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치열한 삶의 서막이었다①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 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by 와와우

절망이 지나간 공허 속에 새롭게

피어난 것들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

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去 然)


첫사랑은 치열한 삶의 서막이었다①


15살, 나는 중학교 2학년 남학생에게 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갖고 있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원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결국 그것도 상대적인 것이다. 이러한 비교우위에 스스로 만족하고 우쭐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의 역사가 이러한 구조 속에 종속되어 반복되고 있음이다. 인간의 바람인 모든 인간의 평등과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지만 현실은 이를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여 인간 스스로의 합리화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당시에도 학교를 다니는 학생은 공부가 전부였고 다른 이보다 잘 할 수 있다는 것은 자랑이 되었다.


모든 것은 집중에 대한 노력으로 그 결과를 만든다. 무엇이든 집중하여 반복하면 시간은 나에게 많은 결과로 보답한다는 사실을 일찍 알게 하였다. 공부하는 것도, 운동을 하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음악을 하는 것도, 놀이를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나는 참으로 행복한 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 타고난 재능이 주어져 있었다. 그것들은 결국 내게 한순간 주어진 행운에 불과했다. 이제 늦은 나이에 알게 되었지만 '잘 하게 된다는 것'은 오랜 시간을 통하여 지속적인 관심과 자기학습을 수반해야 완성되는 것이다. 집중에 대한 노력조차도 집중할 수 있는 재능이 주어진 것을 전제로 하는 행운이지만 인생은 그러한 행운이 주어지지 않은 이에게도 삶의 시간과 노력은 누구에게든 그 기회를 만들어준다. 나는 '잘 할 수 있었다'는 그 많은 가능성을 나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러한 작은 특별함들이 내게는 당연함으로 생각되던 시절이었다.


나는 옆집에 사는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 첫사랑은 세월이 지나면 누구에게나 평범한 추억으로 마음에 묻어 두게 되는 것이지만 사랑은 내게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이유가 되었다.


왜였을까? 애뜻한 기억 저편으로 부끄러운 미소를 머금고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널 수도 있었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사랑은 사랑하게 된 자신에게 얼마나 충실할 수 있었느냐의 문제만 남는다. 나는 성장기에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쥴리엣'의 사랑을 고귀한 사랑이고 최선이라 생각하였다. 내 주변의 어른들이 이에 대하여 부정하는 사람이 없었던 이유도 있다. 기독교적 윤리에 충실했던 부모님의 슬하에서 성장하였다는 이러한 환경들이 다행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내 주변에 있던 어른들은 냉정한 현실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고 사랑의 현실이란 고통을 반드시 수반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지나고 보니 누구나 다 그러한 사랑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사랑의 꿈은 결국 어린 나에게 맹목적인 아집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사랑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열한 현실을 살아가며 실속 없었던 자신의 과거에 대하여 후회와 미련을 함께 가지고 모두가 스스로 레테의 강물에 자신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 역시도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당시의 나에게 그 만큼의 처절한 대가가 요구되고 있었다.


다섯 살의 여름날은 앞집에 놀러온 귀여운 여자애가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그렇지만 우리는 금방 친해져 하루 종일 어울려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하루는 둘이서 아버지의 서재에 들어간 것이 작은 사건이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라는 공간은 그 여자애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의 어린 감정과 나름의 의미들을 기억한다. 그것은 나와 다른 '여자'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었다. '입을 맞추고 싶다는 것과 그 순간 참 좋았다'는 감정이다. 지금도 그 친구가 누구였는지는 모른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나는 나와 다른 여자의 존재를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삶 속에 기억조차 희미한 세 살적의 여자 친구에서부터 여자라는 존재에 대한 많은 관계 속에 뒤섞였던 나의 본능적 요구는 운명에 낚일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 여자 친구들이 한번쯤 다시 보고 싶은 친구들이 되었고 나에게 호의를 표현해 주었던 그때의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순간들이 된다. 나 역시 좋아하기도 하였고 마음을 설레게도 했던 그 친구들을 비교하면 이제 와서 나의 첫사랑에 대한 감정들이 그렇게 특별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내 기억은 그랬다. 그 시절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한 사람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면 다른 이성에 관심을 갖지 못했다. 무엇에 대한 나만의 소유욕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사랑이 충직하다는 것은 인간의 노력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회의적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아름답다'는 사실에 비판을 하지 않으려 한다. 비판은 이내 자기만의 푸념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사랑의 포기가 인생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음도 사실이다. 인간이 한 이성에게 향했던 사랑이 이미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개념의 확장을 이루게 되어 '인간에 대한 사랑'은 자신이 경험한 개인의 진실성을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이기적인 집착이 깨지는 순간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역설을 인생은 가르치고 있다.


