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약이다.
음식이 약이다.
이 문장을 처음 소리 내어 말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끄덕끄덕하면서도 뒤로는 제로콜라를 집어 들고, 제육볶음을 시켰다. 유난이라는 시선도 있었다. 민간요법 아니냐는 핀잔도 들었다. "아프면 약을 먹을 것이지, 왜 음식 타령이냐"는 말도 적잖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 문장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외치고 있던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교육현장에서, 한 사람은 약국에서. 한 사람은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다가, 한 사람은 환자들의 처방전을 들여다보다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음식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 책은 그 두 사람의 이야기다.
상담학 박사 형주연과 약사 박정원. 전혀 다른 현장에서 일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같은 말을 하고 있던 두 사람이, 서로를 발견하고, 함께 쓰기로 한 책이다.
형주연의 솔루션
— 형주연 | 상담학 박사. 리채움 상담센터 센터장. KCT edu 대표.
나는 상담사다. 아이들의 마음을 만지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육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원장님 배고파요…” 상담실에서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은 "오늘 뭐 먹었어?"였다. 심리검사 결과지를 펼치기 전에,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아침은 먹었어? 어제저녁은 누가 차려줬어? 점심은 뭘 먹었어?
무기력하게 앉아 있던 S에게도 그렇게 물었다. 학교에 결석계를 내고, 정신과 약을 먹고도 차도가 없어서 나를 찾아온 고등학생. S는 아침을 굶고, 학교 급식도 굶고, 하교 길에 편의점 삼각김밥과 불닭볶음면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나는 MMPI 검사지를 내려놓고, 엉뚱한 제안을 했다.
"네가 집에서 밥을 차려봐. 너를 위해서든 가족을 위해서든."
S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요리를 좋아한다고 했던 말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날부터 S는 이틀에 한 번씩 가족 식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무섭던 아빠에게 "오늘 뭐 먹고 싶어?"라고 물어야 했고, 아빠는 아이의 성적 대신 딸의 요리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밥상이 바뀌자 가족이 바뀌었다. 가족이 바뀌자 S가 바뀌었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음식은 영양소가 아니다. 관계다. 소통이다. 치유다.
그래서 나는 ‘집밥 안정제’라는 이름을 만들었고, 특허청에 심리치료 용어로 등록까지 했다. 상담사가 왜 음식 이야기를 하느냐고? 아이의 마음이 무너지기 전에, 그 아이의 밥상이 먼저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약을 팔면서도 "음식을 먹으라"라고 말하는 약사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박정원이었다.
박정원의 처방전
— 박정원 | 약사, ‘건강이 열리는 약국’ 운영, 안산인재육성재단 이사.
나는 약사다. 약을 파는 사람이다.
그런데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약과 함께 다른 것도 권한다. 고혈압 약을 타러 오신 환자분께 오메가-3가 풍부한 연어와 호두를 드시라고 한다. "약사가 왜 약 대신 음식을 권하느냐"라고 물으시면, 나는 솔직하게 답한다.
"매일 맵고 짠 음식을 드시면서 약 한 알로 혈압이 내려갈 거라고 기대하시면, 그건 약이 아니라 기적을 바라시는 겁니다."
내 밥줄을 끊는 말이라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약국 카운터 너머로 수천 명의 환자를 만나며 깨달은 것이 있다. 약은 증상을 잡아줄 뿐, 원인을 제거하지 못한다. 고혈압의 90%가 원인 불명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원인의 대부분이 냉장고 안에 있다. 짜게 먹는 습관, 가공식품, 운동 부족. 처방전에는 적히지 않는 것들이 진짜 원인인 경우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약사이지만 ‘음식이 약이다’를 믿는다. 약을 먹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약을 복용하되, 어떻게 줄여 나갈 것인지 고민하라는 뜻이다. 그 고민의 시작점이 바로 오늘 저녁 밥상이다.
안산인재육성재단 이사로, 청소년 범죄예방위원으로 활동하면서도 같은 생각이었다. 아이들의 비행 뒤에는 무너진 가정이 있고, 무너진 가정 뒤에는 함께 앉아본 적 없는 식탁이 있었다. 밥을 함께 먹는 가족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던 중, 상담실에서 아이들에게 요리를 시키는 상담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담 대신 밥상으로 치유하는 사람.
형주연이었다.
공동 처방전
— 형주연 × 박정원
우리는 같은 도시에서, 같은 문장을 안고 살고 있었다.
상담사와 약사. 전혀 다른 직업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상담학을 전공했다. 둘 다 사회복지사다. 둘 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었다.
처음 만나서 나눈 대화의 절반은 음식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사람이었다. 형주연이 "S에게 요리를 시켰더니 아빠와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라고 말하자, 박정원은 "내 약국에 오시는 할머니께 구기자차 복용에 대해 알려 드렸더니 고지혈증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라고 응수했다. 서로의 이야기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동시에 같은 말을 했다.
"그거 봐, 음식이 약이잖아!"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이야기를 우리 둘만 알고 있으면 안 되겠다고.
이 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형주연은 음식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박정원은 음식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말한다. 같은 질병을, 같은 사례를, 두 개의 렌즈로 동시에 들여다본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크로스 처방전’이라 부르기로 했다.
상담사가 마음의 처방전을 쓰고, 약사가 몸의 처방전을 쓴다. 그리고 마지막에 두 처방전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가 함께 믿는 하나의 문장이 완성된다.
음식이 약이다.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 부탁 하나만 하겠다.
오늘 저녁, 딱 한 끼만 정성껏 먹어보자. 누군가와 함께라면 더 좋고, 혼자라도 괜찮다.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이 음식이 내 몸에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지, 잠깐이라도 생각하며 먹어보자.
그 한 끼가 당신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수백 번 목격했다.
2026년, 같은 문장을 품은 두 사람
형주연 · 박정원
食即自愛(식즉자애) : 잘 먹는 것이 자기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