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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Apr 07. 2022

내가 기미상궁이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대부분 공감하겠지만 어린아이와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은 식사시간이라기보다는 육아 근로의 일부다. 다 차려놓았다고 생각해도 물 달라, 그때 그 반찬 달라, 계란 프라이 하나 더 해주면 안 되냐, 김 꺼내 달라 계속되는 주문에 밥 한 끼 먹으면서 도대체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는지 셀 수조차 없다.


 그런데 회사 점심시간엔 나를 위해 물도 갖다 주고 반찬도 몇 가지나 쫘악 깔아주고 내가 고른 메뉴를 내 앞에 친절히 놓아준다. 한 자리에 앉아 방금 끓인 따듯한 음식이 식기 전에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쁠 수 없다.


 그러니 나는 이런 흐뭇한 밥상을 내게 차려주고 치워주고 하는 음식점이 너무 고맙다. 불만이 없다. 맛을 고르라면 맛있다, 아주 맛있다, 진짜 맛있다 이 셋 중 하나다.  

@ pixabay

  그런데 C 직원은 음식점에 들어간 순간부터 음식 냄새가 난다 환기가 제대로 안된다 트집을 잡기 시작한다. 음식이 나오면 이제는 '아니'로 시작하는 그녀의 지적질 시간이다.


아니, 나물을 아주 그냥 마늘로 무쳤네, 마늘을 이렇게 많이 넣으니까 나물에서 마늘 맛밖에 안나잖아
아니, 동태탕을 팔팔 끓여가지고 와야지 이렇게 어정쩡하게 끓여 오니까 비린내가 계속 나지
아니, 무슨 겉절이에다 설탕 범벅을 해놨어
아니, 국수를 이렇게 푹 삶으면 어떡해, 나오자마자 다 퍼졌네
아니, 이건 무슨 맛이 하나도 없어. 너무 맹맹하네

 어떤 음식점에 가도 그녀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맛집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곳에 가서는 고춧가루를 잔  써야지 이렇게 큰 걸 쓰냐고까지 지적한다. 백종원이 직접 만들어 내놓아도 안될 거다. 미간을 찌푸리며 한 숟가락 떠먹자마자 품평을 하는 그녀는 거의 기미상궁이다.

 

 맛있다며 즐겁게 식사를 하려다가도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불만에 다른 사람들 입맛까지 떨어지기 일쑤다. 참다못한 한 직원이 돌려서 말을 한다. '요리를 잘하시나 봐요. 그렇게 입맛이 까다로우면 외식하기 힘드시겠어요.' 랬더니 '요리는 못해도 맛은 잘 본다' 개의치 않는다.

 도시락 한번 안 싸오시고 한 끼 건너뛰는 일도 없이 매일매일 점심을 사드신다. 오늘도 기미상궁으로 분하실 테다.


 나는 사실 그 당시 그녀가 아무리 뭐라 해도 늘 맛있었다. 

 하지만 그녀와 따로 밥을 먹을 때더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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