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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Sep 11. 2023

너무 애쓰지 않는 부엌

 방은 3개에서 1개, 화장실은 2개에서 1개로 줄었지만 부엌은 변함없이 전에도 한 개 지금도 한 개다.


 개수는 같은데 크기 차이가 엄청나다. 이전 집의 아일랜드 식탁 너비만큼의 싱크대가 작은 부엌의 전부. 이사 직후 조리도구들로 뒤덮인 싱크대를 마주하니 이곳에서 요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고백하건대 첫 3일간 외식했다.

위 세 장은 이전 집의 광활한 부엌, 아래 두 장은 작은 집으로의 이사 직후 부엌

 부엌의 모든 것을 다 꺼내 처음부터 다시 정리한다.

 어지럽게 밖에 나와 있는 것들은 안으로 넣는다. 꺼내 놓고 쓰면 편한 것을 알지만 조리할 공간 확보가 우선이다. 수납장은 조리대로 사용하고 싱크대와 이곳 상판은 언제든 요리할 마음이 들도록 늘 비워 놓기로 한다.


 어지러웠던 부엌을 싹 치우고 압력솥에 새 밥을 지어 계란 프라이에 시금치 하나 무쳐서 먹었는데 공간이 작고 밥상이 단출하니 난데없이 정갈하다. 오우. 이런 건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리고 지금은 전과 다를 바 없이 잘만 해 먹는다. 반찬 수는 줄었다. 작은 부엌에서 한 번에 두세 개의 요리를 하기란 벅차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나의 요리실력 역시 한 번에 여러 개는 무리다.

 저녁 하다 말고 쌩으로 찍었더니 숟가락이 참으로 리얼하다

 요리 박한 평가를 받지는 않는다. 맛도 꽤 있다. 하지만 생물 재료 손질에만 몇 시간을 들여 은근한 불에 오랫동안 국물을 우려낸 후 약한 불로 참을성 있게 자작하게 끓여 내는 정성 가득한 요리는 겁다. 금만 늦으면 간식창고를 뒤지는 아이 덕에 압력솥에 밥을 안치고 뜸을 들이는 시간 안에 반찬 준비까지 끝내야 한다. 식사를 하는 순간에는 설거지를 제외한 정리가 되어 있는 게  좋다. 가공식품을 활용하고 준비도, 과정도, 치우기도 편한 요리를 하며 설거지가 최소로 나오는 방법을 연구한다.


 오늘은 정말 더 이상 못 움직이겠다 싶은 날마저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새 밥을 짓겠다고 기를 쓰는 짓 따위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외식을 통해 남이 차려 준 밥상을 받고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충전한다.

 여덟 살이 된 아이가 어느 날 자기도 용돈을 받아 편의점에 가서 마음대로 골라 먹고 싶다 한다. 용돈을 정하고 기록을 하기로 했다. 그 당시 아이는 햄버거에 완전 꽂혀있었는데 밥을 해놓았는데도 햄버거집에 가겠다고 하기 일쑤였다. 기회를 틈타 그렇게 갑자기 우겨 먹는 것은 제 용돈으로  약속했는데 하루 참더니 또 간단다.

 모은 돈으로는 주니어 세트 하나도 살 수 없어 나의 도움을 받아 전 재산을 털어 햄버거를 먹고는 집에 돌아와  용돈 기입장 "남은 돈 빵원"을 쓰더니 슬퍼한다. 잠시 후 "께달았다. 왜식 금지"라고 적어 놓았다. 밖에서 먹는 것은 이렇게 비싸다는 것을 한 번에 깨우치다니.


 사실 나도 진즉 '께달았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외식 물가가 급격히 오르니 타격은 더 크다. 나의 노동력과 맞바꿨다지만 식비 역시 나의 노동의 대가 아닌가.


 그럼에도 '왜식금지'를 하지 못한다.

 외식만큼 가사노동을 확연하게 줄이는 게 또 있을까. 매일 하는 가사노동. 청소, 빨래, 설거지. 종류를 셀 수도 없지만 가장 많은 노동력을 요하는 것은 단연코 집에서 하는 식사다. 아무리 간단하게 먹는다 해도 음식을 준비하고 차리고 먹고 치우고 설거지와 뒷정리까지 하는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가 엄청나다. 퇴근하고 돌아와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밥을 준비하는 날과 달리 밖에서 밥을 먹고 들어온 날은 참으로 한갓지다.


 내 몸은 심히 고되지만 내면의 평온함을 유지한다는 건 나 같은 범인에게는 불가능하다. 몸이 힘들면 마음이 어지럽고 화가 난다. 심호흡과 명상 따위로 감정을 조절하고 평정심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나 노력 따위는 하지 않는다.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는 무조건 몸부터 편해야 한다. 체력과 에너지가 방전 직전일 때 보내오는 몸의 신호에 촉각을 세우고 즉각 대처한다. 외식 비용은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치르는 값인 셈이다.

@pixabay

 알면서도 순간 그 비용을 계산하며 나의 노동력으로 채워 넣으려고 하는 나와 마주칠 때는 스스로의 가치를 보다 높이 매기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나 자신에게 이른다. 실제로 너무 오른 외식비에 움찔해 한동안 집밥을 고수했더니 외식비가 준 만큼 부식비가 증가해 별반 차이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허탈했다. 나의 건강과 에너지의 경제적 가치가 내가 오늘 그것을 지키기 위해 지불하는 가격보다 훨씬 더 크다는 확신을 가지기로 한다.


 너무 애쓰지 않기로 한다.

 작아도 효율적인 동선을 가진 단정한 부엌에서 엉성한 칼질과 날렵한 스텐 가위질로 내 몸 편한 쉬운 요리들을 한다. 가족을 위한 요리가 힘들고 지치기 전에 기쁘고 뿌듯한 딱 그 선까지만 한다.

 너무 애쓰지 않는 부엌, 이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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