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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Apr 21. 2022

야매 미니멀 라이프가 뽀록나는 사진을 공개합니다

  미니멀리스트들 싱크대 서랍에 냄비 하나, 프라이팬 하나 단출하게 들어있는 사진 보여주며 이것만으로 모든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다이야기하는 와중에, 미니멀 라이프 근처에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많은 주방 제품 개수를 공개하다니. 야매 미니멀인 것이 로 뽀록난다. 거기다 큰 냄비들 아래쪽의 갈색 그을음은 어쩔 것인가. 미니멀 라이프라면 응당 거울인지 스텐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반짝거리는 사진을 공개해야 하지 않는가.


 어쩔 수 없다. 나에게 필요한 양은 이만큼이다. 그리고 나는 반짝거리는 스텐보다는 내 손목이 더 소중하다.

 

 그래도 나는 스텐 제품이 좋다. 솔직히 말하면 표준어도 아니고, 나이 들어 보이는 것도 아는데 '스텐''스댕'이 더 착 붙는다. 계량기함을 뜯어 만들어 낸 부엌 붙박이장 아랫부분엔 냄비와 프라이팬, 찜기, 밥 해 먹는 압력솥, 믹싱볼까지 요리에 필요한 것이 모두 들어있다. 처음부터 모두 스텐 제품만 산 건 아니었는데, 흠집이 너무 많이 난 플라스틱 제품,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들, 불에 녹았거나 망가진 제품들을 버리고 더 사지 않았더니 이것들이 끝까지 남았다.

 

밥 해먹는 압력솥부터 모든 믹싱볼, 채망, 바트까지 모두 스텐이다

 압력솥에 밥을 하고 가짓수가 적더라도 새로 반찬을 해서 먹는다. 물론 모두 다 해서 먹지는 않지만, 사서 먹는 반찬도 스텐 팬에 한번 다시 볶거나 스텐 냄비에 다시 끓여 먹으 한 반찬처럼 맛있다. 사실 나는 남이 해준 건 다 맛있다. 굳이 사 왔는데 또 볶으려니 귀찮다. 냉장고에 들어갔던 것도 또 먹을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의 식사량이 차이가 난다. 어쩔 수 없다. 일요일 점심 간단히 먹자며 비빔면에 군만두 하는데 텐만 냄비, 스텐 팬, 믹싱볼, 체망 네 개가 나온다. 중간중간 설거지를 해가며 요리를 하면 가능할 텐데 그럴 실력이 안된다. 핑계를 덧붙이자면, 조금만 늦어져도 간식 창고를 뒤지고 있는 아이가 있어서 속도가 생명이다. 이러니 한 끼에도 몇 개가 필요하다.


 능하면 한 끼에 다 먹으려고 하지만 요리하고 남은 건, 냄비나 팬 채로 냉장고에 보관한다. 그릇에 덜었다가 다시 냄비를 꺼내 데우 설거지 개수도 늘고 에너지많이 든다.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맛이 없단다. 그러니 한 개 가지고는 안된다. 불현듯 한밤 중 라면을 먹고 싶다는데, 음식이 담긴 냄비를 비우고 씻어서 라면을 끓여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옳지 않다.

 야채를 스텐 믹싱볼과 체망을 이용해 씻고, 남 따로 지퍼백에 담지 않는다. 다시 스텐 믹싱볼에 넣고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넣는다. 아래 위로 키친타월을 한 장씩 깔아 두면 더 오래간다. 너무 많이 남으면 스텐 바트를 이용한다. 튀김 기름을 받치는 용도인 스텐 발은 야채에 물기가 직접 닿지 않게 한다. 스텐에 담은 채는 그 어떤 밀폐용기보다 신선함이 오래간다. 


  곰솥은 우리 집에 있는 가장 큰 용기다. 흔치는 않지만 대량의 채소를 손질할 때, 그리고 어쩌다 스텐 씻을 때 등 큰 용기가 필요할 때 활용한다. 사각 팬은 닭갈비나 스테이크, 떡볶이를 만들 때 쓰고, 쟁반이나 큰 보관용기가 으니 감자나 고구마를 사면, 종이 한 장 깔고 이곳에 담아둔다.


다용도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두가지. 가장 오래됐지만 손에 익어 편하다

 전골냄비라고 이름이 붙었던 낮은 냄비는 프라이팬도 됐다가, 냄비도 됐다가, 웍도 됐다가 한다. 스텐 제품은 용도에 제한이 없다. 음식양을 보고 가장 크기가 적당한 걸 골라 쓰면 된다. 다른 주방 조리도구들이 할 일들을 이만큼의 스텐 제품이 모두 하고 있다. 그래서, 이만큼은 가지고 있는다. 여기저기서 각자 일을 하고 있어서 붙박이장이 이렇게 꽉 차 있을 때는 별로 없다.


 대부분 그러하듯 결혼하면서 스텐 세트를 하나 샀고, 이유식 해 먹는다고 력밥솥과 2단 찜기 냄비를 샀으니 가장 오래된 건 15년이 넘었고, 가장 최근에 산 사각 팬은 3년이 되었나 보다. 하지만 무엇을 가장 먼저 산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상태는 모두 양호하다. 오히려 예전부터 썼던 것들이 조금 더 잘 길들여져서 다는 느낌이 든다.

 

 용하기 아주 쉽고 편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프라이팬은 단언컨대, 코팅 팬이 더 편하다. 스텐 제품이 좋은 객관적인 근거들을 다 확인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기만 골라 어떤 음식을 담아, 어떻게 조리해도 되는 그 무던함이 좋다. 행여나 상처 날까 걱정할 필요 없이 개운하게 씻어낼 수 있는 것이 마음에 든다. 조금 더 신경 써서 잘 닦아주고 날을 잡아 묵은 때를 벗겨주면 마치 새것처럼 다시 반짝거리면서 나의 노동에 즉각적인 보상을 해 주는 스텐 제품이 좋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내 손에 익어 쉽게 불 조절해서 사용할 때의 흐뭇함도 있고 늘 같은 모습으로 오래 사용하면서 단순한 소모품에게 느끼지 못하는 약간의 애정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야매 미니멀인 것은 뽀록났지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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