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 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그러했던 6개월 동안 나는 결국 내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었다. 나를 보다 못해 측은히 여기던 그녀의 언니가 그녀를 책망했다고 한다. 그녀의 언니는 처음에 나를 타이르고자 하였으나 나의 진심과 결심을 차분하게 듣고 난후 어린 나의 진심에 수긍해 주었다. 나의 처절한 당시의 마음을 헤아려주었던 유일한 사람이었고 그녀로 인해 얽혀버린 실타래의 한 가닥을 겨우 붙잡을 수 있었다. 그녀의 집에서 어렵게 그녀를 만났다. 자상했던 그녀의 어머니께 인사하고 그녀의 방에 들어갔다.
참으로 냉정했던 그녀. 그녀는 내게 화를 내고 있었다.
"내 사랑이 정말 보잘 것 없는 것인지 나는 믿을 수 없다."
"어린 우리의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고 하지만 나는 그럴 것이라 믿지 않아!"
"네 뜻이 그러면, 내가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너를 놓아주려 한다.“
비로소 침착해진 그녀의 표정을 보며 나는 다시 말했다.
"하지만 한가지 약속을 해주렴. 남들처럼 모든 것이 잊혀질 때쯤, 한 5년이 지나도 내 마음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으면 다시 찾아오겠다."
“그때는 나를 꼭 받아주어야 한다."
나는 그녀의 답을 받았다. 그녀도 그때는 진심이었다. 그녀의 외면에 마음이 처절하게 상했던 나는 그렇게 다시 5년을 약속해 버리고는 위로를 받았다.
여자의 약속. 아니, 인간의 약속은 깨질 수 있는 것이다. 당시 그녀가 거짓이라도 나에게 한마디만 해주었더라면 결과는 참 많이 변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어렸고 너무 정직했다. 빈말이었더라도 1년 후를 기약해 주었다면 분명 모든 것은 달라졌을 것이었다. 그것은 결국 어린 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함정과도 같은 것이었다. 5년은 내게 너무 긴 시간이 되었다. 거기서 끝났어야 했다. 그랬다면 나는 그녀에 대한 사랑이 풋사랑의 추억 정도에 불과한 기억이 되었을 것이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치열하게 만들었는지 지금도 나는 알 수가 없다.
돌이켜 그때를 생각하는 지금, 극히 주관적이었던 그 시절의 나의 변명과 그 어설픈 판단들이 고스란히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사실에 다시금 놀라움을 갖는다. 기약 없는 약속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방황을 하게 했다. 그 방황에는 어떠한 명분도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에 다시 복학을 했다. 그러나 학교생활에 의미를 두지 못하고, 학교 옆 봉우리에 올라 해질녘까지 무심해지는 나를 바라본다. 점점 멀어져버리는 현실은 나에게 어떠한 의욕을 가질 수 없도록 차이를 벌리고 있었다.
전 학년 540명 중 540등. 내가 받아든 당시의 성적표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학교라는 것이 나에게 감옥처럼 다가온다. 하루를 버티기가 어려웠다. 아침조회가 끝나기가 무섭게 조퇴를 해버린다. 어느 누구도 나를 막아서지 못한다. 학교 옆 동산에 올라 혼자서 하루를 방황하고 집으로 말없이 기어들어 간다. 그 당시의 이유 없는 나의 분노는 누구를 해할 수도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뜨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나를 지켜주던 많은 친구들은 다행히도 따뜻한 친구들이다. 그것 또한 내게 주어진 행운이었고 당시 내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를 결국 시간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것은 10대 소년에게 주어진 상실의 시간이었다. 납득될 수 없는 의문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노로 변하여 갔다. 왜? 왜? 왜? 그리고 나는 그 답을 얻는데 이후 8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담임 선생님을 찾았다. 나는 학교를 더 이상 다닐 수 없다고 했고 학교생활이 나에게 더 이상 강요되면 나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내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에 있는 인류대학에 진학했다. 그러한 괴리감 역시 나를 자극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실의 이유가 되었으며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2학기에 다시 복학하기로 하였다. 복학을 취소하는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도 유래가 없는 학생이 되어 있었다. 한 동안 휴학을 하고자 했던 후배들에게 실패한 전형이 되어 회자되었다고 한다. 내가 학교수업을 거부하고 찾았던 학교 뒤 바닷가 절벽은 오래전부터 꽤 유명한 ‘자살터’였다. 절벽에서 내려다보면 바닷물이 부서져 흩어지는 모습이 죽음을 부르기 좋아 보인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도 그 동산 옆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들은 그곳을 운동장 삼아 뛰어놀았기에 자연학습장이 되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이 동산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했었고 지금도 우리 동기들은 그 동산을 누구나 없이 좋아하고 그리워한다. 저녁노을이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다. 나는 이 동산에서 꿈을 키우며 동심으로 즐거운 추억을 함께 했었다. 나는 절벽 위 자살터에 앉아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의 죽음을 떠올렸다. 나의 감정과는 완전히 다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경험하며 어린 시절의 동심과 추억으로 아련한 마음이 가득 찼던 그 곳이 쓰라림으로 덮여가고 있었다. 이제는 내게 자각의 동산이 되었다.
