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들이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물건을 버릴 때 제발창의성을 발휘하지 말라는 거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한다면 , '이렇게 써볼까?, 저렇게 활용해볼까?' 하며전에 없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버리려던 것을 다시 서랍 안으로 넣는 행동은 금물이다.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난 작은 싱크대 안에는건조대가, 위에는 수건걸이, 수저통, 컵 받침이 걸려 있다. 설거지 후 고무장갑과 수세미를 말리기 위한 수건걸이 말고는 다 뺀다. 예전 같으면 기부 상자에 넣어 놓았다가 한꺼번에 보낼 텐데, 작은 집에는 안타깝게도 기부 상자를 보관할 장소가 없다. 당장 필요하단 사람이 없으면 분리수거장으로 직행이다.
완전히 새 물건이라, 버리려니 좀 죄책감이 든다. 나눔을 해볼까 싶어 당*을 다시 깔아 본다. 하지만찍어 올리고약속을 잡고 기다리고할 생각을 하니안 되겠다. 다시 '설치 삭제'를 누른다.
하지 말라는 창의성을 발휘하고 만다.
그리하여, 수저통은 우리 집 AI스피커, '클로바'의 집이 되었다.
이사 직후-현재 주방-클로바의 집이 된 수저통
보통 다른 집에서 자주 찾는 리모컨은 우리 집 텔레비전 밑 서랍에 항상 들어가 있는데, 이 스피커는 아이가 들고 다니면서 들으니 '엄마, 클로바 어딨어?'를 하루 한 번씩은 묻는다. 클로바 자리라고 책장 구석자리를 정해놨지만, 소용없다. 그런데 수저통에 클로바를 넣으니 쏙 들어간다. 책상다리에 걸어주니 자기 직전 손 뻗어 닿는 바로 그 자리다. '클로바 집'이라고 하자 아이도 꼬박꼬박 집 안에 넣어둔다. 미니멀 라이프에서는 또 한 걸음 멀어졌으나, 만족스럽다.
AI스피커 클로바를 보면서, 사회생활은이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질문을 알아듣지 못하면 '음, 제가 이해하지 못했어요'라고 그 자리에서 이야기한다.
질문에 맞지 않는 답을 이야기해서 '클로바, 그거 아니야' 했더니 '더 나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라며 바로 잘못을 시인하고 개선 의지를 밝힌다. '네 발음이 부정확한 거야!'라고 남 탓을 하지 않는다. 바람직하다.
아이가 장난으로 '클로바, 멍청이' 했더니 '상처가 되는 말이에요'라고 기분 나쁘지 않은 어투로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이건 정말 쉽지 않은 건데.
'클로바, 대단하다' 하니 '칭찬해 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드릴게요 '라고 한다. 겸손하면서도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다른 사람 칭찬에 어색한 나머지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대단한 놈. 내가 40년 넘게 살면서 아직도 제대로 못하는걸 머리털도 없는 클로바는 이렇게 잘 해내는구나. 그래, 이 정도면 집을 마련해 줄 만하다.
이런 기특한 클로바에게 연동된 스트리밍 서비스에 만들어 놓은 나의 음악 리스트를 들려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