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돈 주고 샀는데.
언젠가 필요할 것 같은데.
왜 자꾸 물건을 비우라고 하는 것인가.
물건을 비우지 않더라도 수납과 정리정돈을 잘하고 깨끗이 청소해도 되는 거 아닌가?
이 시점에서 약간의 울분이 섞인 이런 외침이 단전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올 당신을 위한 글이다.
이렇게 작은 집에서도 사그라들지 않는 물욕 때문에 자꾸만 물건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 자신을 위한 글이기도 하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매일 치우고 쓸고 닦는데 왜 우리 집은 늘 어수선한 건지 도통 모르겠고 가끔은 억울하기까지 한 당신을 위한 글이기도 하다.
그런 당신,
이렇게 청소하지 않았는가?
바닥에 놓인 물건들을 한쪽 구석에 잘 쌓아두고 청소기도 돌리고 걸레질을 했다.
물건을 들어 바닥과 주변을 잘 닦고 다시 그 옆 물건을 들어 다시 닦으며 먼지 한 톨 없이 청소했다.
식탁과 책상 위에 어지러이 놓여 있는 물건들을 각 잡아 진열한 후 상판을 닦아내기까지 했다.
주방 싱크대 위에 널브러진 주방 용품과 소스병들을 한데 모아 가지런히 두었다.
어느 한 곳에 나의 모습이 있다면,
우리 현실을 직시하고 방법을 바꿔야 한다.
청소와 정리정돈으로 공간이 넓어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의기투합해 하자는 건 청소와 정리정돈이 아니다. 이건 어지간하면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현실적으로 넓히기 힘든 물리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공간을 확보하려면 공간을 채우고 있는 물건을 비워내야만 한다. '물건 비우기'가 없이 깔끔하게 정리하고 청소하는 건 의미가 없다.
출처:한샘리하우스시그니처 우리 함께 남의 집 사진을 떠올려 보자.
트렌드이자 로망이라는 상부장 없는 주방. 상부장 없이 목재 선반을 질러 그 위에 예쁜 소품들을 올려둔 사진들이 아른거린다. 그런데 잠깐. 목재선반 위에 실제 사용하는 각종 식기와 반찬통, 주방 살림들이 빈 틈 하나 없이 빼곡히 쌓여 있는 이미지는 본 기억이 없다. 어디서 이런 예쁜 것들만 구해왔나 싶은 것들이 널찍한 간격을 두고 놓였다.
'오늘의 집'에서 감탄하며 보았던 집들은 어떤가. 영어로 된 라벨이 붙은 아기자기한 주방소품들을 예쁘게 줄지어 놓았다. 그러나 부엌이 주방 살림으로 꽉 차 있던 적이 있던가. 오브제들을 선반 위에 하나하나 올려 둔 모델하우스를 따라 하고 싶었는가? 모델하우스에는 실제보다 작은 가구와 소품만 있을 뿐 생활을 위한 각종 잡동사니가 단 하나도 없다.
출처: 스마트스토어 스타홈퍼니싱 인테리어 소품 역할까지 담당한다는 목재 오픈형 책장. 책은 거의 없다. 예쁜 소품들이 띄엄띄엄 놓여 있을 뿐이다.
우리가 지난주 그렇게 힘들게 버리려고 노력했던 책들을 기억해 보자. 책장에 모두 책들을 꽂고도 부족해 책 위에 또 책을 쌓여있던 책들. 책장만 바꾼다고 사진처럼 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책으로 뒤덮인다면 책장의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을 테니 말이다. 비어 있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편의점 냉장고의 음료수들처럼 각 잡아 진열하고 반듯반듯 예쁜 포즈로 물건들을 '정돈'해 두는 것. 이건 공간이 넓고 물건이 적을 때만 가능한 거다.
@pixabay
집에서 아예 요리를 하지 않는 이상 부엌 상부장을 없애는 건 실생활에 필요한 수많은 부엌살림을 넣을 수 있는 아일랜드식탁이나 하부장이 충분한 경우다. 책 자체가 없는 게 아니라면 책장 위를 저렇게 여유롭게 꾸며도 책을 넣을 수 있는 책장이 별도로 있을 때다.
공간이 넓어 물건 둘 곳이 충분하다면 이 글은 아무 쓸모가 없다. 넓은 공간에 단정하게 두기만 하면 된다. 공간이 크면 사실 물건이 많은 것도 심지어 어질러져 있는 것도 티가 잘 나지 않고 딱히 거슬리지도 않는다.
