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성미니멀 Jan 05. 2024

둥지파괴-쉽지 않지만 집이 커진다.

 어학사전에도 위키백과에도 없다.

 "둥지파괴."


  미니멀 라이프 좀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되는 비우기의 극약처방, 둥지파괴.

 물건이 새끼치고 자가증식하는 둥지인 수납 가구를 먼저 없애는 방법.

@pixabay

 인테리어잡지 속 사진처럼 책 몇 권과 예쁜 소품 한 개씩을 띄엄띄엄 올려두려고 거실에 둔 아름다운 목재 오픈 책장. 처음엔 분명 비슷했는데 어느 순간 오만가지 장르의 물건들이 그 위에 아무렇게나 올라가 있다.


 식탁 위에 매번 올라와 있는 물건들을 깔끔하게 정리해 보고자 부엌에 들인 서랍장은 어떠한가. 며칠 만에 식탁은 원상복구 되었는데 서랍장 안에는 온 집안 잡동사니들이 사이좋게 뒤섞여 있다.


 책장과 서랍장을 사기 전에 이 물건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을까 궁금해지는 당신에게 필요한 것, 둥지파괴.


 팔을 뻗어 닿는 딱 그 높이에 올려둘 곳이 있으면 일단 올려두게 된다. 물건의  제 자리를 찾아 두는 것보다 편하니 당연하다. 일단 치워야 되니까 잠깐 두었다 이따 치워야지 하는 마음이었으나 그 물건은 이제 그곳에 따스한 둥지를 틀게 된다.


 서랍장은 더욱 교묘하다. 물건을 정리하는 건 귀찮지만 일단 쑤셔 넣고 서랍만 딱 닫아놓으면 이렇게 깔끔할 수가 없다. 늑한 지 탄생이다.

@pixabay

  정리를 해야겠다 마음먹으면 일단 수납박스부터 사고, 박스를 보관할 수납장을 사는 것을 반복하는가.


 자잘한 상자 상자에 담긴 물건 하나 찾으려면 수납장마다 돌아다니며 박스 하나하나 다 열아봐야 가능하다. 한방에 찾으면 다행이다. 본체는 이 박스에서 찾았는데 충전기를 찾기 위해 다시 처음부터 뒤져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수납 방식이 바로 하나하나 수납상자에 넣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정리용품은 수납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고 가시적으로 정돈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건 물건 종류별로 제자리를 정해 놓고 비슷한 종류끼리 한 장소에 모은 후 정리용품에 담아 넣는 경우다. 눈에 보이는 대로 죄다 상자에 하나씩 쑤셔 박아 수납장 빈 공간에 하나씩 하나씩 쑤셔 박는 건 정리가 아니다.

  

 정리 유전자가 없는 나만 그런가 보다며 자책할 필요는 없다.

 밖에 나와 있는 것 하나 없는 깔끔한 집의 서랍장과 붙박이장들이 의외로 카오스인 경우가 은근히 많다.

 정리 너무 어렵고 어질러진 물건들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으니 일단 넣어둘 곳이 필요하다면 정신 건강을 위해 무조건 안된다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수납장과 책장 등 가구가 차지하는 공간은 크다. 집이 훅 좁아진다. 딱히 필요 없는데 들여야 할 돈 역시 상당하다.

@pixabay

 분명 이사 왔을 때는 집이 넓었는데 이상하게 집이 좁아졌다 싶다면 그 사이 늘어난 둥지들을 체크해 보자.

 

 텔레비전 밑의 거실 수납장, 부엌의 수납공간이 좁다며 추가로 구매한 부엌 수납장, 책 꽂을 데가 없다며 추가로 구매한 책장들.

 그 안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물건들 중 반드시 이곳에 있어야 할 물건이 과연 몇 개나 있는지 세어보자. 청소를 하다가 손에 잡히는 물건들을 일단 여기에 집어넣은 것이 아닌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플라스틱 용기들에게 부엌 상부장을 내주고 수납장을 산 것이 아닌지. 이미 중학생인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읽던 책을 정리하지 않은 채 책장부터 사서 넣은 것이 아닌지 냉정하게 따져보자.


 현실을 직시했다면 시간을 들여 물건을 하나하나 비워낸 후 마지막으로 수납장까지 비우면 이상적이겠지만 이게 쉽지 않다. 열심히 비운다고 했는데 그다음에 보면 바닥에 있던 물건들을 또 누가 넣어두었다. 나도 넣는다. 줄어들 수는 있지만 비워지지 않는 마법 같은 곳.


이럴 때 사용하는 방법이 둥지파.

일단 둥지부터 비운다.


 필요한 사람에게 주던, 중고로 팔던,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 버리든 일단 수납가구를 비워낸다. 그 안에 있던 물건들은 갈 곳을 잃는다. 바닥에 다 쏟아내 보자. 처음에 차곡차곡 정리해야지 하던 마음은 끝없이 나오는 물건에 놀라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불필요한 물건들을 비워내게 만든다. 이런 쓰레기들을 왜 여기 넣어두었지 싶은 대부분의 물건은 종량제 봉투 속으로 간다필요한 것들은 원래 있어야 할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야 할 곳에 다른 물건들이 점령하고 있다면 이제 그곳의 물건들을 비워내게 다.

 텔레비전을 올려두던 책상 서랍 두 개에는 연결된 게임기들의 각종 케이블과 리모컨들이 잔뜩 들어 있었는데 텔레비전과 게임기를 치웠으니 책상 자체가 필요 없는 거였다.

 사드테이블 역시 없다면 처음부터 제자리로 들어갈 물건들이 거쳐가는 곳일 뿐이었다.

  있으면 편하지만 이 작은 집에서는 책상이 더 튀어나온 단 15cm가, 작은 테이블이 차지하는 공간의 비중도 너무 크다. 소파를 들이며 훅 좁아진 빈 공간을 둥지 두 개를 없애며 다시 확보한다.


둥지를 파괴함으로써 새끼 친 물건들을 비워내고 제 자리로 보내준다. 그 어떤 비우는 방법보다 효과가 크다.

소가구 하나만 비워도 집은 커진다. 커다란 수납가구라면 말할 것도 없다.


큰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가. 둥지 몇 개를 비워내자.

안다. 쉽지 않다.

그러나 집이 커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