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약이다.

고혈압이 내 기분을?

by 야미야니

고혈압이세요?

평생 동반자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원래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조용하고, 참을성 있고, 틀어지면 남한테 미안해하던 사람. 그런데 어느 날부터 달라졌다. 사소한 일에도 버럭 소리를 지르고, 운전 중 클랙슨을 울리고, 가족에게 짜증이 늘었다. 본인도 몰랐다. 원래 숨은 성격이, 나이가 들어서 그런 줄 알았다.

화가 많아진 그는 건강검진에서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의사가 말했다.

"약을 드셔야 합니다. 고혈압은 평생 관리하셔야 해요."

평생. 그 단어가 무거웠다. 약을 받아 들고 집에 왔다. 그리고 체념했다.

"약 먹으면 되지 뭐."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고혈압을 평생 동반자처럼 생각하고, 약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체념 속에서, 몸과 마음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형주연의 집밥 안정제 — 고혈압이 훔친 감정의 지도

고혈압은 ‘소리 없는 죽음’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상담사인 나는 다르게 본다. 고혈압은 ‘소리 없는 분노’다.

고혈압 환자들을 만나보면, 놀라울 정도로 공통적인 감정 패턴이 있다. 화가 많아진다. 짜증이 늘었다. 작은 일에도 버럭 화를 내고, 나중에 후회한다. 본인도 ‘원래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라고 혼란스러워한다.

이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몸의 문제다.

2022년 독일 콘스탄츠대학의 생물건강심리학 연구팀(Auer & Wirtz)이 『Annals of Behavioral Medicine』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고혈압 환자들은 타인의 얼굴에서 ‘분노’를 다른 어떤 감정보다 더 자주 인식한다고 한다. 즐거움과 슬픔, 두려움이 섞인 복합 표정을 보여줘도, 고혈압 환자들은 유독 분노만 걸러 인식하는 편향을 보였다.

세상이 더 화나게 보이는 것이다. 고혈압이 세상을 보는 툴을 바꿔놓는다.

더 무서운 것은 역방향이다. 분노를 억압하는 사람들, 즉 화가 나도 표현하지 못하고 삼키는 사람들의 혈압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올라간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 국립심장폐혈액연구소(NHLBI)의 장기 추적 연구(Tecumseh Community Health Study)에서는, 분노를 억압하는 성향과 고혈압, 그리고 관상동맥 심장질환 사망률 사이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상담실에서 나는 이것을 자주 목격한다. 화를 참는 사람이 혈압이 올라가고, 혈압이 올라간 사람이 더 화를 참지 못하게 되고, 그 화 때문에 인간관계가 무너지고, 무너진 관계가 스트레스가 되어 혈압을 또 올린다. 악순환이다.


청소년들도 예외가 아니다.

소아청소년의 고혈압 유병률은 3~4%로 보고되고 있다. 적은 수치가 아니다. 미국 Nationwide Children's Hospital의 Cha 연구팀이 2012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청소년 고혈압은 두통, 불안정, 수면 장애, 우울감, 주의력 저하, 그리고 실행기능(executive functioning) 저하와 관련이 있다.

더 충격적인 연구가 있다. 핀란드의 ‘심혈관 위험 연구(Cardiovascular Risk in Young Finns Study)’는 3~18세 아동청소년 약 3,600명을 31년간 추적했다. 결과는 이랬다. 소아청소년기에 수축기 고혈압이 있었던 아이들은, 성인이 된 후 인지 기능 검사에서 더 낮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일화 기억과 학습 능력이 저하되었다.

또한 베타차단제를 장기 복용하는 소아청소년에서 실행기능의 비효율성이 관찰되었다는 연구도 있다. 실행기능이란 계획을 세우고, 주의력을 유지하고,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다. 이것이 떨어지면 공부가 안 되고, 친구 관계에서 충돌이 늘어나고,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한다.

고혈압 자체가 아이의 뇌를 바꾸고 있었다. 그리고 약이 그 변화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상담실에서 만난 한 부모님은 중학생 아들의 성적 저하와 대인관계 문제로 찾아오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는 1년 전부터 고혈압 약을 복용 중이었다. 약을 먹기 시작한 후부터 집중력이 떨어졌고, 쉽게 피곤해하고, 친구들과 자주 다투게 되었다고 했다.

