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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Jul 18. 2023

장마철 당신의 머리는 안녕한가요

반곱슬에게 장마는 너무 길다

자식인가.

내 머리인데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를 감고 머리를 말리고 분명 멀쩡한 상태로 나섰는데 왜 출근한 나의 머리는 바야바인가.

안 그래도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퇴근하고 싶은데 온몸을 휘감은 습기와 그중 8할을 머금은 머리털 때문에 더욱 집에 가고 싶다.

그렇다.

내 머리는 반곱슬.

 

평소에는 곱슬기가  드러나지 않지만 한번 펌을 하면 1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다.

대신 매직파마는 쥐약.

그전날 매직 파마를 하고 출근했는데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나 매직했다고 하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건 다시 해 달라고 해야 한다고 일러준다. 미용실에 일단 전화를 했더니 역시나 사람마다 차이 있고...하시며 일단은 와보라 한다. 가서 뭐라고 해야 하나 온갖 고민을 하고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내 머리를 보자마자,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단박에 바로 "앉으세요. 다시 해야 해요." 한다. 다행이면서도 슬프다.


그것도 소싯적의 일이고. 어느 순간부터 펌을 위해 몇 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있을 수가 없다. 몸부림을 치다 결국 펌을 끊었다. 마지막으로 펌을 한지 근 10년이 되어가는데 늘 펌 했냐는 소리를 듣는다. 미용실에서도 말했다. 돈 버신 거라고.


똥 손인 나에게 드라이나 고데기로 굽슬거리는 컬을 만드는 건 불가능. 머리를 숙여 남성마냥 물기를 털어 말려 내고 빗기만 하면 반곱슬 단발머리는 마치 C컬을 한 듯 안으로 말린다.

물론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덜 말리거나 빗질을 안 하면 한쪽은 안으로 한쪽은 바깥으로 뻗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어쩜 어쩜, 파마한 줄 알았다, 파마 안 해도 되니 얼마나 좋냐...' 하는 말들은 익숙하다.

https://extmovie.com/movietalk/50872567

심지어 재벌 소리를 다 들어본다.

남들 서 있을 때는 앉고 남들이 앉으면 눕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가능하면 매 순간 가장 편한 것을 추구한다.'편히들 앉아서 잠시 기다려주세요' 했는데 모두 서 있다. 날름 앉았더니만 그리 됐다.


딱히 할 말은 없고 말을 안 하자니 괜히 어색한 것 같은 그 시간을 때우기 위해 느닷없이 오늘 피부가 좋아 보인다거나 화장이 잘 됐다거나 하는 류의 화제가 튀어나온다. 혼자 앉아있는 내 머리통이 타깃이 되어버렸다.

 

"어머, 머리숱 재벌이네! 머리숱계의 이부진이야."

 요새 사람들은 말을 재미있게 하는 수업이라도 받는 걸까. 순간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많이들 쓰는 말이었는데 그걸 몰랐다.

출산 후 엄청난 탈모를 겪어봤기에 감사할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장마철 반곱슬 머리숱 재벌은 괴롭다.


그동안 차분하게 머리통에 붙어있던 머리들은 장마철을 맞아 가닥가닥 한껏 굽슬거리며 자유분방한 자태를 뽐낸다. 습도 80% 이상에서는 머리카락들이 분열증식을 하는 게 틀림없다. 원래의 머리카락 위에 얇고 굽슬거리는 머리카락이 몇 개씩 나는 걸 거다. 아직 현대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것뿐이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아까 그 머리가 지금의 이 머리인가.

 

있지도 않은 앞머리는 프링글스 아저씨 수염처럼 야무지게 말려있다. 습도 100프로를 자랑하는 비 오는 날에는 버펄로도 가능하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습기를 머금은 듯하고 머리에 수세미를 달고 다니는 기분이 든다. 머리카락의 부피가 점점 팽창하며 해그리드가 되어간다.


안으로 말아 넣었던 머리들은 어느새 뻗쳐있다. 이왕 뻗치는 거 같은 방향으로 뻗치면 일부러 한 파마라고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안팎은 물론 좌우로 전방향 제 멋대로 뻗쳐있다. 그뿐인가. 모근에서부터 시작한 구불거림은 굵기도 참으로 다양하다. 비슷한 굵기로 구불거렸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구나.


파마도 필요 없고 인생이 바뀐다는 다이슨 에어랩도 나는 없어도 된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이 긴 장마철 내내 수사자처럼 다닐지. 아니면 뭔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지, 고민을 해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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