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없어서 못 먹은 ‘이것’, 지금은요?

- 풍성한 추억으로 남은 띠 이야기

by 김수정

오랜만에 참여한 동창회.


“ 니덜 그거 먹어봤냐?”

어렸을 적 얘기를 한참 하던 중에 한 친구가 툭 던진 말. 추억 더듬기를 시작했다.

“ 찔레순 먹어봤어? ”


“ 야 그럼~ 새로 나온 순 꺾어서 껍질 까서 먹었지”

“ 우덜 어렸을 때는 뭐 먹을 게 있었냐? 그런 거 먹었지. 너 칡뿌리 캐 먹어봤냐?”

“ 당연하지 임마. 암칡 뿌리는 깨물먼 알도 찍찍 나오고 달착지근하니 맛있는디”

“ 맞어. 칡뿌리 많이 먹으면 입도 새까매지고 그맀지. 옷에 묻으먼 물들기도 허구”


“ 삐비두 먹어봤지? 그거 뽑어서 껍질 까고 안에 하얀 속살 빼서 껌처럼 질겅질겅 깨물다가 뱉구 그맀는디”

“기냐? 나는 삼켰는디?”


서로 경쟁하듯 나는 먹어봤는데 너는 먹어봤냐고 어릴 적 추억을 늘어놓는다.

용돈이라는 게 없던 시골 아이들한테 가게 안에서 파는 과자는 ‘그림에 떡’인 시절이었다.

학교 다녀오는 길에 보이는 앵두나 보리수, 뽕나무 열매인 오디 같은 게 간식이었다. 남의 집 앵두를 따 먹어도 ‘서리’라고 그냥 애들의 장난으로 여기던 때였다. 열매는 익는 시늉만 해도 지나가는 아이에게 따먹혔고 찔레순도 자라기가 무섭게 먹혔다.

친구들이 얘기하던 ‘삐비’는 논두렁 같은 데 많이 나는 풀이다. 봄에 새로 나온 걸 손으로 잡아당겨 뽑아서 겉껍질을 벗겨내면 안에 하얀 게 들어있었다. 그걸 빼내서 씹으면 달착지근한 맛이 났다. 어떤 것은 아직 여려서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좀 더 시기가 지나 먹으면 살짝 질겨서 껌처럼 씹다가 뱉기도 했다. 한 움큼 뽑아 들고 먹으면 배가 부르지는 않아도 입이 심심하지는 않았다. 먹을게 풍족하지 않았던 시골 아이들에게 삐비는 좋은 간식거리였다.

삐비는 여린 시기가 지나 먹을 수 없게 되면 잊혔다. 앵두와 보리수가 익으면서 자연스레 다른 간식거리로 우리의 관심이 바뀌었다. 오로지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로써만 삐비를 찾았기 때문에 삐비의 이삭이 나와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모습까지 지켜보는 아이는 없었다.


생태해설을 하면서 어릴 때 삐비라고 부르며 뽑아먹었던 그 풀은 벼과 식물 ‘띠’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먹던 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띠의 이삭이다. 잎에 감싸여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 중에 우리 눈에 띄어 뽑히면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먹혔던 것이다.

6월 어느 날 남편과 갯벌에 새를 보러 갔다가 바닷가에 은백색의 밍크 꼬리털처럼 보드라운 이삭들이 하늘하늘 바람에 물결치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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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야 어렸을 때 삐비 먹어봤지? 이게 삐비야.”

“ 그래? 삐비? 없어서 못 먹었지.”


“ 우리가 삐비라고 부른 게 ‘띠’래. 이렇게 무리 지어 피어 있으니 멋지지 않아?”


어렸을 때는 이렇게 띠가 한곳에 무리 지어 은백색 물결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관심이 없어서였을까? 이삭 나오기 전에 많이 뽑아먹어서 그랬던 것일까?

띠는 다른 벼과 식물처럼 여러해살이 식물로 씨앗과 땅속줄기로 번식한다. 사람들이 관리하는 곳에 있으면 잡초로 취급되어 제거 대상이지만 뽑아낼 때 조금의 뿌리라도 남아있으면 살아남아 번식해서 쉽게 제거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이삭을 뽑아 먹혀 꽃을 피우지 못했어도 꿋꿋하게 번식하고 살아남았다.


언젠가 찔레순을 꺾어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 이건 찔레나무 새순인데 선생님이 어렸을 땐 이런 걸 먹었어요. 먹어볼 사람?”

“ 저요. 저요. 쌤 제가 먹어볼래요.”


여러 명의 경쟁을 뚫고 찔레순을 받아먹은 아이는 엄청 기대하는 표정으로 입에 넣더니

“ 퉤퉤~ 쌤 이게 무슨 맛이에요? 이걸 왜 먹었어요?”

몇 번 씹은 찔레순을 뱉어내며 세상 맛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삐비를 맛보여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먹을게 풍족해져 뽑아먹는 사람이 없는 지금, 띠는 은백색 물결로 어릴 적 추억을 더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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