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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Jun 08. 2022

진상을 나누면 제곱이 된다

 진상에게 당한 분을 삭이지 못해 정말 터지기 일보직전인 감정이 분출되는 거라면 오히려 그럴 수 있겠다 겠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면서 자신이 겪은 진상 이야기를 꼭, 아주 디테일하게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사람이 있다. 즐겁고 좋은 이야기도 듣기 싫을 때가 있는데 진상 이야기를, 그것도 밥 먹고 있는데 하면 그 불쾌함과 짜증이 고스란히 듣는 이에게 토스되며 진상 스트레스는 단언컨대 배 이상이 된다.

 

@pixabay

 사람을 상대하는 일다면 필연적으로 진상 마주다. 모습과 호칭 다를 뿐이다. 오롯이 혼자 작업하는 일도, 수익을 위한 계약관계를 유지하는 한 결국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의견을 조율해야 할 테다. 어느 특정 분야라고 진상이 없겠는가. 외부인만 진상이란 법도 없다. 내부인이 더 집요하고 어처구니없을 때도 많다.


 연륜이 있다고, 경력이 는다고 드시 진상에 무뎌지는 것도 아니다. 영혼은 집에 두고 몸만 출근하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창의적인 욕설과 폭언에, 중간중간 대답을 요구하며 내 업무와 도대체 공통분모가 언가 싶은 세상의 부조리함 조곤조곤 끊지도 않고 말하는 전화에 내 몸속의 피가 조금씩 말라 없어지는 듯다. '심쿵'이라는 말이 유행할 때 사무실에서 전화가 울리는 순간 '나도 심쿵을 경험하는구나'를  읊조리기도 했다.


 몇 주간 참 끈기 있고 부지런한 진상에게 시달리고 있는 신입 직원이 어제 집에 갔는데 갑자기 눈물이 또르르 흐르더라며, 'OO님, OO이 되면 이런 것도 괜찮아져요?'라고 묻는다. 그녀에게 정말 미안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아니오, 안 그래.' 눈빛에 좌절과 실망이 지나간다.

 그녀와 를 포함한 대다수가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이유는 일 자체가 아니라 내부 외부든 존재하는 진상 때문일 테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진상을 안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게 최악의 포인트다. 어떻게든 진상의 경험을 내 머릿속에 남기지 않고 빨리 지워내 버리는 것, 그 수밖에 없다.


@pixabay

 내 진상도 감당하기 힘어 어떻게든 빨리 잊으려 노력하는 마당에 J는 본인 진상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 했다. 진상과 통화를  상대가 내지른 차마 입에 담기도 꺼려지는 욕설을 앙칼지 큰 목소리로 그대로 따라 하면서 '지금 저한테 000이라고 욕하신 건가요?" 한다. 심지어 가끔은 욕설이 흘러나오는 통화를 스피커폰으로 전환해 생중계를 . 무슨 의도로 그러는지 조차 이해할 수가 없다. 윗사람들에게 본인이 고생한다는 것을 피력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진상의 욕설에도 본인은 능수능란하게 응대한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것일까. 진상 발현 빈도도 잦았다. 그에게 유난히 진상이 많이 걸리는 게 아니라 그응대가 진상을 야기하는 게 아닌가를 의심할 정도였다.

 

  점심 J 오전의 진상과의 상황을 복기다. 이미 우리도 다 들었다. 직접 당하는 본인만큼의 스트레스는 아니었겠지만 이미 유사한 경험을 해 본, 혹은 언제든지 내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 직원들에게 그 상황을 가까이서 목격하는 것 자체도 스트레스였다. 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보게 되는 장면을 대하는 감정과 같을 수없다. 아니 그런데 반복학습이라니. 

 '이런 일이 있었어' 수준이 아니다. 마치 재연배우처럼 혼자서 진상역이 됐다 본인 역이 됐다 하면서 목소리 톤도 바꿔가며  혼신의 연기를 펼치는데 대부분은 원래의 상황보다 말이 더 덧붙여졌고 실제보다 진상의 정도는 더 심하게, 본인의 응대는  아주 상냥하고 차분하게 표현됐다.

 점심 식사를 앞에 두고 펼치는 그녀의 연기를 보며 손발은 물론 까지 오그라들었다. 본인은 점심시간에 이러면서 푸는 거지 하면서 이 식어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진상 경험을 공유했지만, 듣는  무실에 겨우 떼어놓고 나온 진상의 기억을 그녀가 기어이 데리고  밥상머리에 똬리 틀 앉 놓은 기분이었다.


 점심시간 J의 공연을 몇 차례 관람나는 정말 견딜 수가 없었다. 금까지의 피하고 싶은 유형 몇이 모여있던  부서였다.

 나는 결국 점심식사 대신 운동하는 것을 택했, 민 없이 '운동하러 가야 해서요'로 그들과의 점심식사를 피할 수 있었던 그때, 일생의 모든  활동 중 가장 은 출석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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