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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Dec 28. 2022

나만 추운 게 아니었는데

 작은 집 유일한 식물이 올 겨울 첫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맞이 인테리어를 담당했던 기특한 놈이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체감기온은 더 낮을 거라는 기사 봤고 안내문자도 여러 번 왔다. 15시간 지속이 된다는 핫팩귀마개를 장만하고 장갑까지 꺼냈다. 히말라도 갈 수 있을 듯한 패딩 안에  입니 걷는 게 아니라 구르는 것 같았다.

 오히려 덜 춥다는 말을 믿고 얇게 입고 나간 날이 늘 더 춥다. 단단히 준비하고 나갔더니 사람은 괜찮았다. 그런데 바람도 직접 맞고 햇볕을 더 많이 보라고 부러 창밖 실외기 위에 올려놨던 화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딱 봐도 얼었다.


 아차 싶었다. 춥다는 말에 들여놔야겠다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걸 깜빡했다. 어제만 해도 잎이 무성해서 엄청나게 잘 자란다 했다. 화분이 터질 것만 같아서 분갈이를 해야 할 텐 데까지 고민했었는데 하루 만에 얼어서 가지가 꺾여버렸다.

 따듯한 곳에 옮겨 두면 언 몸이 녹듯이 화분도 살아날 줄 알았는데 점점 누렇게 변해갔다. 며칠을 지켜보다 결국 언 부분을 다 잘라내기까지 했는데 결국 앙상하게 말라죽고 말았다.


 나만 추운 게 아니었는데.  

https://naver.me/Gis0Gv7C

 날이 추워지고 낮이 짧아지면서 옆동 한 집의 베란다가 눈에 들어왔다. 강렬한 꽃분홍색 조명이 환했다가 그다음 날에는 새파란 조명으로 변하기도 했다. 구해줘 홈즈에서 본 것처럼 테이블을 놓고 와인바처럼 꾸민 걸까? 집에 오는 길에 그 베란다를 올려다보며 오늘은 무슨 색인가 점검하며 베란다에 저렇게 화려한 조명을 달아놓은 사람은 분명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일 거라며 혼자 확신을 했다.


 얼어버린 식물을 어떻게 살릴지 검색하다 우연히 식물용 LED조명이란 것을 발견하고는 나의 무지함에 깜짝 놀라고 만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일 거라고 믿은 그분은 요새 말로 식집사다. 

 어떻게든 작은 집의 한 뼘을 살리고 수납공간을 늘리겠다며 베란를 통으로 없애버린 내게 이제 그분은 더 대단해 보인다. 평수가 같은 작은 집 베란다를 식물들에게 양보하고 저렇게 정성스럽게 조명을 쐬어주다니.


 사이드테이블 위 한자리도 내주지 않았다가 첫추위에 바로 얼려 죽인 나는 아무래도 반성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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