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성미니멀 Nov 09. 2023

착한 일을 망설여야 하는 시대

헤드라잇 캡쳐https://m.oheadline.com/articles/XPezVc9iECG_GsNW_oV5-A==?uid=5007761f0a7e4293b25ec24d7ec390


 '착한 일'을 하라고 배웠다.

 길을 잃은 어르신을 만나면 친절히 길을 안내해 드리고 어른이 말을 시키면 공손하게 대답을 해야 한다고. 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도와주라고 말이다. 

 그런데 다른 이를 위해 한 행동이 오히려 나를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만드는 일이 생기고 선행을 베풀었다가 소송에 휘말렸다는 기사들이 자주 보이자 이제 섣불리 나서지 말자 하게 되는 게다.

@pixabay

 결혼도 하기 전이었다.

 꽉 찬 엘리베이터가 닫히려는 순간 안에 타고 있던 여성이 문 밖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는지 갑자기 문을 열고 내렸다. 함께 있던 어린아이가 따라 내리기 전에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움직였다. 눈 앞에서 엄마를 놓친 아이는 울지도 못하고 멍한 상태. 분명 엄마가 아까 그곳에서 기다리겠지 싶은 생각에 아이를 달래 위까지 갔다 함께 내려왔다. 1층에서 문이 열리자마자 문 앞에 서 있던 여자는 앙칼진 목소리로 문을 닫고 그냥 가면 어떡하냐며 내게 소리를 쳤다. 


 문이 닫힐 때 나는 엘리베이터 안쪽에 서 있었다고. 사람들이 앞에 많았고 버튼에 손도 뻗을 수 없는 거리와 시간이었다고 내 머리는 나 자신에게만 설명한다. 그러나 당황한 내 입은 어버버버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 손을 홱 낚아채 내게 눈을 흘기며 가는 여자를 보며 얼마나 억울했던가.

@pixabay

  그 후 아이가 어릴 때 함께 갔던 체험 시설에서는 평소와 달리 재빠르게 행동한 덕에 욕을 먹었다. 

 자동문의 센서는 어느 정도 신장 이상이 되어야 인식한다. 어른이 앞에 서면 열리지만 작은 아이들은 인식하지 못하기에 열리지 않는다. 열리지 않는 건 괜찮은데 아이가 앞에 있어도 문이 닫힌다는 게 문제다. 


 그날 체험을 마치고 쭈그리고 앉아 아이가 신발 신는 것을 도와주고 있는데 내 등 뒤로 어른이 나간 뒤 닫히는 자동문 사이로 손을 뻗는 아이를 발견한 게다.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아이 손이 문에 끼기 직전에 급하게 아이를 잡아당기며 나까지 엉덩방아를 찧었다. 근처에 서 있던 아이 엄마는 아이를 왜 세게 잡냐며 나에게 짜증을 냈다. '이 여자 뭐야' 하는 그 표정에 방금 당신 아들 손가락이 낄 뻔했다고 목까지 올라왔지만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그 상황을 봤으면서도 살살 잡으면 되지 왜 세게 잡냐며 따지는 그 여성을 보며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우아하게 아이를 천천히 도와주지 못한 나 자신을 탓할 수 밖에.


 보다 사소한 일들도 여러 번 있었을 게다. 반대로 나의 도움에 정말 고마워 한 사람도 많았을 거다. 나 역시 유모차를 밀고 가는 나를 위해 문을 잡아주는 사람이 얼마나 고마웠으며 아이 앉히라며 자리를 양보해주던 사람이 얼마나 감사했던가. 그런데 그러한 기억보다 억울했던 경험은 뒤가 참으로 길다.

@pixabay

 어린아이가 지하 3층에서 30층까지 올라갔다 내려왔을 시간 내내 피가 마르는 것 같은 심정이었을 게다. 혹시라도 아이가 아무 층에서 내리면 어떻게 할까 전전긍긍했을 게다. 


 함께 지하철을 타고 있다가 자기를 잡아 보라며 갑자기 정차한 역에서 열린 문 밖으로 신나게 뛰어가던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 뒤로 사색이 되어 가방도 그대로 두고 뛰쳐나가던 엄마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다행히 기관사가 보셨는지 문이 천천히 닫히고 엄마는 아이를 둘러업고 다시 지하철로 탔다. 큰일 날 뻔했다는 주변 어른들 사이로 보이는 아이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치매 환자가 최근의 기억부터 잊고 오래전 기억을 가지고 있다더니만 나 역시 새로운 정보들은 잘 입력되지 않는다. 저번에도 들었는데 하는 친밀함은 있을 뿐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릴 때 배웠던 것들은 오래간다. 그런데 그것과 지금의 현실에 간극이 점점 커져만 간다.


 어른이 도와달라고 하면 다른 어른에게 도와달라고 말해야 한다고 배운다.

 '집 안에 혼자 있을 때 아빠 친구나 사촌 오빠나 남자 친척 어른이 오면 어떻게 할까' 하는 시험 문제의 답은 '다른 어른이 있을 때 다시 오라고 한다'다.(실제 기출문제다)

 나 역시 물건이 떨어진 것을 보면 절대 손대지 말고 지나치라고 한다고 알려준다. 잃어버린 사람이 그 자리로 다시 찾으러 올 수 있다는 설명을 했지만 혹시라도 얽힐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아주 사소한 착한 일을 하기 전에도 망설여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