부모님은 그것이 약의 부작용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사춘기라서 그런 줄 알았다.

나는 이 부모님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사춘기의 변화일 수도 있지만, 약의 영향일 수도 있습니다. 주치의와 상의해서 약 종류를 한번 점검해 보세요. 그리고 식습관과 운동을 병행하면 약을 줄여가는 방향으로 가볼 수 있습니다."

아이의 성적이 떨어진 것이 공부를 안 해서가 아니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아무도 읽지 못한 것이었다.

‘유전이니까 어질 수 없다’는 항복에 대해 말하고 싶다.


부모님 두 분 다 고혈압 약을 복용 중인 한 내담자가 있었다. 40대 초반, 스스로를 ‘고혈압 가문’이라고 불렀다. 당연히 자기도 고혈압이었고, 약을 먹는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물었다. "유전이 원인이라고 해서, 노력이 소용없다고 생각하세요?" 그분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담을 통해 그분의 식습관을 하나하나 들여다봤다. 김치찌개가 아침이면 된장찌개가 저녁이고, 반찬은 거의 절임류였고, 야채는 먹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주식은 라면이었다. 운동은 전혀 없었다.

유전이 방아쇠를 만든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생활 습관이다. 부모님이 고혈압이신 것은 바꿀 수 없지만, 부모님과 똑같은 식습관으로 살고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다. 그렇게 가족이 바뀔 수 있다.

그분은 6개월 동안 식습관을 바꾸고, 매일 30분씩 걸었고, 무엇보다 자기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화가 날 때 참지 않고 표현하되, 폭발하지 않는 방법을. 그 결과, 주치의와 상의하여 약을 절반으로 줄였다. 평생 동반자라고 믿었던 고혈압과, 조금씩 거리를 둘 수 있게 된 것이다.

유전은 총을 장전하지만,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나 자신이다.


박정원의 처방전 — 고혈압 약, 정말 평생 먹어야 하는가?


약국에서 고혈압 약을 타러 오시는 분들과 대화하다 보면, 체념하듯 그냥 드셔야 한다고 믿고 사신다. 그러면 나는 이내 식습관을 고치셔서 약을 줄이거나 안 먹는 방향으로 하실 수 있어요라고 말씀드린다.

내 밥줄을 끊는 건가? 하지만 사실이니까.

약사로서 고혈압 약의 종류와 부작용을 정확히 짚어보겠다.


1. ACE억제제(예: 라미프릴, 에날라프릴)

혈관을 수축시키는 물질(안지오텐신 II)의 생성을 억제한다. 흥미롭게도, 2020년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연구에 따르면 라미프릴과 에날라프릴은 오히려 우울증 발생률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염증 효과가 뇌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흔한 부작용으로는 마른기침이 있다.


2. ARB(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 예: 로사르탄, 발사르탄)

ACE억제제와 비슷한 기전이지만 마른기침 부작용이 적다. 역시 기분 장애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3. 베타차단제(예: 메토프롤롤, 아테놀롤, 프로프라놀롤)

심박수와 심박출량을 줄여 혈압을 낮춘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2016년 글래스고대학 Padmanabhan 연구팀이 114,066명의 환자 기록을 분석한 결과, 베타차단제 복용 환자는 ACE억제제/ARB 복용 환자보다 기분 장애로 입원할 위험이 2배 높았다. 피로, 우울, 수면 장애, 집중력 저하 등이 보고된다.


4. 칼슘 채널 차단제(예: 암로디핀, 니페디핀)

혈관 평활근을 이완시켜 혈압을 낮춘다. 같은 연구에서 칼슘 채널 차단제 역시 기분 장애 위험이 2배 높게 나타났다.


5. 이뇨제(티아지드 계열)

체내 나트륨과 수분을 배출시켜 혈압을 낮춘다. 전해질 불균형과 탈수에 주의가 필요하다.

핵심을 말하겠다.


