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의 월요병은 직장인보다 더 하다. 천둥벌거숭이처럼 뛰어놀다 제도권 교육에 입문하자마자 왜 시간은 주중에는 나무늘보처럼 느리면서 주말에는 치타처럼 빠른 거냐고 울부짖었다. 명확한 놈.
그러나 월요일 휴가는 주말의 시간도 나름 정상적으로 흐르게 만든다. 어느 요일의 휴가라고 기쁘지 않을 리 없지만 이건금요일 오후부터 사람을 여유롭게한다.
느지막이 일어나 공 들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개학 임박이니 이 기회에 저절로 눈 떠질 때까지 자라고 아이도 깨우지 않는다.커피를 내려 마시려는 순간엄청난 강도의 드릴 소리가 난다. 아파트와 층간소음은 언제나 함께하는 것이란 걸 익히 알고 있지만, 오늘의 드릴 소리는 우리 집 천장이 무사한지 올려다보게 되는 수준이다. 바로 윗집에서 공사를 하나 보다. 골이 흔들린다는 표현이 딱이다. 급하게 씻고 태블릿과 게임기를 챙겨 굉음에 깬 아이와 함께 카페로 출발한다.
월요일 아침 카페에서 브런치라니! 계획에 없던 카페 나들이에 아이도 나도 급 흥이 난다.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공사 안내문을 보니 우리 집 위층은커녕 한참 아래층의 철거공사였다. 아파트란 것이 이렇구나.뜬금없이깨닫는다.
한가할 줄 알았던 카페는 아이와 대각선으로 앉아야 할 만큼 꽉 차 있다. 평일 오전에 커피를 마시면서 여유롭게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 내가 오늘 그 사람이라며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 사람한테자랑질을 한다. 미안하다. 너무 좋아 그랬다.
브런치 메뉴에 좋아하는 콜드브루까지 받아 든다. 역시 남이 차려준 건 다 맛있다. 오늘은 더더욱 맛있구나. 샐러드 속 풀때기들이 이렇게 싱싱하고 아삭하게 씹힐 일인가. 똑같은 삶은 계란인데 왜 남이 해서 샐러드에 넣어준 계란은 이다지도 매끈거리고 탱글거리냔 말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스 아메리카노를마시면도내가 집에서 못해먹는 콜드브루라는 생각에 더욱 쌉싸름하고 향긋하고 개운하다.
이 모든 상쾌한 미각은 오늘이 월요일 아침이고, 이것이 남의 노동에 의한 밥상이라 그럴게다. '왜식 금지'를 새기고 자중하던 중이었으나, 오늘의 브런치는 그동안의 인고의 시간을 한 순간에 보상해 주는 기분이다.
늑장을 부리며브런치를먹고 관대하게 게임기를 내준다. 갱년기가 의심스러운 엄마 앞에서 아무래도 자기 사춘기가 시작된 것 같다던 초등생 입에서 엄마 사랑해요 소리가 바로 나온다. 그래, 너도 오늘 휴가다. 그리고 나는 늘 상상하던구도 그대로 콜드브루를 오른쪽 옆에 두고 태블릿을 연다. 전업 작가가 되면 이런 기분을 매일 누릴 수 있을까. 이것이 일상이 되어도 나는 어쩐지 매일 새롭게 행복할 것 같다면서아무 짝에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한가로이 하고 있다.
과일쥬스 옆에 놓고 게임 삼매경에 빠진 아이도, 평일 아침 카페에서 한갓지게 글을 쓰고 싶다는 자그마한 로망을 실현한 나도 더없이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