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약이다

당뇨 전단계

by 야미야니

84세.

복용 중인 약, 없음.

매년 정기검진을 받으시는 어머니의 차트를 보면 의사들이 나직이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이 연세에 복용 중인 약이 없으시다고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리라.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골다공증 — 80대 노인이라면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법한 국민 질병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런 어머니의 차트에, 처음으로 살짝 그림자가 드리운 날이 왔다. 당뇨 전단계.


형주연의 집밥 안정제 — 어머니의 밥상이 약이었다.


42년생 친정어머니. 80 평생을 건강하게 사신 비결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밥상이라고 대답한다.

계절마다 나오는 건강한 재료. 제 끼니때 맞춘 식사. 자연에 최대한 거스르지 않는 조리법. 봄에는 봄나물과 제철 생선, 여름에는 참외와 수박, 가을에는 밤과 버섯, 겨울에는 배추와 무. 그것이 어머니의 약상이었다.

어머니는 흰쌀밥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 잡곡밥, 현미밥, 보리밥이 기본이었으나 밀가루 음식과 면 종류를 좋아하셨다. 특히 수제비! 멸치육수가 가득한 주말은 엄마 기분이 좋은 날로 기억된다. 식탁 위에는 항상 건강 반찬이 있었다. 김치, 된장, 나물 반찬, 생선 구이, 두부찌개. 화려하지 않지만 정성스러운, 1970년대 한국의 전통 식탁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에게도 노화에 순응하시는 시간이 왔다. 매년 정기검진 결과가 모두 양호하고 정상인데, 살짝 당뇨 전단계 수치가 나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연세가 있으셔서 나올법한 수치이기도 한데,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약을 복용할 정도는 아닙니다. 오늘부터 흰쌀밥, 밀가루 음식, 면 종류 음식은 모두 피하세요."

그래! 이번 처방전도 음식이다.

의사도 알고 있는 것이다. 약을 처방하기 전에 음식부터 바꾸라고. 약보다 먼저, 밥상을 고치라고.

그런데 어머니의 건강에는 밥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비밀이 하나 더 있다.

어머니는 평생 타인을 섬기고 사는 분이다.

적지 않으신 나이에도 미용 봉사를 다니신다. 동네 어르신들의 머리를 깎아주신다. 자원봉사로 혹은 인근에 있는 요양원에 가시는 날도 많다. 본인도 80대 노인이신데, 항상 더 어려운 분들을 찾아가신다. 남을 위해 하루를 쓰시는 분이다. 매사가 '감사함과 미안함'으로 가득 찬 인생이 밥상 위에 디저트처럼 항상 함께 하신다.

나는 상담사로서 이것이 어머니의 건강을 지키는 또 하나의 약이라고 확신한다.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의 에릭 김(Eric Kim) 박사 연구팀이 50세 이상 성인 약 13,000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가 있다. 주 2시간 이상 자원봉사를 하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사망 위험이 낮았고, 신체 기능 제한이 적었으며, 운동량이 더 많았다. 무엇보다 긍정적 감정, 낙관주의, 삶의 목적의식이 높고, 우울과 고독은 낮았다.

워싱턴대학의 2024년 연구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자원봉사가 생물학적 노화 속도 자체를 늦춘다는 것이다. 주당 4시간 이상 봉사하는 사람들은 후성유전체(epigenetic) 수준에서 노화가 느리게 진행되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봉사하는 사람은 세포 수준에서 더 천천히 늙어간다.

어머니는 평생 남을 위해 사셨다. 그리고 그 삶이 어머니 자신을 지켜주고 있었다. 남을 위한 삶이 나를 살리는 삶. 이것이 상담사가 말하는 '정서적 면역'이다.

우리는 면역력을 건강의 문제로 잘 다루지 않는다. 면역력이라면 항체나 백신을 떠올리지만, 정서적 면역력 — 삶의 목적의식, 긍정적 감정, 사회적 연결감 — 이 몸의 면역력을 높인다는 연구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스탠퍼드 장수연구센터에서도 봉사활동을 하는 노인은 고혈압 위험이 낮고, 사망률이 낮으며, 신체장애가 느리게 오고, 인지 기능이 더 오래 유지된다고 보고한다.

