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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May 13. 2022

칼국수 먹다가, 살기 싫다

@pixabay

 일을 하다 보면 사무실에서 그녀와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지나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런데 간혹 업무를 물어 을 때면 글자 그대로 '다짜고짜' 물었다. 보통 사람들은  '바쁘시죠?'라던지 '오늘 유난히 일이 많네요' 등 한마디를 던지고 시작하는데 그녀는 그런 쿠션 없이 곧바로 질문을 쏟아냈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내 자리까지 오는 이유는 똑같기에 그녀의 화법이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점심시간은 얘기가 좀 다르다.

 

 여러 명이 같이 간 날은 조용히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는 그녀는 나와 단 둘이 밥을 을 때 가끔씩 그런다. 

 늘 맑은 칼국수를 먹다가 칼칼한 게 먹고 싶어서 매운 칼국수를   날 '있게 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 에 넣자마자 옆에서 뜬금없이 '살기 싫다' 이런다. 발이 목에 캑 걸리는 기분이다. '엥? 아니... 왜요....' 하니 '사는 거 진짜 재미없지 않아요?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가. 왜 이렇게 만사가 다 귀찮고 재미없지...' 한다. 뭐라 대답까 망설이고 있는데 본인은 마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식사를 어간다.

 니, 이런 이야기는 친밀한 사이에서, 또 이야기가 느 정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분위기에서 하는 거 아닌가. 점심식사를 막 시작하면서 나눌 화제는 분명히 아니지 않은가. 순댓국 순대가 안 보이는 가에 집중하고 있는 내게  "내가 죽는다고 누가 신경이나 쓸까?"라고 앞 뒤 없이 이야기하면 도대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가. 거기 대고 "저는 순대가 다섯 개뿐인데, 순대가 몇 개 들어있어요?"라고 받아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그녀와 내가 정도 깊이의 대화를 아무 때나 툭 터 놓고  나눌 끈끈한 사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살기 싫다는 말은 하면서도 본인의 생활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 역시 묻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그녀가 나보다는 나이가 많다는 것 외에는 아는 바 없다. 간혹었지만 밥 먹다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터지는 그녀의 감정 물꼬에 나는  황했다.


  왜 갑자기 그녀가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게 되었는가이제 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밥 먹고 함께 산책을 하면서 날씨 이야기를 했다. 바람은 아직 찬데 볕은 참 좋다 하면서 햇볕을 많이 봐야 한다더라 했는데 햇볕을 안 보면 우울 해진다로 대화가 이어지더니 요새 우울증이 온 것 같다 말 것이 시작인 것 같다.  산책 중에 런 이야기를 고 처음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잘 듣고 위로해 주었던 것 같다. 그녀의 표현이 극단적인 것이지 걱정할 상황은 아니란 것을 깨달은 후에역시 늘 그랬듯 잘 듣고 공감해 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제 점심 식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런 말을 던지는 거다.  

 

  에너지가 충분한 날은 들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복잡한 에 시달리다 우선 밥 먹자 하고 나온 날에도 일어날 때부터 몸이 좋지 않은데 공복이라 약을 먹지 못하고 얼른 밥 먹고 약을 먹어야겠다 했던 날에도 나의 표정이나 분, 컨디션은 전혀 개의치 않고 본인의 감정 흐름대로 암울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다. 난감했고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해졌다.

 러던 어느 날 식사가 나오자마자 '내 인생은 이제 저물어 가는 저녁인 것 같다. 오후도 이미 지난 것 같다'로 시작해서 회사 앞에 다다를 때까지 정확한 사건 개요도 없이 본인 가지고 있는 어두운 감정들을 계속 쏟아내던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아, 이야기하고 나니까 개운하다. 점심시간에 힐링하는 기분이에요. OO님이 내 비타민C 같네'하며 활짝 웃었다. 대오의 순간이었다.


 한쪽으로만 감정이 흐르는 대화가  것 자체가 문제였다. 녀는 부정적 감정을 나에게 개운하게 쏟아버리고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며 돌아가고 나는 당최 앞뒤 내용도 모른 채   감정들을 받아내며 무거운 마음로 에너지가 줄어든 채 돌아다. 

 계량컵 눈금 선에 딱 맞추어 물을 붓듯이 내가 이만큼 에너지를 투입해 너를 위로해 주었으니 너도 나의 고민을 이만큼 듣고 위로해 한다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가능한 논리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 사람과 나 사이에 내포가 먼저 형성된 후에야 감당할 수 있는 화제였다. 나는 전혀 준비되지 않았을뿐더러 그 당시 나마음의 여유는 정말 콩만큼이었. 그런데 그녀는 기에 본인 감정을 쏟아부었고 나는 흔한 표현대로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었다. 

 처음부터 내가 확 선을 긋고 단했다면 그녀는 아마 다시는 그런 화제를 꺼내지 않았으리라. 스스로 반성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단호하게 말하지 못했고 그녀가 팀을 옮길 때까지 단 둘이 밥 먹는 것을 피하는 소심한 방법을 택했다.


 녀와의 점심시간은 남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잘 들어주는 나의 고질적인 나쁜 습관을 고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한 계기가 됐다. 이전에는 긍정적으로 나를 편하게 여기나 보다 했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내가 귀뿐만 아니라 마음을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위로를  건네어야 할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본인의 감정만큼이나 나의 감정을 살피고 나를 아끼는 이들에게만 최선을 다기에도 나의 에너지는 부족하다.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의 비타민C가 될 생각은 조금도 없다.


 회사 점심시간에는 순댓국에 순대 몇 개 들어있는 정도만 신경 쓰고 싶다. 더 무거운 이야기는 듣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의도하던 하지 않던 나의 에너지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 개인적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나에게도 점심시간은 끝마치고 나서 '아 잘 쉬었다' 해야 할 휴식의 시간이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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