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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Dec 22. 2023

책은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다

 서적, 블로그, 방송프로그램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정리를 이야기하는 곳들에서 늘 메인 타깃이 되는 것은 옷과 책.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그 필요와 용도를 만족하는 한 개, 여유분을 두어봤자 몇 개를 소장하는데 그친다. 그런데 그것의 개수가 많고 또 많아도 이건 다 다른 용도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옷(신발 포함)과 책이다. 그 생김이 다르고 그 내용이 다르니 이건 분명 같은 물건이 아닌 거다. 결과적으로 집 안에 같은 종류의 물품들의 개수를 세었을 때 옷과 책의 수를 따라오는 여타의 물건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


 많이 쟁여두기도 쉽고 버리자니 어쩐지 다 필요할 것 같다.

 그렇기에 이미 쓸모를 다 한 것들도 집 안에서 퇴출되지 아니하고 새로운 것들은 계속 들어오니 그 양은 늘어날 수밖에 없고 공간은 점점 잠식된다.


 지난주 우리는 과감하게 옷들을 비워냈다.

 이번주 비울 품목은 책이다.

@pixabay

 새 책을 고를 때처럼 지식에의 욕구가 샘솟는 순간이 없으며 읽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책들을 보면서 마음의 안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책을 버리라니. 책 많이 보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소리를 단 한 번도 듣지 않고 자란 대한민국 국민을 찾아볼 수 있을까. 어린 시절의 기억은 강렬하다. 이미 우리 뇌와 마음은 책을 버리는 행동은 무언가 나쁘다고 인식하며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낀다.


우리 그러나 직시하자.


책은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고 우리 집 책장에 꽂힌 채 시간이 흐른다고 가치가 상승하는 것도 아니다. 초판을 몇백 년 보관할 것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책 역시 소모품이다.

내가 필요한 책만 가지고 있어야 한다.

@pixabay

쉬운 것부터 비우자.

번호가 커질수록 난이도는 높아진다.


1. 이미 끝난 학업의 흔적들

 대학교 졸업한 지가 언제인데 전공서적이 즐비하고 이미 수년 전에 공부했던 자격증 관련 수험서들, 노트들이 좌르륵 꽂혀있지 않은가. 지난날의 영화는 기억 속에만 남기면 된다. 다시 공부할 거 아니다. 버리자. 자녀들이 공부한 책들도 계속해서 봐야 하는 기본서가 아닌 이상 버린다.


2. 공부할지도 모르는 책들

 토익 안 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는데 10년도 넘은 토익책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보려고 했던 자격증 수험서도 비싸게 사서 못 버리겠다. 공부 안 할 확률이 가장 높다는 것은 마음속에서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혹시라도 시험을 볼지 모른다며 붙들고 있었는가. 어떤 수험서든 최신 개정판으로 봐야 된다. 정오표 쓰다가 공부할 시간 부족하다. 시험 볼 거면 어차피 책 사야 된다. 있는 건 버리자.


3. 언제 구입했는지 모르겠으나 아직도 읽지 않은 책들

 이거 다음에 읽을 건데!라는 외침이 단전 깊은 곳에서 올라올 테다. 읽고 비우는 것이 최고다. 한쪽에 빼놓자. 몇 주, 정말 관대하게 몇 개월의 데드라인을 잡고 그 안에 책을 읽고 비우기로 하자. 기간 안에 그 책을 집어 읽는다면 다행이다. 읽었으니 비우자. 그 안에도 책을 읽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읽지 않을 책이다. 과감히 비우자.


4. 이미 읽은 책들. 다시 보지는 않을 책들

 오늘 우리가 가장 많이 추려내야 할 책들은 바로 이것이다. 재미있게 읽었다, 읽고 많은 것을 배웠고 생각했다. 그럼 그 책은 자기 할 일을 다 한 거다. 모든 책이 반복해서 읽을 필요가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대부분의 책은 한번 읽는 것으로 그 용도를 다 한 것인데 우리는 그 책들을 보내주지 못한다.

 서적이야말로 흔히 말하는 '소장가치'를 따져야 한다. 반복해서 읽을 가치가 있는, 늘 곁에 두고 때때로 다시 읽고 부분 부분 찾아 새기는 책만 소장하면 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비우자.


5. 아이 책

 이건 참으로 어렵다. 어른들은 이미 읽은 책과 읽을 책을 구분할 수 있는데 아이들 책은 그게 어렵다. 어른과 달리 어떤 기준에서인지 모를 책에 애착을 가지고 반복해서 읽는 경우도 있고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아예 보지 않는 책도 있으며 어느 순간 우리 집에 그 책 있지 않냐며 몇 년 만에 책을 꺼내 읽는 경우도 있다. 정말 어렵다. 그렇다고 비우지 않으면 아이 책은 그저 증식만 하게 된다. 이미 적정 연령대가 한참 지난 책은 정말 애정하는 책 몇 권을 제외하고는 비우는 것이 좋다. 줄글을 읽어야 할 아이가 그림책만 읽는 격이 될 수도 있다. 전집처럼 엄마의 욕심이나 필요에 의해 샀으나 정작 몇 권 보지 않아 아까운 책들은 하루 한 권씩 읽고 비우는 방법을 써도 좋다.

20평을 줄여 오며 책장 하나만 살아남았다. 10권을 제외하고 모두 아이 책

6. 반복해서 읽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소장하고 싶은 책들

지금까지는 잘 찾아보지 않았지만 어쩐지 앞으로 찾아볼 일이 생길 것 같은가? 지금까지 읽지는 않았지만 가지고 있고 싶은가. 판단의 기준이 잘 서지 않는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당신이 필요한 책의 일부 혹은 책 전체를 일일이 스캔해서 보관해 보자. 앞으로 자주 읽을 거니까 스캔을 해서 저장하는 거다.

 그 노동에 투입될 에너지는 상당할 테다.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스캔하고 싶은 책들이 있는가?

그 책만 남기면 된다.

당신이 실제로 계속해서 두고 보고 싶은 책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지니고 싶은 책들인 거다. 있으면 언젠가는 읽을 것 같고 읽고 나서 꽂아두면 언젠가 한 번쯤 다시 볼 것 같은 책들은 과감하게 비우자.

 책은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다.

 그 수가 빠르고 쉽게 늘어나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소모품이다.

 앞으로도 내게 쓸모가 남은 책들만 지니고 있으면 된다.

 공간도 자신도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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