어머니의 밥상과 어머니의 봉사.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80 평생 약 한 알 없는 삶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평생 자신에게 처방전을 써왔던 것이다. 사실 나의 집밥 안정제 어원도 엄마의 밥상이었다. 나의 학창 시절 매번 시험 기간이 되면 엄마는 모르는 문제를 가르쳐줄 수 없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로 시험 전용 밥상이었다. 사골국은 물 마시듯이 마시라고 곰탕냄비에 항상 준비해 주셨다. 어떤 과학적 원리를 떠나 엄마의 최선이었다. 거기에는 사랑과 정성의 정답지가 숨어있었을 거다.

지금 당뇨 전단계 진단 후, 어머니는 의사의 말을 철떡 같이 따르셨다. 식단의 변화가 꽤나 많았다. 밀가루 음식을 더욱 줄이셨다. 수박보다 오이를, 떡보다 참마를 선택하셨다.

그리고 다 다음 검진에서,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약 한 알 없이.

이것이 내가 '음식이 약이다'라고 확신하는 이유다. 내 어머니가 살아있는 증거니까.


박정원의 처방전 — 당뇨약의 진실, 약사가 말하지 못하는 것들


약국에서 당뇨약을 조제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는 날이 많다.

스타틴 계열 약물. 메트포르민. 인슐린. 효과는 확실하다. 혈당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이 약이 '왜' 필요해졌는지를 물으면, 대부분의 답은 같다. 식습관이다.

약사의 시선으로 당뇨 전단 계와 당뇨약의 진실을 정확히 짚어보겠다.

당뇨 전단계는 공복 혈당이 100~125mg/dL, 또는 당화혈색소(HbA1c)가 5.7~6.4% 사이인 상태를 말한다. 아직 당뇨는 아니지만, 정상도 아니다. 신호등이 노란색으로 깜박이고 있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하나다. 이것은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 당뇨로 넘어가면 췌장 베타세포의 손상은 대부분 비가역적이다. 하지만 전단계에서는? 생활습관을 바꾸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것은 희망 사항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다. 여러 대규모 메타분석 연구에 따르면, 식습관 교정과 운동을 병행한 생활습관 개선 그룹은 대조군보다 정상 혈당으로 복귀할 확률이 18% 더 높았으며, 6명 중 1명은 생활습관만으로 정상 혈당으로 돌아왔다. 약보다 강력한 근거를 가진 것이 바로 생활습관 교정이라는 것을 연구자들은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그러면 당뇨약의 진실은 뭔가.

형주연 박사의 어머니처럼 전단계에서 음식으로 돌릴 수 있는 분은 행운이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전단계를 놓치고 당뇨로 넘어간다. 그때부터 약과의 긴 동행이 시작된다.

메트포르민(metformin). 제2형 당뇨의 1차 치료제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경구 혈당강하제다. 전 세계에서 1억 2천만 명 이상의 당뇨 환자가 복용 중이다. 효과는 분명하다. 간에서 포도당 생성을 억제하고, 골격근의 포도당 흡수를 높이며, 장에서 포도당 흡수를 지연시킨다.

하지만 약사로서 솔직하게 말하겠다. 메트포르민에는 약사가 말하지 못하는 그림자가 있다.

첫째, 위장관 부작용. 복용 환자의 상당수가 메스꺼움, 구토, 복통, 설사를 경험한다. '무해하다'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복용을 중단하는 가장 흔한 이유가 바로 이 위장관 불편감이다.

둘째, 비타민 B12 결핍. 이것이 더 심각하다. 영국 MHRA는 2022년 메트포르민으로 인한 비타민 B12 저하를 '흔한 부작용(common side effect)'으로 상향 조정했다. 복용자 10명 중 1명까지 비타민 B12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메트포르민은 장에서 칼슘 의존적인 비타민 B12 흡수 과정을 방해한다. 비타민 B12가 부족하면 피로, 손발의 저림, 빈혈, 그리고 심하면 신경병증이 올 수 있다.

문제는 이 신경병증이 당뇨성 말초신경병증과 증상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발이 저리고 감각이 둔해지면, 당뇨 합병증으로 오인하기 쉽다. 실제로는 메트포르민이 비타민 B12를 빼앗기 때문일 수 있는데 말이다.

약사로서 간곡하다. 메트포르민을 복용 중이라면, 반드시 비타민 B12 수치를 연 1회 이상 확인해야 한다. 미국 당뇨학회의 공식 권고사항이다.

그렇다면 당뇨 환자의 식탁은 어떠해야 하는가.

약을 복용하더라도 식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약은 영원히 끊을 수 없다. 형주연 박사의 어머니가 평생 하셨던 그 식단은, 사실 약사의 눈으로 보면 거의 완벽한 '당뇨 예방 식단'이다.

