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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Feb 07. 2023

갓 구워 뜨끈한 빵, 집에서 편하게 만들어 먹어요

 아무래도 빵으로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거나 밥보다 빵이라고 외칠 수 있는 빵순이는 아니다.

 밥과 면이 있다면 면을 고르면서 빵 뭔가 아쉬운 게 있다. 순수하게 빵이 먹고 싶어 빵을 먹는 경우는 드물다. 빵이 당기는 순간은 역시 커피와 함께 먹을 그 빵이 필요한 그때인 거다. 그런데도 사람 입맛은 참으로 도도해 어차피 커피랑 먹을 거면서도 굳이 맛있는 빵을 알아채고 찾아낸다.


 가끔 들르는 동네 식빵가게가 있다. 집게로 빵을 하나씩 집어 들며 쇼핑하는 큰 빵집이 아니고 그저 유리 안으로 진열해 놓은 몇 안 되는 식빵 종류랑 스콘 한두 개를 보고 이거 주세요-해서 사는 곳이다. 거의 우유식빵만 하나씩 사는데 썰어달라고 하면 덩어리 식빵을 컷팅기에 걸치고 덜덜덜덜 하는 소리가 나고 나면 아래로 내려온 식빵은  반듯하게 잘려 있다.

 운이 좋아 식빵을 구운 직후에 가면 비닐 포장지를 열은 채 김이 빠지고 나면 묶으라고 끈을 따로 준다. 그 끈 그러나 이용한 경우가 별로 없다. 방금 구운 식빵은 포장 안에 들어서까지도 빵냄새를 풍긴다. 집까지 걸어오는 길에 따듯한 식빵을 한 개씩 나눠 먹고 집에 와서는 커피 한잔 내려서 또 먹고 이러면 묶을 일이 이미 없다.


 그렇게 몇 번 갓 구운 빵 맛을 보고 나니 어쩌다 찾아오는 운을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그 맛있는 빵을 만들어 먹자는 생각에 미친다.

 그러나 물론 베이킹은 무리다. 작은 집에는 밀가루를 포함해 베이킹 재료가 아무것도 없다. 빵 만들겠다며 하나씩 하나씩 살 생각은 하지 는 것이 좋겠다. 요리하는 과정 하나하나를 즐기고 공을 들이는 것을 즐거워하는 쪽은 아닌 게 확실하다. 집에서 갓 구운 빵을 먹고 싶지만 최소한의 노력만 딱 투입하고 싶다. 이럴 때는 진심으로 미니멀 라이프다.

 인터넷에서 생지를 판다.

 빵 반죽을 다 만들어  동글동글하게 빚어 얼린 채로 파는 거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서 편하고 쉽게 집에서 갓 구운 빵을 먹다.


 이건 뭐 레시피도 아니다. 상온에서 비닐을 덮어 두 시간 해동시키고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세 시간 또 상온에서 비닐을 덮은 채 3시간 발효시켜 에어프라이어나 오븐에 구워 먹으면 끝이다. 작은 집에는 오븐이 없으니 에어프라이어에 구워 먹는다.


 이걸로 여러 다양한 모양의 빵을 구웠다는 가족들의 이야기와 인증에 귀가 팔랑거려 소시지빵을 한번 구워 참 배까지 든든하다며 잘 먹었지만 역시나 식빵이나 모닝빵이 쉽고 편하고 입맛에도 맞다.


 고맙게도 사은품으로 식빵을 구울 수 있는 은박틀이 왔다. 거기에 해동한 거 세 덩어리 넣고 3시간 있으면 부풀어 오른다. 그때 구우면 된다. 해동부터 그 틀에 넣고 한 적도 있다. 잘만 된다. 최대한 편하게 하자.

 모닝빵 역시  따로 모양 만들 필요도 없다. 그냥 접시에 포일 깔고 널찍널찍하게 올린 채 해동과 발효를 함께 해 5시간 정도 두면 하얀 찐빵처럼 부풀어 있다. 포일 채 그대로 옮겨 구우면 된다. 꽃잎처럼 자기들끼리 붙었으면 붙은 채로 구워서 뜯어먹는다. 식빵이랑 다를 거 뭐 없다.

 이렇게 편하게 빵을 구워 먹으면서도 시간 하나 맞추는 것이 까다롭다는 생각도 한다. 해동 발효 총 다섯 시간. 주말 아침 식사로 뜨끈한 빵을 먹고 싶다는 욕심에  자기 전에 꺼내놓고 잤는데 하필 또 늦잠을 자서 미친 듯 부풀어 오른 식빵 반죽을 만나게 됐다. 얼마나 부풀었으면 에어프라이어 천장에 닿아 좀 눌러서 넣어야 했을 정도다. 과발효된 빵에서는 시큼한 맛이 많이 났다. 자기 전에 내놓는 것은 패스. 구워 놓은 지 좀 지난 식은 빵 맛이 많이 아쉽다. 간을 계산하다 못 먹고 넘어가는 날이 종종 있다.


 혼자 낮을 보내는 흔치 않은 주말처럼 이 빵이 딱 좋을 때가 또 없다. 나 자신을 위해 맛있는 요리를 하고 예쁘게 플레이팅 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지만 요리를 준비하고 차리고 치울 것도 나 자신일 때는 이렇게 가족 끼니를 챙기지 않아도 되는 어쩌다 한번 맞이하는 시간만이라도 아무것도 안 하고 널브러져 있는 것이 스스로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그럴 때는 정직하게 배가 고파지는 것마저도 귀찮다. 그런 주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생지를 해동시킨다. 바쁜 아침을 보내고 혼자 시간을 누리다 아침에 먹었던 커피의 카페인이 다 사라지고 커피가 당긴다. 끼니도 건너뛰고 연달아 커피만 먹기에 뭔지 모를 반성의 마음이 들 때 에어프라이어에 빵을 구워 커피랑 내려 먹으면 딱다. 치울 것도, 설거지할 것도 없다. 고맙다.  


 미식가는 아닌 게 틀림없다. 빵 맛이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른다. 그저 빵 굽는 냄새작은 집 안 점점 채워지는 것이 분 단위로 실감이 나는 것이 좋다. 직전까지 안에 넣고 구워 뜨거운 줄 알면서 또 지금 당장 노르스름한 표면 안의 결들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포크까지 빵을 스윽 벌려 보는 그 순간이 좋다. 옅은 갈색으로  바삭하게 익은 표면과 달리 품고 있던 하얀 김을 쏟아 내면서 보이는 촉촉하고 말랑하게 따끈한 안을 손가락으로 잡아당겨 살짝 뜨겁다 싶을 정도의 커피와 함께 마시면 이 작은 집이 빵 성지고 가장 맛있고 가장 편안한 카페다.


한낮에 즐기는 갓 구운 빵과 방금 원두를 갈아 새로 내린 커피는 그저 완벽하다. 하루에 이렇게 완벽한 순간이 있다면 좀 자잘 자잘한 것들이 귀찮게 하더라도 이건 몹시도 괜찮은 하루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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