예전 집의 3분의 1만큼 크기의 작은 집으로 이사오며 거의 그만큼의 물건을 비워냈다. 그러나 그 많은 물건을 가지고서도 예전 집에서는 '모델하우스보다도 더 물건이 없고 깨끗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지금 집은 바닥에 겉옷 두 개만 벗어 놓아도, 요리를 위해 그릇만 몇 개 싱크대 위에 올려놔도 급격히 어질러진다. 어쩔 수 없다.
공간이 절실한 나와 같은 당신을 위한 방법이다.
딱 다섯 평만 넓으면 참으로 쾌적하겠다 싶다. 그런데 다섯 평을 넓히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원치 않았지만 그 현실적 벽을 알게 된 나와 같은 사람을 위한 글이다. 다섯 평의 공간을 넓히는 그 어려운 일 대신 우리는 현재 공간에서 물건을 비워내어 공간을 확보하기로 한 것이다.
청소와 정리정돈은 공간 안 적정한 양의 물건이 있을 때 하는 작업이다.
현재 우리는 작은 공간에 적정한 만큼 물건의 수를 줄이는 필수적 선행 단계를 밟고 있는 거다.
왼쪽 어수선한 사진은 그러나 이사업체의 정리담당 이모님이 심혈을 기울여 '정리'해놓고 가신 부엌이다. 저 상태에서는 라면 하나 끓이려고 해도 이거 치워 냄비 놓고 앞에 놓인 무언가를 치워 정수기 꺼내야 하며 안쪽 깊이 들어있는 그릇을 꺼내야 한다.
테트리스처럼 차곡차곡 쌓아 수납하는 것은 근본적 해결 방법이 아니다. 견고한 수납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리해야 하고 하나가 잘못된 무너지는 날에는 손 쓸 틈 없이 위로 쌓이는 테트리스 조각들처럼 우리 집 물건들도 우리 집을 덮어버린다.
집이 작다면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움직이고 활동하고 작업을 하기 위한 빈 공간이 확보가 되지 않으면 사소한 일 하나 하는 데에도 걸림돌이 많아지고 효율은 떨어지며 화가 난다.
이미지출처 https://naver.me/GQY17KoK 정리프로그램 속 양말까지 각 잡혀 접혀 있는 옷장의 애프터 상태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
그들은 놓여있던 물건들의 너비를 조절하고. 앞을 보게 하고. 걸려 있는 옷들을 색깔별로 나눠 촤르륵 걸어 두고 옷들을 네모 반듯하게 접혀 착착착 열을 지어 세로로 서랍 안에 넣는다. 책들은 전집 별로 분류하고 크기를 맞춰 꽂는다. 그릇과 냄비도 색깔과 크기를 맞춰 보기 좋게 반듯반듯 열을 맞춰 놓는다.
마치 사진을 찍었을 때 가장 깔끔하고 가장 깨끗해 보이는 각도와 방향으로 딱 맞는 포즈를 취한 물건들은 보기에 좋다. 그러나 며칠만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다.
물건을 사용할 때마다 그때 그 포즈를 맞춰 놓기는 불가능하다. 보기 좋게 쌓인 그릇을 사용하려면 매번 몇 개씩 들어내야 하고 세탁한 옷은 그 모양대로 갤 수도, 세로로 끼워 넣기도 버겁다. 물건 하나를 꺼내려면 앞에 놓인 물건을 꺼내 옆으로 놓아야만 한다. 물건을 꺼내고 용케 제자리에 넣었지만 사용한 물건을 넣으려니 또 앞에 장애물이 있다. 결국 그건 일단 보이는 아무 표면에 놓게 되는 거다. 청소와 정리정돈이 유지되려면 동선에 막힘이 없어야 한다. 차곡차곡 각 잡혀 놓인 물건들은 그때뿐이다.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면 순식간에 각은 무너져 내린다.
물건들을 반듯반듯 넣어두는 것은 적정량까지 물건을 줄인 이후에 할 일이다. 물건을 비워 공간을 확보하고 정리해야 할 것 자체가 줄여야 진짜 정리가 된다. 집안의 모든 수납공간의 너비를 합친 것보다도 많은 물건을 끌어안고서 이걸 어떻게 잘 수납하고 정리해야 할까 고민해 봤자 아무 소용없다.
공간이 필요한가.
물건을 비우자.
각 잡아 놓는다고 공간이 넓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