전북대학교 병원에서 고혈압 및 제2형 당뇨 환자 41명을 대상으로 12주간 전통 한식 식단을 제공한 임상시험이 있다. 1970년대 한국의 전통 식단 — 밥, 국, 김치, 발효간장, 나물 반찬, 생선 구이 — 을 3식 제공한 결과, 혈당과 혈압, 심혈관 질환 위험 인자가 모두 개선되었다.

핵심은 '뭔 특별한 것을 먹었나'가 아니다.

핵심은 '무엇을 안 먹었나'이다. 빵, 우유, 유제품— 서양식 식단에 포함된 것들을 뺐다. 형주연 박사의 어머니가 80년간 하셨던 것과 정확히 같다.


약사로서 말하고 싶은 '당뇨 환자의 최고 만찬'이 있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밥: 흰쌀밥 대신 잡곡밥 또는 현미밥. 식이섬유가 혈당 흡수를 느리게 하고, 식후 혈당 급상승을 완화한다. 아무리 좋은 잡곡밥이라도 탄수화물양은 최저로 잡는다.

반찬: 나물 반찬(옥살산이 적은 나물). 크롬, 마그네슘, 칼륨이 풍부하고, 인슐린 감수성을 개선하는 성분들이 들어 있다.

발효 식품: 김치, 된장, 청국장(짜거나 맵지 않게) 장내 미생물 환경을 개선하고, 염증을 줄이며, 혈당 조절에 기여한다.

단백질: 생선 구이, 두부, 콩나물(가능한 대두는 국산으로 GMO를 살핀다). 포화지방이 적고, 양질의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을 공급한다.

이것이 형주연 박사의 어머니 밥상이다. 그리고 동시에, 약사가 추천하는 당뇨 예방 식단이다.

특별한 것이 없다. 장수하는 어르신들이 평생 하셨던 그 밥상이 정답이었다.


공동 처방전 — 밥상과 나눔, 그리고 80년

— 형주연 × 박정원

형주연이 본 것 — 어머니의 밥상, 그리고 평생 타인을 섬기며 사신 삶. 미용 봉사, 요양원 봉사, 동네 어르신들을 향한 나눔. 그것이 80년의 정서적 면역력을 만들었다.

박정원이 본 것 — 어머니의 밥상은 1970년대 전통 한식 식단 그 자체였고, 그것은 임상시험에서 당뇨와 고혈압 환자의 혈당과 혈압을 개선시킨 바로 그 식단이었다.

두 시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

당뇨 전단계는 '경고'가 아니라 '기회'다.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

형주연 박사의 어머니는 그 기회를 잡았다. 82세에 처음 받은 당뇨 전단계 진단을, 약 한 알 없이 식습관 교정만으로 정상으로 되돌렸다.

80년 인생의 밥상과, 80년 인생의 나눔이 만든 건강.

이것이 우리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전부다.


오늘의 크로스 처방전

상담사의 처방: 오늘 당신이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보세요. 옆집에 반찬 하나 나누기, 가족과 친구에게 안부 전화 하나. 남을 위한 시간이 나를 살립니다.


약사의 처방: 당뇨 전단계 진단을 받으셨다면, 오늘부터 탄수화물 종류와 양을 바꾸세요. 식후 15분 산책을 시작하세요. 메트포르민 복용 중이라면 비타민 B12 검사를 주치의에게 요청하세요.

공동 처방: 전단계는 '경고'가 아니라 '기회'입니다. 오늘 저녁, 할머니의 밥상처럼 먹어보세요. 잡곡밥, 된장찌개, 나물 반찬. 그것이 가장 강력한 당뇨 예방약입니다.


이번엔 어머니의 밥상이 약이었다.



참고문헌 및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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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vorsen, C. et al. (2024).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 봉사활동과 후성유전체적 노화 감소 연관성 확인.

Stanford Center on Longevity. (2017). "Engaging in Volunteerism May Hold Significant Health Benefits." — 봉사활동 노인의 고혈압 위험 감소, 사망률 감소, 인지 기능 유지 보고.

Jung, S.J. et al. (2014). "Beneficial Effects of Korean Traditional Diets in Hypertensive and Type 2 Diabetic Patients." Journal of Medicinal Food, 17(1), 161-171. — 12주 전통 한식 식단 임상시험.

Galaviz, K.I. et al. (2022). "Interventions for Reversing Prediabete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American Journal of Preventive Medicine, 62(4), 614-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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