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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ALD Jun 05. 2017

모든요일의기록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박웅현의 책을 재미있게 봤었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를 읽었고, <책은 도끼다>를 읽으며 책을 꾹꾹 눌러 읽는 방법을 배웠다. 그 책 덕분에 책 읽는 방식이 한 단계 달라졌다. 박웅현과 함께 일을 한다는 김민철 카피라이터가 쓴 <우리 회의나 할까?>도 참 재미있게 읽었다. 그 때문이였을까? 카피라이터/광고인이 쓴 책이라면 '재미있다', '통찰력있다'는 이미지가 생겼다. (내가 광고업에 종사했었어서 그럴 수도 있지) 그런 맥락에서 <모든 요일의 기록>을 선택했다.

책을 읽으며, 중간 쯤 한번 덮고 싶었다. 이 책은 카피라이터라는 명함을 가진자가 쓴 그냥 일기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카피라이터'라는 단어에 속아서 읽은 느낌이랄까? 실제로 읽는데 2~3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를 한 권의 책으로 낸 듯한.
내가 제목에서 기대한 것은 '카피라이터'가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기록한 '모든 요일의 기록'들이었다. 이런 추상적인 내용은 기대하지 않았다. 만약 나같은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읽는다면 그만 두는 것이 빠를지도.








앤 패티먼, <서재 결혼 시키기>, 지호, 2002 (27p)

나는 책을 나무가지 자라나듯 연결하여 읽는 것을 좋아한다. <서재 결혼 시키기>도 이 책에서 언급된 부분만을 보았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 읽고 싶은 리스트에 추가한다.

https://brunch.co.kr/@072a/10 (독서노트 : <서재 결혼 시키기>)



사람과 책의 관계에도 때와 환경과 감정의 궁합이 맞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33p)

환경과 감정의 궁합이 딱 맞아 책의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내 몸에 흡수되는 책을 몇 권이나 만날까 싶다. 그런 책을 많이 만나보고 싶다.



'역시.... 경험의 폭이 넓어진 만큼 책이 읽히는구나.' (38p)

많은 사람들이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었을 때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삶에 대한 경험이 늘어서 그렇다고 한다. 박웅현도 예전에 읽었던 책을 새로 읽으면 그때와는 또 다른 문장이 들어온다고 한다. 책은 그런 것 같다. 내가 살아온 인생만큼 느껴지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때론 단숨에 핵심에 도달하기도 하고,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최선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기도 하는 것이다. (51p)

한 회사의 마케팅팀에 있으면서 가장 힘든 것은 내가 너무 이 회사와 제품을 많이 안다는 것이다. 많이가 아니라 다 안다는 것. 이것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도 한다. 모를 때가 오히려 소비자의 입장에 설 수 있고, 소비자의 눈으로 제품을 바라보게 된다. 마케팅이란, 광고란 참 어려운 것이다.



소설책을 편다. 거기 다른 사람이 있다. 거기 다른 진실들이 있다. 각자에게 각자의 진실을 돌려주려면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51p)

소설책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참 많다. 당시의 사회상부터 등장인물들의 심리, 섬세하게 표현된 문장들.. 잘 써진 소설 한 권은 보물이 아닐 수 없다. 보물을 찾기 어려워서 그렇지. 아무튼, 소설을 좀 더 많이 읽어야 겠다.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돌아와 보니 봄은 우리 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다. - 중국의 시- (77p)

저자가 프랑스로 떠나고 싶어 할 때 박웅현이 그의 책상에 써준 글이라고 한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봄이 어디 있는지 돌아다니지 않았더라면 우리 집 매화나무 가지에 봄이 걸려 있는지 거들떠나 보았을라나?? 짚신도 닳아봐야 매화나무 가지의 봄도 보이는 법 아닐까? 물론 이 시 덕분에 우리 집 매화나무를 한번 쳐다보긴 하겠지만 ㅎ



그러니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일상에 매몰되지 않는 것, 의식의 끈을 놓지 않는 것, 항상 깨어 있는 것,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 부단한 성실성으로 순간순간에 임하는 것,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 것, 오직 지금만을 살아가는 것, 오직 이곳만을 살아가는 것, 쉬이 좌절하지 않는 것,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 피할 수 없다면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일상에서 도피하지 않는 것, 일상을 살아나가는 것. (86p)

나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삶에서 항상 이러한 것들을 되새기며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바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체크하고 다잡아야 할 것이다. 가끔씩 이 글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을 때 좋을 것 같다.



여행은 감각을 왜곡한다. 귀뿐만 아니라 눈과 입과 모든 감각을 왜곡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왜곡에 열광한다. 그 왜곡을 찾아 더 새로운 곳으로, 누구도 못 가본 곳으로, 나만 알고 싶은 곳으로 끊임없이 떠난다. (130p)

여행의 즐거움에 대한 표현.



바흐 <파르티타> 2번의 마지막 악장인 <샤콘느>. 연주가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곡. 그래서 브람스는 이 곡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가장 깊은 생각과 가장 강렬한 느낌의 완전한 세계"라고. 젊은 연주가의 <샤콘느>는 깊이가 없고, 늙은 연주가의 <샤콘느>에는 기교가 부족하기 쉽상이다. 너무 젊지도 너무 늙지도 않은 그 팽팽한 긴장감의 나이에 <샤콘느>를 위한 나이가 있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이 정경화의 <샤콘느>가 아닐까? (138p)

예전에, 고등학교 대학교시절 mp3가 한창 발달할 때 클래식을 열심히 들었던 적이 있다. 그 때에 들었던 곡 중에 샤콘느가 있었다. 그 기억이 나 책을 읽으며 샤콘느를 찾아보았다. 마침 유튜브에 정경화가 성당에서 연주한, 이 책에 쓰여있는 그 것이 있기에 들어 보았다. 첫 음부터 큰 울림이 있었다. 가만히 7분여를 들었다. 왜 저자가 울었는지, 그때의 그 연주가 팽팽한 긴장감의 나이의 <샤콘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F7c8zIhBGg (정경화 : 샤콘느)


정보에 정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리고 그 중에 내 눈에 들어오는 네 단어들이 있었다. '여름밤, 야외, 고대 로마극장, 재즈연주'. 이 네 단어를 더하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낭만이 들끓었다. (144p)

여행의 즐거움에 대한 표현.



나는 내가 비옥한 토양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 그래서 오늘도 나는 뭔가를 한다. 새로운 것들을 경험한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 그리고 행복해한다. 비옥한 토양의 주인이 되어 비옥한 웃음을 짓는다. (201p)

나도 비옥한 토양을 가지고 싶고, (죽기 싫지만) 죽기 전에 최대한 많은 것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기름지고 비옥한 나를 만들고 싶다.





책에도 나온 것 처럼, 환경과 감정의 궁합이 잘 맞는 책들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책은 나와 그 궁합이 잘 맞지 않았겠지~ 하고 생각한다. 어떤 이에게는 분명 재미있게 읽혔을 것이기 떄문에.

같은 저자가 같은 시리즈로 <모든 요일의 여행>을 썼다. 읽어볼까 싶기도 하고, 같은 실패의 반복이 될까 포기하고 싶기도 하다. 내가 준비하는 다음 콘텐츠는 '여행'이니 아무래도 읽어봐야겠지?






길고 긴 서평보다 그 책에 담긴 몇 문장이 그 책을 더 사고 싶게 만들기 때문에

오늘도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사람들과 함께 저의 독서노트를 공유합니다.

(라고 쓰지만 결국은 내 독서노트를 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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