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약이다.

Part1. 집밥 안정제

by 야미야니

상담실에 들어온 아이에게 제일 먼저 묻는 말이 있다.

"아침 먹었어?"

심리검사지를 펼치기 전에. MMPI를 판독하기 전에. 그 어떤 질문보다 먼저였다.


이상한 상담사라고 했다. 심리상담을 하러 왔는데 왜 밥 이야기를 하느냐고. 부모님들도 처음엔 의아해했다. "선생님, 우리 아이 마음이 아픈 거지 밥이 문제가 아닌데요."

아니다. 밥이 문제다.

정확히 말하면, 밥이 문제의 시작점이다.

S가 시무룩하게 상담실로 들어왔다.

"제발 엄마에게 학교 그만둘 수 있게 해 주라고 해주세요."

고등학생 여자아이였다. 학교에 재미도 없고, 같이 놀 친구도 없고, 자기만 지나가면 다들 수군거리는 것 같다고 했다.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정신과도 꽤 오래 다녔다. 약도 먹었다. 별반 차도가 없어서 나에게 왔다. 상담을 하면 할수록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S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였다. 실제로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하지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의 특성상, 모두가 자기를 봐주고 인정해 주지 않으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곤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각박한 중학교 생활, 권위적인 아빠의 성적 압박, 코로나로 무너진 일상. 이 모든 것이 겹치면서 S의 하루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들여다봤다. 아침을 굶고 학교에 갔고 학교 급식도 맛없어서 또 굶었다. 하교 길에 편의점 삼각김밥, 불닭볶음면, 초콜릿으로 하루를 때웠다. 그게 S의 하루 식사 전부였다.

나는 심리검사 결과지를 덮었다.

그리고 물었다.

"너, 요리 좋아한다고 했지?"

S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네가 집에서 밥을 차려봐. 너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S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담을 하러 왔는데 요리를 시키다니.

하지만 나는 확신이 있었다. 이 아이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심리검사 한 장이 아니라, 자기가 잘하는 걸 할 수 있는 여유, 그리고 그걸 알아봐 줄 사람이었다. 어릴 때는 존재만으로 사랑을 듬뿍 받았다면 이제는 사랑받을 자격을 하나씩 갖추는 연습을 해야 했다.

S는 이틀에 한 번씩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무기력해질 시간이 없었다. 밥상 차리느라 바빴으니까.

가족이 좋아하는 메뉴를 물어봐야 했다. 무섭던 아빠에게 "오늘 뭐 먹고 싶어?"라고 말을 걸어야 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성적만 가지고 꾸짖던 아빠가, 딸이 차려준 밥상 앞에서 말을 바꿨다.

"이거 네가 한 거야? 정말 맛있는데~"

그 한마디. 그 한마디가 S를 바꿨다.

밥상이 바뀌자 대화가 시작됐다. 대화가 시작되자 관계가 풀렸다. 관계가 풀리자 S의 얼굴이 밝아졌다. 학교에 결석계를 내지 않아도 됐다. 출결이 좋아지면서 성적도 조금씩 올랐다. 많이 오르진 않았다. 0.5씩 2번의 등급 향상. 하지만 그건 숫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S는 자기 진로를 요리, 조리로 정했다. 생각해 보라. 정신과 약을 먹으며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던 아이가, 요리를 통해 마음을 안정시키고 진로까지 찾았다. 학교는 그냥 일상처럼 다니기 시작했다. 매일 밥을 먹는 것처럼


약을 끊고, 음식을 시작했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음식 처방전’이다.

S의 사례가 특별했을까? 아니다.

나는 상담실에서 이런 패턴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목격했다.

무기력한 아이 뒤에는, 혼자 먹는 편의점 도시락이 있었다.

불안한 아이 뒤에는, 가족이 함께 앉은 적 없는 식탁이 있었다.

산만한 아이 뒤에는, 카페인과 설탕이 가득한 과자 봉지가 있었다.


우리 딸아이가 매일 잠들기 전 하는 인사말이 있다.

"엄마, 내일 아침은 뭐야?"

다음 날 아침엔 아들과 딸이 합창한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전에 하는 말.

"오늘 저녁은 뭐야?"

우리 세대 부모님들은 눈만 마주치면 하루에도 수십 번도 말씀하셨다. "밥은 먹었니?" 그게 안부이고, 그게 사랑이었다. 함께 하는 식사의 메뉴를 묻고 답하는 것, 그것이 소통의 시작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지내면서 하루 혹은 일주일 내내 한 자리에 앉아 함께 할 시간이 없다는 건, 어쩌면 그만큼의 관심도 없다는 뜻이다. 제발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라는 말은 하지 말자. 그 ‘먹고살기’라는 문장의 1번이 바로 내 사람들, 내 가족과 함께 잘 먹고 잘 살기 위함 아니던가.

이미 가족이 함께 주 3회 저녁을 함께 먹는 가정이, 그렇지 않은 가정보다 비행 청소년이 될 확률이 현저하게 낮다는 연구가 발표된 바 있다.

