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일'을 하라고 배웠다.
길을 잃은 어르신을 만나면 친절히 길을 안내해 드리고 어른이 말을 시키면 공손하게 대답을 해야 한다고. 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도와주라고 말이다.
그런데 다른 이를 위해 한 행동이 오히려 나를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만드는 일이 생기고 선행을 베풀었다가 소송에 휘말렸다는 기사들이 자주 보이자 이제 섣불리 나서지 말자 하게 되는 게다.
결혼도 하기 전이었다.
꽉 찬 엘리베이터가 닫히려는 순간 안에 타고 있던 여성이 문 밖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는지 갑자기 문을 열고 내렸다. 함께 있던 어린아이가 따라 내리기 전에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움직였다. 눈 앞에서 엄마를 놓친 아이는 울지도 못하고 멍한 상태. 분명 엄마가 아까 그곳에서 기다리겠지 싶은 생각에 아이를 달래 위까지 갔다 함께 내려왔다. 1층에서 문이 열리자마자 문 앞에 서 있던 여자는 앙칼진 목소리로 문을 닫고 그냥 가면 어떡하냐며 내게 소리를 쳤다.
문이 닫힐 때 나는 엘리베이터 안쪽에 서 있었다고. 사람들이 앞에 많았고 버튼에 손도 뻗을 수 없는 거리와 시간이었다고 내 머리는 나 자신에게만 설명한다. 그러나 당황한 내 입은 어버버버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 손을 홱 낚아채 내게 눈을 흘기며 가는 여자를 보며 얼마나 억울했던가.
그 후 아이가 어릴 때 함께 갔던 체험 시설에서는 평소와 달리 재빠르게 행동한 덕에 욕을 먹었다.
자동문의 센서는 어느 정도 신장 이상이 되어야 인식한다. 어른이 앞에 서면 열리지만 작은 아이들은 인식하지 못하기에 열리지 않는다. 열리지 않는 건 괜찮은데 아이가 앞에 있어도 문이 닫힌다는 게 문제다.
그날 체험을 마치고 쭈그리고 앉아 아이가 신발 신는 것을 도와주고 있는데 내 등 뒤로 어른이 나간 뒤 닫히는 자동문 사이로 손을 뻗는 아이를 발견한 게다.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아이 손이 문에 끼기 직전에 급하게 아이를 잡아당기며 나까지 엉덩방아를 찧었다. 근처에 서 있던 아이 엄마는 아이를 왜 세게 잡냐며 나에게 짜증을 냈다. '이 여자 뭐야' 하는 그 표정에 방금 당신 아들 손가락이 낄 뻔했다고 목까지 올라왔지만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그 상황을 봤으면서도 살살 잡으면 되지 왜 세게 잡냐며 따지는 그 여성을 보며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우아하게 아이를 천천히 도와주지 못한 나 자신을 탓할 수 밖에.
보다 사소한 일들도 여러 번 있었을 게다. 반대로 나의 도움에 정말 고마워 한 사람도 많았을 거다. 나 역시 유모차를 밀고 가는 나를 위해 문을 잡아주는 사람이 얼마나 고마웠으며 아이 앉히라며 자리를 양보해주던 사람이 얼마나 감사했던가. 그런데 그러한 기억보다 억울했던 경험은 뒤가 참으로 길다.
어린아이가 지하 3층에서 30층까지 올라갔다 내려왔을 시간 내내 피가 마르는 것 같은 심정이었을 게다. 혹시라도 아이가 아무 층에서 내리면 어떻게 할까 전전긍긍했을 게다.
함께 지하철을 타고 있다가 자기를 잡아 보라며 갑자기 정차한 역에서 열린 문 밖으로 신나게 뛰어가던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 뒤로 사색이 되어 가방도 그대로 두고 뛰쳐나가던 엄마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다행히 기관사가 보셨는지 문이 천천히 닫히고 엄마는 아이를 둘러업고 다시 지하철로 탔다. 큰일 날 뻔했다는 주변 어른들 사이로 보이는 아이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치매 환자가 최근의 기억부터 잊고 오래전 기억을 가지고 있다더니만 나 역시 새로운 정보들은 잘 입력되지 않는다. 저번에도 들었는데 하는 친밀함은 있을 뿐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릴 때 배웠던 것들은 오래간다. 그런데 그것과 지금의 현실에 간극이 점점 커져만 간다.
어른이 도와달라고 하면 다른 어른에게 도와달라고 말해야 한다고 배운다.
'집 안에 혼자 있을 때 아빠 친구나 사촌 오빠나 남자 친척 어른이 오면 어떻게 할까' 하는 시험 문제의 답은 '다른 어른이 있을 때 다시 오라고 한다'다.(실제 기출문제다)
나 역시 물건이 떨어진 것을 보면 절대 손대지 말고 지나치라고 한다고 알려준다. 잃어버린 사람이 그 자리로 다시 찾으러 올 수 있다는 설명을 했지만 혹시라도 얽힐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아주 사소한 착한 일을 하기 전에도 망설여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