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사진 0장 ‘이것’ 사진 200장, 여행이니까요

- 잘 빠진 흰 다리의 유혹에 즐거웠던 군산 선유도

by 김수정

유난히 집을 좋아하는 집순이라 자의로 여행을 계획하고 추진하지 않는 편이다. 무슨 기념일도 아닌데 무료로 숙소를 쓸 수 있다는 이유로 6월 초에 여행을 가게 되었다.

여행지는 군산 선유도. 그곳으로 잡은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남편이 가보고 싶다고 해서? 이유를 찾자면 1박 2일 가는 여행에 너무 먼 곳은 길에다 버리는 시간과 기름값이 아깝고 군산 정도의 거리면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디를 갈지 뭘 먹을지에 대한 계획은 없었다. 여행 중에도 새를 볼 수 있는 곳이 어딘지가 내 관심사였고 내 뜻에 잘 따라주는 남편의 배려 덕에 새를 볼 수 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6월이라 도요물떼새 시즌도 지나서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새가 별로 없었다. 이른 더위에 바닷가에 벌써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였고 간간이 괭이갈매기 정도만 볼 수 있었다.


칼국수로 점심을 먹고 차를 타고 바닷가 주변을 다니던 중 절벽이 있는 산이 보였다. 혹시 매나 다른 새들이 보일까 해서 차에서 내렸다. 쌍안경으로 산 위를 올려다보며 걷다가 맞은 편에서 오는 차를 피하려고 쌍안경을 내리고 길 가장자리로 걷는데 주변 갯벌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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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섞인 회색 갯벌에 군데군데 울긋불긋 칠면초와 갯질경이 같은 염생식물이 자라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 하얗고 작은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앗! 흰발농게다~~”


흰발농게 수십 마리가 열심히 모래 경단을 만들고 있었다.

흰발농게는 모래가 많이 섞인 혼합갯벌이나 염생식물이 자라는 곳에 서식하는 게다. 두 집게발 중 한 집게발이 크고 하얗다. 서식지 감소로 수가 줄어 환경부에서 멸종 위기 야생생물 2급, 해양수산부에서는 해양 보호 생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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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조제로 막고 갯벌 상부를 거의 다 간척한 당진에서는 흰발농게가 서식할 만한 갯벌이 거의 다 사라져서 본적이 없다. 서산의 가로림만에서 딱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흰 집게발 특징이 뚜렷해 알아볼 수 있었다.

수컷의 경우 커다란 집게발 하나와 작은 집게발 하나를 비대칭으로 가지고 있어서 큰 집게발은 영역싸움이나 암컷에게 구애 행동을 할 때 사용하고 작은 집게발로 먹이활동을 한다. 암컷은 두 집게발 모두 작다.

한참을 흰발농게를 쳐다보고 있다가 순간 흰발농게 큰 다리가 왼쪽 다리인지 오른쪽 다리인지 궁금했다. 여러 마리를 관찰한 결과 왼쪽 다리가 큰 녀석도 있고 오른쪽 다리가 큰 녀석도 있었다. 사람들도 오른손잡이 왼손잡이가 있듯이 흰발농게의 큰 집게발 위치는 개체마다 다르다는 걸 알았다.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서 흰발농게를 관찰하며 카메라에 담고 있었더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가 뭘 하는지 궁금해 쳐다보며 지나간다.

“ 뭐해? 뭐 있어?”


멀찌감치 차를 세우고 나를 찾아 걸어온 남편이 물었다.

“ 자기야 여기 흰발농게가 있어. 엄청 많아.”


신나서 사진 찍는 나를 기다리며 남편은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흰발농게는 나를 경계하는지 크고 흰 집게다리를 쳐들어 보인다. 나는 그 모습을 놓칠세라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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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집게발로 연신 모래를 집어 입에 넣고 오물거리다 모래 경단을 만들어 뱉어놓는다.

“ 그만 보고 가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흰발농게 사진찍기에 바쁜 나에게 남편이 이제 가자는 신호를 보낸다.

“ 어 알았어 알았어 잠깐만. ”


더 보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남편에게 미안해 사진 몇 컷 더 찍은 다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신나서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보여주었다.


“ 자기야 이거 봐~ 사진 잘 찍었지?”

“ 좋은감? 자기가 좋으니 됐네. 선유도 오길 잘했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이렇게 많은 흰발농게를 실컷 보고 사진도 찍고. 이게 웬 행운인가?

흰발농게의 잘 빠진 흰 집게발 유혹 덕분에 딱히 이유가 없었던 선유도 여행이 이유를 넘어 의미 있는 여행이 되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당진에도 흰발농게가 아직 남아있을까 궁금했다. 그렇게 넓었던 갯벌은 이제 거의 다 없어졌지만 군데군데 남아있는 갯벌 어딘가에 흰발농게가 살고 있으면 좋겠다 싶어 기회가 되면 한번 찾아봐야지 생각했다.

그 후 갯벌 교육 강사님으로 오신 분께서 교육 중에 서해대교가 보이는 당진의 어느 갯벌에서 흰발농게를 찾아주셨고 당진에 아직 흰발농게 서식지가 남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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