌렀다.  계산대 근처에 서성이고 있지만  F대리가 계산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건강을 위해 커피를 안 마신다한 번 넘어가는 적 없이 카페에서 꼬박꼬박 비싼 생과일주스를 시키고, 남들 다 삼계탕 시키면 혼자 전복 삼계탕을 시키는 등  앞에 무언가 다른 재료명이 붙어 조금씩 더 비싼 메뉴를 시키는 그였다. 글게 돌아가는 밥 기에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고 오늘은 이 사람이 사주는 밥을 먹고 저 사람이 사주는 커피를 마시며 매일매일 즐겁게 맛있는 공짜 점심과 후식을 즐기며 부지런하게도 그 많은 음식점과 카페에 포인트 적립 카드를 만들어서 다른 사람이 계산을 하면 적립만을 열심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번호를 누르려는 걸 말리며 그렇게 이야기했을 정도면 속으로 이건 좀 심하다 싶었던 게다. 그런데  F대리는 전혀 민망해하지도 않고 '아 그래요?' 하고 그대로 계산대에서 멀어진다. 다른 직원이  간혹 '오늘은 F대리가 산 밥을 먹을 수 있는 거야?'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그는 '하하, 다음에요'하며 호탕하게 웃으며 넘어갔다.  생활이 어려웠냐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F대리의 시계나 지갑이 나는 이름도 모르는 아주 고가의 브랜드라고도 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형 동생 한다는 직원이 따로 불러 너를 위한 거라며, 애 둘에 외벌이 하는 나도 있는데 결혼도 안 한 네가 이렇게 하면 회생활하는데 문제가 있는 거라고까지 이야기해주었다고도 한다. 그런데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그 팀에서 F대리와 1년을 같이 근무했는데 그에게 몇 번의 밥과 커피를 사게 됐는 셀 수 조차 없한 번도 그가 사는 밥이나 커피를 먹지 못했다. 내가 교육을 간 날 그 대리가 밥을 한 번 샀다. 그날 빠진 인원이 많아서 단 세명이 밥을 먹었다면서, 그 대리한테 밥 얻어먹은 두 명은 로또사야 된다 들끼리 한바탕 도 했다. 일 만나는 팀원들과 그렇게 긴 간을 매일매일  공짜 밥과 공짜 커피를 즐기면서 큰 소리로 '잘 먹었습니다!'만 줄기차게 외치는 그를 얄미워하는 내가 옹졸한 건가 싶기도 하고, 저렇게까지 남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챙길 수 있는 그의 멘탈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지금도 그의 명품 지갑은 도장을 찍을 적립카드를 꺼낼 때 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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