어린시절, 브론테의 소설 '제인에어'를 영화로 만들었던 흑백영화가 있었다. 7살쯤 내가 유치원을 다닐 때나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정도의 나이였을 것이다. '초원의 빛' 이란 영화도 있었다. 그 시절 흑백 진공관 TV로 보았던 화면에 나를 정신없이 빠져들게 하였고 그 내용들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 순간에 느꼈던 순간순간의 장면과 감정, 그리고 감동을 나는 오랫동안 기억했다. 내게 분명히 심어준 사실은 막연한 사랑의 감동이었다. 어린 나에게 그러한 감동이 여자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하였던 것이다. 처음으로 어린 나를 감동시켰던 영화의 감성, 그녀의 발랄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하교길 버스에서 내 가방을 받아든 여중생에 대한 끌림, 나를 유난히 잘 따르던 그녀의 어린 남동생, 그녀의 어머니, 같은 동네에서의 잦은 만남. 이러한 것들이 새끼줄을 꼬듯 나의 운명을 엮어든 것이다.


나는 공부도 꽤 잘했다. 그 자체를 좋아할 수 있었던 당시 나에게 여학생은 관심 밖이었다고 할 수도 있었다. 내가 언제든 원하면 당연히 나를 좋아해 주리라는 자신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내게 호의를 보여주던 여학생들이 주변에 많았다는 것이 이유일 수도 있었다. 훗날 오히려 한 여자애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정성을 다했던 12년의 시간 속에서 나에게 호의를 가져주었던 어린 여자 친구들에 대한 감사함도 알게 하였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다.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전화수화기를 붙잡고 다이얼을 돌리려면 여학생은 큰 용기를 내야만 한다. 항상 상대방 부모님과 먼저 통화를 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의외로 그러한 용기를 내는 남학생 역시 흔치 않았다.


그때는 '누구를 바꿔주세요?' '저는 누구누구라고 합니다.' 하고 예의를 갖춰야 하는 통과의례가 있어야 했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영주는 그러한 의례를 거치고 용기를 내어 나에게 전화를 했다. 영주는 지금도 아름다운 모습을 잃지 않고 있고 세 자녀를 둔 멋진 귀부인이 되어 있다. 함께 다니던 유치원 시절에 내가 좋아했던 꼬마 친구다. 꽤 많은 남자애들은 영주와 짝을 하고 싶어 주변을 서성였지만 그때 꼬마 영주는 내 손을 잡아주었었다.


'나 기억하겠니?'...... '너와 친구하고 싶은데’

15살 소녀는 내게 어렵게 전화를 걸어 프로포즈를 했다. 여자 친구가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뻔한 변명을 하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분명한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혼자 좋아하고 있었고 다른 누구를 좋아 하는데 다른 사람을 이성으로 만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것이 본심이었다. 어린 나의 순정은 그런 것이었다.


나는 영주에 대한 그 순간의 거절을 후회한 적도 있었다. 그 후로도 영주는 참 오랫동안 나를 지켜봐 주었다. 그녀가 고등학생이 된 딸을 키우며 가정주부로 남들처럼 살아가는 몇 년 전까지도 나의 지인에게 꾸준하게 안부를 물어주곤 했다. 그녀가 보여준 나에 대한 차분한 추억은 정말 감사하고 또 고마운 일이다. 그녀는 옛 추억의 아련한 기억으로 나를 차분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마음 저편의 책장 구석에 놓인 오래된 앨범 정도의 기억이 되고 말겠지만 나의 역사에서 영주의 호의는 그리운 시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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