고혈압의 90%가 본태성(원인 불명)이라고 하지만, 분명히 밝혀진 원인들이 있다. 흡연, 비만, 짜게 먹는 습관, 운동 부족, 스트레스 이 중에서 우리가 고칠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실제로 NEWSTART 프로그램의 연구 결과를 보자. 1,132명의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채식 위주의 자연식 식단과 생활습관 변화를 18일간 진행한 결과, 3분의 2가 고혈압 기준치 이하로 내려갔다. 약물 치료와 맞먹는 속도였다. 그것도 약의 심각한 부작용 없이. DASH 식단(고혈압 예방 식이요법) 연구에서는 더 극적인 결과가 나왔다. PREMIER 임상시험에서 DASH 식단에 염분 제한, 체중 감량,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자, 고혈압 유병률이 6개월 만에 38%에서 12%로 떨어졌다. 3분의 1이 약 없이 고혈압을 ‘졸업’ 한 것이다.

효과적인 생활습관 변화는 고혈압 약 한 알과 맞먹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영국고혈압학회(BHS) 가이드라인

약을 먹지 말라는 게 아니다. 진단받았으면 반드시 복용해야 한다. 하지만 약을 복용하면서 동시에 식습관을 바꾸면, 약을 줄여가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그것이 진짜 치료다.

고혈압에 가까이해야 할 음식은

오메가-3 지방산-혈관 염증을 잡아라

연어, 고등어, 참치, 호두, 아마씨는 혈중 중성지방을 낮추고 혈관 벽의 염증 반응을 줄여준다. 주 2-3회 등 푸른 생선이 가장 효율적이다.

칼륨-나트륨의 천적

바나나, 감자, 토마토, 아보카도, 콩류는 나트륨을 소변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한다. 짜게 먹는 습관을 바꾸기 어렵다면, 칼륨 섭취를 늘리는 방법도 있다. 단, 신장 질환이 있는 사람은 주치의와 상의가 필요하다.

질산염-혈관을 넓혀라

비트, 시금치, 루꼴라, 셀러리는 체내에서 산화질소로 변환되어 혈관을 확장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폴리페놀, 플라보노이드-혈압의 보이지 않는 방패

블루베리, 딸기, 녹차 등은 혈관 내피세포를 보호하고 혈관 탄력을 높인다.

마늘-부엌 속 혈압약

마늘의 알리신 성분이 혈관 확장과 혈소판 응집 억제에 관여한다. 이미 우리 밥상에 있는 재료라는 점에서 현실적인 처방이다.

식이섬유가 인슐린 저항성을 낮추고 나트륨 흡수를 줄이며, 장내 미생물을 통해 혈압 조절에 간접적으로 관여한다. 무엇보다 심혈관계 질환의 가장 무서운 원인인 흡연은 바로 손절해야 하며,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들은 약이자 독이다.


— 형주연 × 박정원

고혈압을 ‘평생 동반자’라고 부른다. 우리는 그 표현을 바꾸고 싶다.

고혈압은 평생 동반자가 아니라, 평생 관리하면 떼어낼 수 있는 악연이다.

동반자라고 하면 체념하게 된다. ‘어쩔 수 없으니까 그냥 함께 가는 거지’라고. 하지만 악연이라고 하면 달라진다. 모든 인연을 소중히 할 수는 없다. 악연은 끊어내야 맞다.

형주연이 본 것 — 고혈압이 감정을 흔들고, 관계를 무너뜨리고, 아이들의 학업과 사회성까지 위협한다는 것.

박정원이 본 것 — 약의 종류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고, 식습관 변화만으로도 약을 줄일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

두 시선이 만나는 곳에 답이 있다. 약만 먹지 말고, 밥상도 바꾸자. 화를 참지만 말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자. 체념하지 말고, 함께 관리하자.


오늘의 크로스 처방전

형주연 박사의 처방: 화가 날 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라고 느껴진 적 있나요? 그것은 성격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오늘 한번, 혈압을 재보세요.

박정원 약사의 처방: 고혈압 약을 복용 중이라면, 피로감이나 기분 변화가 약과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치의와 상의하세요. 그리고 오늘 저녁, 김치찌개에 소금을 반만 넣어보세요. 그 작은 변화가 약 한 알의 효과를 냅니다.


공동 처방: 고혈압을 체념하지 마세요. ‘평생 동반자’가 아니라 ‘끊어낼 악연’으로 바꾸는 순간, 변화가 시작됩니다. 오늘부터 하나씩, 밥상부터.

‘소리 없는 죽음’이 아니라 ‘소리 없는 분노’ 임을 기억하자.

그 분노의 뿌리를 치유하는 것이 진짜 처방이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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