밥도 함께 먹을 애씀도 없으면서, 성적이 떨어지면 그제야 ‘앉아봐!’로 시작되는 협박성 대화!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제야 ‘도대체 뭐가 문제니?’ 라며 갑자기 부모 노릇 하겠다고 다가오면, 아이들은 너무 불편한 거다.

평소에 서로의 식사와 하루를 묻는 가족이 언제든지 소통되는 법이다. 그러기엔 너무 작지만 소중하고 간단명료한 오늘의 식사 메뉴가 제격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것에 이름을 붙였다.

집밥 안정제.

심리학 용어로 출원까지 했다. 나는 진심이다.

집밥 안정제는 엄마가 해주는 밥만을 뜻하지 않는다. 집에서 먹는 배달 음식이 될 수도 있고, 할머니가 해주시는 전통 음식일 수도 있고, 아빠가 해주는 조리음식이 될 수도 있다. 아들이 해주는 분식이, 딸이 만든 젤리비스킷버거가 될 수도 있다.

S가 가족에게 차려준 밥상이 집밥 안정제였다.

가족 구성원이 함께 모여 함께 맛보고 즐기고, 씹고 뜯고, 웃고 떠드는 그 모든 것들 — 그 시간 자체가 약이다. 몸과 마음을 모두 안정시켜 주는 안정제인 것이다.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음식에 힘을 실었다.

세상에 없는 단어다. 내가 지었다.

食 即 自 愛

식 즉 자 애

(잘) 먹는 것이 자기 사랑이다.

食(식) — 먹을 식. 우리가 매일 입에 넣는 모든 것.

即(즉) — 곧 즉. 바로, 곧, 다름 아닌.

自(자) — 스스로 자. 나 자신.

愛(애) — 사랑 애. 돌봄, 존중, 아끼는 마음.

약사가 약식동원을 말할 때, 그것은 과학의 언어다. 음식과 약의 뿌리가 같다는 팩트.

내가 식즉자애를 말할 때, 그것은 관계의 언어다. 내가 무엇을 먹느냐가 곧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것.

아무 음식이나 함부로 먹는 것은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과 같다.

S는 자신을 함부로 대하고 있었다. 편의점 삼각김밥과 불닭볶음면으로 하루를 때우는 것은, 배를 채우는 행위이지 자기를 돌보는 행위가 아니었다. S가 가족에게 밥을 차리기 시작했을 때, S는 비로소 자기 자신을 돌보고 가족을 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타인을 위한 요리가 자기 치유가 되는 역설. 그것이 음식이 가진 힘이다.

나는 상담사로서 수많은 내담자를 만나며 하나의 공식을 발견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먹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 자기가 먹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점점 건강해진다. 건강해진 사람은 주변 사람까지 건강하게 만든다.

반대도 성립한다.

자기를 돌보지 않는 사람은 아무거나 먹는다. 아무거나 먹는 사람은 점점 아파진다. 아파진 사람은 주변 사람까지 아프게 만든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음식과 마음은 서로를 먹여 살린다.

그래서 나는 마인드풀 이팅(mindful eating)도 상담에 도입했다.

마음 챙김 식사. 내가 먹고 있는 음식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손에 닿는 것 아무거나 입에 넣거나, 배가 불러도 앞에 있는 음식을 계속 집어넣는 우리에게, 마인드풀 이팅은 잠깐 멈추라고 말한다. 지금 나는 배가 고픈 건지, 외로운 건지, 스트레스를 받는 건지. 내가 이 음식을 먹고 싶은 건지, 그냥 입이 심심한 건지.

그 질문 하나가 식사의 질을 바꾼다. 식사의 질이 바뀌면 몸이 바뀐다. 몸이 바뀌면 마음이 바뀐다.

음식과 관계를 맺자. 타인과 관계를 맺기 전에 나와 관계를 맺자.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 집중하고, 내가 먹고 있는 음식에 집중하고, 내가 음식을 먹고 있는 그 시간에 집중하자.

그러면 그게 바로 만병통치약 아닌가.

박정원은 약식동원을 통해 음식의 과학적 뿌리를 보여줬다.

나는 식즉자애를 통해 음식의 심리적 뿌리를 보여주고 싶었다.

둘은 같은 뿌리의 다른 가지다.

약식동원이 말한다 — 음식과 약의 근원은 같다.

식즉자애가 말한다 — 잘 먹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 두 문장이 만나는 곳에, 이 책이 있다.

이 두 문장이 만나는 곳에, 당신의 식탁이 있다.

더 큰일을 하고 살고 있다고? 아이를 위한 영유아 프로그램을 찾아내고, 가장 핫한 카페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고, 스펙을 쌓기 위해 먼 나라도 마다하지 않고, 명품을 겟하기 위해 오픈런도 하지 않는가. 그런데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이루는 음식들을 위한 그 잠깐 몇 분을 투자 못할 리 없다.

어쩌다 가끔 먹는 보약보다, 매일 먹는 음식과 간식에 우리는 조금 더 신경 써야 한다. 아프고 나서 찾는 약보다, 먼저 미리 나를 돌봐야 한다. 매일 먹는 음식으로.

잘 먹고 잘살자.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 시작은 오늘 저녁, 당신의 밥상이다.

食即自愛(식즉자애)

잘 먹는 것이 자기 사랑이다.

— 형주연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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