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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Feb 22. 2024

얼굴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안경을 맞췄다.

 선글라스 말고 마지막으로 안경을 꼈던 그때 내게 아이가 없었으니 참으로 오랜만이다.


 슬프게도 그러나.

 이번엔 맞춘 안경은 가까운 것을 잘 보이게 해 주는 거다. 이렇게 길게 풀어써 봤자 노안교정용,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돋보기안경인 셈이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몹시 오랫동안 안경을 썼고 라섹을 하며 신세계를 맞이했다. 추운 곳에 있다가 따듯한 실내로 들어가도 김이 서리지 않는다는 것,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떴을 때 더듬거리며 안경을 찾지 않아도 눈 뜬 그 순간 바로 선명하고 또렷한 시야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너무나 일찍, 진료차트에 적힌 내 나이의 앞자리가 무려 3일 때

 노안이 시작되었다.


 핸드폰을 점점 멀리 띄워 보기 시작했고 눈앞에 서류를 들이밀면 흐릿하니 보이지 않았다. 눈에 힘을 주고 초점을 맞춰야 작은 글씨들이 면에서 선으로 변신하며 뇌로 들어왔다.


 회사에서 두 개의 모니터를 눈도 제대로 깜빡하지 않은 채로 9시부터 6시까지 들여다보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노안과 함께 피로로 인한 침침함까지 더해져 인쇄된 글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채점해 주겠다며 아이 문제집을 폈는데 글자가 너무나 흐릿하다. 3인지 8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9라고 다를쏘냐. 이것 역시 8인가 0인가를 들여다봐야 한다.

 심한 날에는 두 자리 숫자가 세 자리로 보인 날도 있다. 침침한 눈으로 블로그에 들어갔는데 방문자수가 천 단위가 되어 순간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며 기뻐했지만 노안으로 인한 거였다.

 나의 블로그 방문자 수는 참으로 진득하게 어제와 그제 또 그 전날 숫자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사물을 점점 더 멀리 해야 보인다는 것.

 노안.

 슬픈 일이다.

 아이 해답지를 테이블 한가운데까지 밀어내면 그제야 숫자들이 다른 모양으로 변신하지 않고 한 숫자로 겨우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텼다.


지금 노안 안경을 맞추면 계속 쓰게 될까 봐.

나도 모르게 안경을 추켜올리며 먼 것을 보게 될까 봐 버티고 버텼는데.

@pixabay

결국 안경을 맞췄다.


 안경점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눈이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거라 했다. 안경 쓴다고 노안이 더 빨리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디게 진행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며 작업할 때는 안경을 쓰기를 권유했다.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싹 다 버렸는데 용케도 라섹 전 사용하던 안경테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안경이 너무나 안 어울리는데 써야 하는 사람으로서 진짜 어쩌다 어울리는 안경테를 만났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 내게 너무나 고가의 안경테였는데 진짜 큰마음먹고 구매했던 터라 안경을 쓰지 않으면서도 가지고 있었다. 그때는 보호용 안경을 쓰게 되면 써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노안안경으로 급 점프다.


 고급 져 보이던 가죽케이스는 다 삭아서 가루가 떨어졌지만 안경테는 아직도 멀쩡하다. 안경테에도 유행이 있는데 이건 요새 유행하는 테가 아니라는 안경사 말에도 그냥 렌즈만 교체했다. 근거리용이라 어차피 멀리 있는 것은 더 흐릿해 보이니 작업할 때만 쓰는 건데 딱히 유행 따를 필요까지. 게다가 이미 아이 안경 가격으로 후덜덜한 금액을 지불한 직후였다.

@pixabay

 살짝 뿔테안경같이 생긴 안경은 인상을 차갑게 만든다.

 분명 나인데 나 같지 않다.

 얼굴을 인식해 잠금을 해제하는 태블릿은

 안경 쓴 나의 얼굴을 보더니

 "얼굴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라며 잠금을 풀어주지 않는다.


 안경을 쓰니 아이는 무서워 보인단다.

 오오 그래? 바로 이거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 꼭 쓰고 있어야겠다.

 오오 그래? 바로 이거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 꼭 쓰고 있어야겠다.


 사무실에서 안경을 처음 쓴 날.

 내 자리 왼쪽과 오른쪽의 직원들의 시력 저하의 역사, 안경 이야기, 그 남편의 백내장 수술 일화를 줄줄이 듣고 마지막 눈건강을 위한 음식 추천까지 듣고 나니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어이쿠야 이런 예상치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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