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약이다

약식동원

by 야미야니

약식동원(藥食同源) — 음식과 약의 경계, 밥상이 먼저였다.


1747년, 영국 해군 군의관 제임스 린드는 괴혈병으로 쓰러져가는 선원들 앞에서 작은 실험을 했다. 괴혈병은 당시 장거리 항해의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 잇몸이 썩고, 이가 빠지고, 상처가 아물지 않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병. 원인을 아무도 몰랐다.

린드는 환자 12명을 두 명씩 짝지어 각각 다른 것을 먹였다. 식초, 황산, 사과주, 바닷물… 그리고 오렌지와 레몬. 결과는 명확했다. 감귤류를 먹은 두 명만 회복했다. 그는 비타민 C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왜 낫는지 설명할 수 없었지만, 음식이 먼저 답을 냈다. 비타민 C(아스코르브산)가 분리·규명된 것은 그로부터 무려 185년이 지난 1932년의 일이다.

약사의 시선으로 이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흔히 "기전을 알아야 쓸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왜 듣는지 모르면서도 듣는 음식을 먼저 발견해 왔다. 과학은 나중에 그 이유를 설명하러 왔을 뿐이다.

비타민 C는 콜라겐 합성의 보조인자(cofactor)다. 이것이 부족하면 혈관벽과 결합조직이 무너진다. 괴혈병의 증상 — 잇몸 출혈, 상처 불유합, 피부 반점 — 은 모두 그 결과다. 레몬 하나가 이 모든 연쇄를 막았다.

음식이 약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은 원래 약이었다. 우리가 나중에 그것을 알게 됐을 뿐이다.


각기병은 무서운 병이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저리다가, 심해지면 심부전으로 사망에 이른다. 병명의 어원인 싱할라어 'beriberi'는 "할 수 없어, 할 수 없어"라는 뜻이다.

동아시아 각국의 전통의학에서는 흰쌀만 먹지 않고 현미·메밀·콩 같은 도정하지 않은 곡물을 먹으면 낫는다는 치료법이 3~4세기 무렵부터 전해졌다. 이유는 몰랐다. 그냥 경험으로 알았다.

비타민이 발견되기 전인 19세기 서양 의학에서는 이 질병이 병균 감염인지, 식중독인지, 풍토병인지 논쟁이 많았다. 그러는 사이 수만 명이 죽었다. 동아시아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데.

각기병은 일본 화학자 스즈키 우메타로가 1910년 세계 최초로 비타민 B1을 발견하면서 발병 기전이 해명되었다. 이것이 인류가 처음으로 비타민이라는 물질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이었으며, 이후 다른 비타민들도 속속 규명되면서 생물학계가 수십 년간 비타민 연구 열풍을 겪게 되었다.

티아민(비타민 B1)은 탄수화물 대사의 보조효소다. 현미의 씨눈(배아)에 집중되어 있는 이것이, 도정 과정에서 고스란히 사라진다. 흰쌀밥은 맛있지만, 그 대가가 있었다. 동아시아의 할머니들은 몰랐다. 자신들이 비타민을 처방하고 있었다는 것을.


버드나무껍질의 진통 효과에 대한 최초 기록은 약 4000년 전 수메르인의 점토판에서 발견된다. 메소포타미아 고대 문명은 버드나무 추출물을 열, 통증, 염증 치료에 사용했다.

누군가 아팠고, 강가에 있던 버드나무껍질을 씹었다. 그리고 나았다. 왜 나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1757년, 영국 성직자 에드워드 스톤은 강가를 산책하다 버드나무껍질을 씹어보았다. 말라리아 치료에 쓰이던 남미산 키나나무껍질과 비슷한 쓴맛이 났다. 그는 껍질을 건조·분쇄하여 4시간마다 복용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열병을 가라앉혔고, 이후 5년간 50여 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그가 살리실산(salicylic acid)의 존재를 알았을 리 없다. 쓴맛이 비슷하다는 직감 하나로 시작한 일이었다.

버드나무껍질의 활성 성분은 1828년에야 살리신(salicin)으로 분리되었고, 1897년 바이엘사의 화학자 펠릭스 호프만이 아세틸살리실산, 즉 아스피린을 합성했다. 작용 기전 — 프로스타글란딘 합성 억제 — 이 밝혀진 것은 1970년대의 일이다.

