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일본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던
나는 소설분야에 있어서는 편식이 심한 편이다. 거의 일본 소설을 읽는데, 일본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많아 여행도 자주 갔을 뿐더러 영화나 드라마도 일본의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일본 소설에도 관심이 간다.
책을 읽을 때 작가의 나라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음은 그 책을 즐기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 나는 일본을 좋아하니 이번에 읽은 편의점 인간에서 이야기하는 여러 장면이 자연스럽게 일본 여행 중의 풍경 등으로 떠오르고, 등장인물들의 생각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내 배경지식들과 어우러져 이해하는데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편의점인간은 주인공이 편의점에서 18년간 아르바이트를 한 여성이다. 어렸을 적부터 생각이 남들과 달라 사회의 '저쪽'편이 였던 주인공이 편의점 세상에서, 그리고 실제의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세상은 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실은 규격화 되고 규율화된 편의점과 별반 다름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고 피하기위해 순응하는 모순적인 인간, 이 세상 '저쪽'에 사는 여인이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에서는 적응하지 못하지만, 규격화된 편의점에서는 적응을 하며, 그 곳과 한 몸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 점이다. 우리는 마치 규격화된, 규율화된 세상을 벗어날 수 없다고 주인공이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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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말 이외의 말은 하지 않고 자진해서 행동하지 않게 된 나를 보고 어른들은 안심한 것 같았다.(16p)
일본을 자주 여행하고, 일본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항상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생각, 사고방식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어찌 볼 때는 다른 그들의 생각. 어쩌면 일본의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저 한 문장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제복을 입고 복장 체크 포스터에 따라 옷차림을 가다듬었다. 머리가 긴 여자는 묶고, 시계나 액세서리도 다 벗고 줄을 서자, 아까까지 제각각이던 우리가 갑자기 '점원'다워졌다. (17p)
대학생, 밴드를 하고 있는 젊은 남자, 프리터, 주부,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 등 다양한 사람이 같은 제복을 입고 '점원'이라는 균일한 생물로 다시 만들어져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날의 연수가 끝나자 모두 제복을 벗고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꼭 다른 생물로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23p)
커다란 빌딩 숲 속으로 들어가는 여러 양복쟁이들, OL들 모두가 세상 속의 하나의 부품이 되어가는 순간. 너도 나도 우리 모두가.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지금도 꿈틀거리고 있을 그 투명한 유리상자를 생각한다. (30p)
우리가 일하는 그 빌딩 숲이 모두 투명한 유리상자, 수조라고 생각하니... 슬프다. 수조 속에서 열심히 헤엄치며 일을 하는 모습이.
같은 일로 화를 내면 모든 점원이 기쁜 표정을 짓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직후의 일이었다. 점장이 버럭 화를 내거나 야간조의 아무개가 농땡이를 부리거나 해서 분노가 치밀 때 협조하면, 불가사의한 연대감이 생기고 모두 내 분노를 기뻐해준다. (39p)
그 죽일놈의 연대감. 허나 회사생활에서는 필수. 이것을 우리는 사회화 되었다고 할 것이다. 어차피 그 수조 속을 벗어나면 남남인 것을. 그 안에서라도 서로 위로 받고 싶은 것일까?
(연애사에 대해 물어볼 때) 이럴 때는 "좋은 느낌이 든 적은 있지만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없어!" 하고 애매하게 대답해서, 남자를 제대로 사귄 경험은 없지만 불륜 같은 무슨 사정이 있는 연애 경험은 있고 육체관계를 가진 적도 있는 듯한 분위기로 대답하는 편이 좋다고, 전에 여동생이 가르쳐주었다. "사적인 질문은 애매하게 대답하면 상대가 멋대로 해석해주니까" 하는 조언을 들었는데, (48p)
비법을 획득했습니다.
적당히 던져주면 알아서 상상하도록.
통상적인 관계의 사람들 간에 쓸 수 있겠지?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을 때는 한 역 앞에서 내려 가게까지 걸어간다. 맨션이나 식당이 늘어서 있는 곳에서 가게 쪽으로 걸어갈수록 사무용 빌딩이 늘어난다.
천천히 세계가 죽어가는 듯한 그 감각이 상쾌하다. (50~51p)
일본에서 아침 일찍 나오거나 저녁 늦게 들어갈때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거리가 죽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거리에 사람 하나 안보일 때도 있고, 거리가 깨끗함도 한몫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일본의 아침은 항상 회색빛이 떠오른다.
이상한 사람한테는 흙발로 쳐들어와 그 원인을 규명할 권리가 있다고 다들 생각한다. (70p)
특히 인터넷이 발달될수록 더.
"정말로 여기는 변함이 없어." (90p)
사람 하나, 물건 하나는 사실 정말 작은 티끌에 불과하단 것. 그리고 세상은 나 하나가 빠져도 얄미울 만큼 잘 돌아갈 것이라는 것.
"그래서 현대는 기능 부전 세상인 겁니다. 사는 방식의 다양성이니 뭐니 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말을 지껄이고 있지만, 결국 조몬시대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요." (126p)
그래 생각해보면 우린 항상 다양성과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항상 해왔던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내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 같기도 했다.
"죽을 때까지 평생 누구한테도 간섭받지 않고, 그냥 숨을 쉬고 싶어요. 그것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129p)
현대 사회의 일본인들, 그리고 한국인들이 가장 하고 싶은 말 일것 같다.
기다리느라 조금 기분이 상한 듯한 남자 손님이 계산대로 와서, "저 사람은 신참인가요? 난 바쁜데" 하고 짜증스러운 어조로 말해서 "죄송합니다!"하며 고개를 숙였다. (138p ~ 139p)
일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일본인들은 자신의 불만을 어렴풋이 밖으로 내뱉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이 속으로 삭히는 것과 다른 모습이다. 일본의 이런 모습은 마치 자신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직종의 사람들(그렇게 불만을 터뜨려도 자신에게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 사람들)을 불만의 표출구로 삼아 평소에 쌓였던 불만을 내뿜어 버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일본인들은 인내하고 참다가 결국 폭발해버리는, 그런 모습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일본의 슬픈 자화상 같은 느낌이다.
"시하라 씨를 집에서 쫓아내면 고쳐질까? 집에 계속 놔두어야 고쳐질까? 지시를 내려주면 나는 아무래도 좋아. 확실하게 가르쳐줘." (156p)
'물어보고 하니 그것도 모르냐고 하고, 그래서 묻지 않고 했더니 왜 묻지 않느냐 한다'는 회사의 꼰대들을 비꼬는 글이 있다. 저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점점 수동화 되어 가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의 주인공도 편의점의 규율에 익숙해져 지시가 없으면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그런 자신을 좋아했다. 어쩌면 그 편이 마음은 편할지도.
읽으면서, 일본의 현재 사회상을 엿보고, 오늘날의 일본의 젊은이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우리니라에 빗대어 보기도 했다. 점점 프랜차이즈화 되어가는 우리나라를 불현듯 걱정하게 되기도 했다. 아래의 작가 인터뷰를 보면 작가가 하고자 하는 책의 의도를 조금 더 깊게 알 수 있으니 참고!
http://news.kyobobook.co.kr/people/writerView.ink?sntn_id=12950&expr_sttg_dy=20170220101900 (교보문고 저자 인터뷰)
길고 긴 서평보다 그 책에 담긴 몇 문장이 그 책을 더 사고 싶게 만들기 때문에
오늘도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사람들과 함께 저의 독서노트를 공유합니다.
(라고 쓰지만 결국은 내 독서노트를 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