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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Jan 20. 2023

가진 것이 많으니 할 일도 많다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해소하며 물욕을 활활 불태운 시기, 물걸레 로봇청소기로 정점을 찍었다.

 이 작은 집에는 딱히 돌아다닐 데가 없다는 것을 이미 머리로 충분히 알면서도 나의 손가락은 드롱드롱거리더니 결국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 로봇청소기가 구매한 지 20여 일 만에 뜨그덕뜨그덕거리어딘가 뚝 부러질 것 같은 소리를 낸다. 접수를 하고 전화를 받고 일일이 완충 포장을 해서 택배를 보냈다. 일주일 만에 돌아온 로봇청소기는 그러나 여전히 소리를 내며 말썽이다. 또다시 접수를 하고 오늘 수거 예정이라는 문자 소리에 눈을 떴다. 해도 뜨지 않은 아침에 또 뾱뾱이로 둘둘 감아 포장을 다 말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아쥐고 커피부터 내린다.

 

 카페인을 섭취하니 현실을 자각하는 능력이 생긴다.

 스트레스를 핑계로 돈을 주고 또 다른 스트레스를 산 스스로를 반성야 한다.

 새해를 맞으며 AS의 나날을 보냈다.

 머리털이 뽑혀도 잘만 나오던 AI스피커 클로바는 밤새 충전기를 꽂아 놓아도 완충이 되지 않았고 툭하면 꺼졌다. 어떻게 고쳐야 하는 건지 검색을 하고 온라인 접수를 하고 택배를 보냈고 다시 받았다. 다행히 돌아온 클로바는 아주 멀쩡해져 있어서 기특했다.

태블릿도 말썽이었다. 측면 버튼은 눌러도 아무 응답이 없었다. AS 센터에 방문을 했고 부품이 없어 맡겨두고 돌아왔으며 연락을 받고 다시 가서 찾아왔다.

그러고 보니 또 다른 AS센터도 갔다 왔다. 단 하나 있는 미용 가전은 계속 충전을 하라며 꺼졌고 센터에서 배터리를 교체했다.

그 와중에 보일러도 고장이 났다. 이놈의 보일러는 내 속을 아주 여러 번 썩였다. 여러 가지 가능한 원인에 대해 매번 긴 설명을 들었고 그에 맞는 처치를 했지만 결국은 새로 설치했던 부품이 불량이었던 거였다.

 샤워기에서는 물이 졸졸 새서 샤워기 헤드를 교체했고, 현관문을 열고 도어스토퍼를 고정해 놓으면 안쪽으로 질질질 밀려들어와서 그것도 교체했다.

 급격히 몸무게가 늘어난 나를 알아보지 못했던 체중계는 아예 핸드폰과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배터리를 갈고 블루투스를 다시 연결하고를 몇 번이나 했다.

 보일러처럼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결국 내가 가진 물건들 때문에 나는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도 들였다.


 가진 것이 많으면 일이 많아진다.

 대충 뭐 그까짓 거 좀 지저분하게 써도 되고, 고장 나도 버티거나 쓱쓱 고쳐 쓰면 되지-하는 느긋한 성격도 되지 못한다. 사용설명서를 정독하고 먼지가 쌓이지 않게 수시로 닦고 혹시라도 고장이 날까 봐 조심조심 사용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물건은 일이다. 물건을 가지면 가질수록 관리할 대상이 늘어나고 할 일이 많아진다. 그렇게 집안일을 줄이기 위해 온갖 머리를 쓰면서 돈을 들여 집안일을 사 들이는 셈이다.


 옷이 많으면 고르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세탁하고 보풀을 제거해 주고 스팀다리미를 쏘아주는 등 내 노동력을 들여 관리해야 할 대상이 많아진다.

 잔뜩 사놓은 식재료 보일 때마다 이걸 빨리 해 먹어야겠다 하면서 은근 압박을 느낀다.

 소형 가전제품이 늘어나니 일일이 충전하는 것도 귀찮았다.

 빨리 읽고 비우자고 했던 책들은 자꾸만 중간에 꼭 읽고 싶은 책들이 생겨서 총량은 절대 줄지 않고 책장은 이제 삐그덕 삐그덕 소리를 내며 점점 무너지고 있 그때마다 마음의 짐으로 다가온다.

 

 집이 이렇게 작은데도, 그 엄청난 양의 물건을 비우고 왔는데도 결국 집안의  물건을 사용하고 관리하고 치우고 씻고 정리하는 것을 반복하며 하루하루 보내 있다.

 늦은 밤까지 집안일을 한 어느 날에는 도대체 이전에 나는 그 큰집을 어떻게 다 치우고 살았던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고 나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물건들.

 경계성 미니멀 라이프니까 일단 마음 편한 게 최고다 했지만, 예전부터 사실 분명히 알고 있었다.

 

많은 물건은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진정 마음이 평온하고 한갓진 순간은 늘 비어있는 공간 속이었음을.


 오늘은 경계성 미니멀 말고, 진짜 미니멀 라이프에 가까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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