버드나무껍질을 씹은 수메르인부터 기전 규명까지, 4000년이 걸렸다. 인류는 4000년 동안 왜 듣는지 모르면서 먹었고, 과학은 그 뒤를 따라갔다.


이건 사람도 아닌 소가 발견한 사례다.

1920년대 초, 수의사들은 특정 소들이 부상이나 시술 시 과도하게 출혈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조사 결과 이 소들이 썩은 클로버를 먹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이 출혈 현상은 "스위트 클로버 병"으로 불렸다. 약 20년 후 위스콘신 대학 연구팀이 그 식물에서 화합물을 분리했고, 이것이 훗날 와파린(warfarin)이라는 이름으로 시판되었다. 썩은 풀을 먹은 소가 피를 멈추지 못했고, 그 관찰이 현재 심방세동·심부전 환자 수백만 명이 복용하는 항응고제의 출발점이 됐다.


약사가 말하는 음식과 약의 경계 — 그리고 약식동원의 과학

수메르인의 버드나무껍질, 동아시아의 현미, 린드의 레몬, 캐나다 초원의 썩은 클로버. 네 이야기는 모두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왜 낫는지 몰랐지만, 나았다."

약사는 매일 성분명과 기전을 다룬다. 살리실산, 티아민, 아스코르브산. 이름이 생기면 갑자기 "약"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물질들은 이름이 붙기 수천 년 전부터 버드나무껍질 안에, 현미 씨눈 안에, 레몬 과즙 안에 있었다.

그렇다면 음식과 약의 경계는 어디인가.

약사의 솔직한 답은 이렇다. 경계는 생각보다 훨씬 얇다. 정확히는, 경계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이해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약은 음식에서 특정 성분을 뽑아내고, 농도를 높이고, 흡수율을 개선하고, 부작용을 줄인 것이다. 본질은 같다. 출발점이 같다. 다만 약은 더 정밀하고, 음식은 더 복잡하다.

여기서 약식동원(藥食同源)의 현대적 의미를 짚고 싶다.

약식동원은 단순한 동양 철학이 아니다. 현대 과학이 이를 뒷받침한다. 아스피린은 버드나무에서, 항암제 탁솔은 주목나무에서, 당뇨약 메트포르민은 갈레가 풀에서 왔다. 현재 시판 중인 의약품의 상당수가 식물에서 유래한 성분이거나 그것을 모방해 합성한 것이다.


그러나 약식동원은 약식동일(藥食同一)이 아니다.

음식과 약의 뿌리가 같다는 것이지, 음식이 약과 똑같다는 뜻이 아니다.

음식은 수천 가지 성분이 함께 작용하는 복합 처방이다. 레몬 안의 비타민 C는 플라보노이드, 구연산, 식이섬유와 함께 작용한다. 자연은 처음부터 복합 처방을 써왔다. 약은 그 복합 처방 중 하나의 성분을 정밀하게 추출한 것이다.

그래서 음식은 예방과 건강 유지에서 강력하다. 약은 치료에서 대체 불가능하다. 이 경계를 아는 것, 그것이 약사의 역할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지점이 있다. 음식은 단일 성분이 아니다.

레몬 안의 비타민 C는 플라보노이드, 구연산, 식이섬유와 함께 작용한다. 현미 씨눈의 티아민은 다른 B군 비타민들과 함께 존재한다. 자연은 처음부터 복합 처방을 써왔다.

우리가 단일 성분을 추출해 약으로 만드는 동안, 음식은 그 복잡함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것이 음식의 한계이기도 하고, 동시에 강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약이 필요한 순간이 있고, 음식으로 충분한 순간이 있다. 그 판단을 잘하는 것.

그것이 진짜 처방이다.

음식이 약이 되는 순간은 거창하지 않다. 매일 먹는 것을 조금 더 알고 먹는 것,

그 앎이 쌓이면, 식탁이 달라지고, 몸이 달라진다.

수천 년 전 수메르인이 버드나무껍질을 씹었던 것처럼,

우리도 이미 매일 뭔가를 처방하고 있다. 다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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