그냥 잤다. 죽음과 같은 잠이었다. 기나긴 잠을 잤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잤다. 눈을 뜨면 새벽인가 싶어 다시 눈을 감으면 며칠이 지났다. 무기력함. 다시 6개월을 그렇게 보냈다. 배고픔. 배설. 산다는 것이 싫었다. 반복되는 허기. 배설. 육체의 요구는 무기력함으로 더욱 더 나를 비참하게 하였고 그래도 육체는 살고자 발버둥을 쳤다. 몸을 일으키고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다 이내 목적을 탐하고 다시 잠을 잔다. 눈을 뜨고 잠깐 마주치는 부모님의 걱정스런 눈빛은 내게 아무런 자극이 되지 못했다. 모르는 척 묵묵하게 나를 믿음으로 지켜주시는 나의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과 믿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또 잠을 잔다.
나는 아침이라고 생각했다. 동쪽에서 비치는 아침햇살의 상쾌한 기운에 눈을 떴다. 꿈이었다. 내게 다가온 현실은 어둠이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꺼먼 밤이었다. 나의 인생에서 경험했던 가장 어두운 밤이다. 지독한 공포. 그리고 외로움. 순간 갑자기 머리가 맑아졌다. 그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밖으로 나가 맑은 밤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들을 보았다.
자각. 깨달음.
'이 모든 것이 욕심이었나?'
'그래,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나의 욕망에 불과한 것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나의 사랑이란 것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된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대체 무엇이 나를 이토록 그녀를 갈구하게 하였는가?‘
나는 그것을 외로움이었다고 생각한다. 본질적 외로움. 인간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일찍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자문, 사유, 직관적 경험, 이런 것들의 시작이 되었다. 사람들은 6-7살 이전의 기억을 거의 상실한다. 내 아들 역시 그렇다. 불행히도 나는 1살 기억까지 어렴풋이 남아 있으니 참 특이한 경우다. 나의 기억력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기억 방식은 좀 남다르다. 감정, 관념, 그림 같은 것으로 기억하기를 좋아 했고 노래와 이미지로 기억하는 것에는 탁월했던 것 같다. 그것은 저절로 주어지는 능력이었다. 나의 능동적인 의지가 요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우리지 않았다. 포괄적 이해는 빠르지만 일반적인 기억력은 그저 그랬다. 흔히 이것을 직관이라고도 한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주관적 의지보다 주변상황이 만드는 객관적 의지에 강했던 것이다. 그것은 결국 고집스러움이 되었고 아집이 되었다.
우리는 주관이 분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누구나가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도 자신만의 취향, 자신만의 생각, 자신만의 주장 등을 고집하며 그것을 자신의 주관이 강함으로 착각을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성인이 된 인간은 누구나가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게 된다. 20대 중반 정도면 누구나가 이러한 나름의 주관이 완성되어진다. 그러한 개성을 분명히 하는 것은 삶에 있어 중요한 존재 방식이 되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이에게 자신을 강요하게 되고 또한 자기의 생각만을 주장하여 다른 이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한다면 인간이 추해 보이게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만다. 오히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이러한 아집이 더 강해지고 자신의 경험만을 믿고 싶어 한다.
자기라는 자아가 성립된 인간은 자신을 버리는 연습을 반드시 하여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정말 그러한가?' 라는 의구심을 갖고 다시 생각할 필요를 느껴야 한다. 그리고는 새로운 것을 채우는 빈자리를 만들기 위해 비울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버리는 것이 없으면 남에 대한 배려의 자리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버리고자 하여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끝없는 사유와 그러한 직관적 경험에 의한 반복과 실천을 통해서 스스로를 훈련하여 무의식적인 자기습관을 만들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을 버릴 수 있는 것. 인간은 그렇게 함께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한 것은 나의 욕심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기다림은 그녀와의 새로운 만남에 있어 훌륭한 당위성을 내게 줄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