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치열한 삶의 서막이었다④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 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by 와와우

절망이 지나간 공허 속에 새롭게

피어난 것들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

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去 然)


첫사랑은 치열한 삶의 서막이었다④


나는 내가 태어난 집의 마당과 주인집 안방을 기억 한다. 지금 돌아가 그 집을 찾으면 다시 기억이 선명해질 만큼의 기억이 있다. 4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이사 간 집은 더욱 선명한 기억이 있다. 슬레이트지붕 툇마루가 있는 단칸방, 그리고 마당, 흔한 그 시절의 나무대문, 대문을 열고 나가면 더 어린 내가 10시간 가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게 했다는 병원. 그 시절 친구들의 이름도 나는 그때의 감정으로 기억한다. 모든 아이들이 그러하지만 나는 노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던 시절이다. 동네 또래 친구들과 하루 종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는 해 저물 무렵 나를 찾아 나선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서야 놀이를 멈추고 배고픔을 느낀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감정의 기억을 갖고 있다. 그것은 아쉬움의 감정일 수도 있었다. 그러고, 거기에는 순간의 공허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어린 나는 이른 식사를 하고 초저녁에 지친 몸으로 일찍 잠에 빠져들었다. 꿈에서 친구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밖에 나가 함께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떴다. 밤이다. 몸을 일으켜 방 안을 둘러보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어린 여동생은 깊은 잠들어 있었다. 외로움이 엄습했다. 무서웠다. 그것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 때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지만 어린 내가 처음 느낀 그 강열한 감정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오랫동안 선명하였다. 그 날도 나는 밝게 빛나는 수많은 별들을 보았고 마당 한가운데 서서 어린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각의 순간, 나는 어린 나의 기억을 되새기며 인간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외로움의 감정 속에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함께한다는 것. 그것은 본능적으로 나의 삶의 방식이 되었다. 나 아닌 또 다른 나를 만드는 것.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삶의 전부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많은 시간 동안 그 나름의 생각과 방법으로 모든 가치와 의미를 그녀에게 부여했던 것이다.


꽃(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그녀)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그녀)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그녀)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그녀)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그녀)에게로 가서 나도

그(그녀)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그녀의 거절은 나의 갈망을 산산히 부숴 놓았지만 형용할 수 없었던 슬픔은 김춘수의 '꽃'을 되뇌이며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이유가 되어 정당함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 '누구' 가 그녀 외에는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멈출 수 없는 수레바퀴였다. 여기서 떨어지면 나는 나의 인생에 어떠한 의미도 가질 수 없을 것 같았다. 치열했다. 지난 어린 시절의 5년과 그녀에 대한 사랑은 그 가슴 벅찬 안타까운 감정과 바램을 표현할 수가 없었고 그 이후 실연의 상처와 슬픔은 어떠한 수단으로도 형용할 수가 없었다. 말하고 싶었다. 나타내고 싶었다. 그리고는 가슴에서 시작되어 머리끝을 맴도는 온갖 단어를 쪼개기 시작했다.


가슴 벅차오르는 온 몸과 정성을 다해.

내 모든 삶의 의미를 담아.

나를 사랑하듯 당신을, 당신을 사랑하듯 나를.

완전한 영혼이 하나 되기를.

슬픔과 고난을 쪼개고 희망과 행복을 함께하는.

그대를 바라보는 진실만큼 나의 삶을 다할 수 있는.

간절함이 하늘에 다다라 당위의 축복으로.

간절함이 바닥을 드러내어 마땅함이 진리가 되기를.

나의 치열함이 다다른 곳에 생명의 꽂을 피우는.

그리움이 물이 되어, 흘러 흘러 생명의 강을 이루는.

간절함의 의미가 꽃송이 되어 영혼의 순수함으로.


몸서리치는 가슴 밑바닥을 회오리쳐 회한을 감싸 안아 울컥이며.

가슴을 쥐어짜는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두 팔로 감싸 안고는.

서러움이 울컥이고 나의 진실은 처절함이.

슬픔이 붉은 피 속을 또아리쳐,

낼름거리는 상실이 분노 속에 녹아드는.

도저히 납득될 수 없는 이유가

부딪친 벽에 슬픔으로 터져 뿌려지고.

죽음 같은 절망에

이유 없는 분노가 허탈한 생의 의욕이 반복되어 휘감아 치는 상실로

무뎌진 감각은 본능으로 허겁지겁 회한을 집어삼키고는.

비워진 가슴에 상실이 휘몰아쳐

그리움을 비틀어 공허함으로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왜?'

'나는 왜 그녀만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녀는 나를 어떻게 외면할 수가 있었을까?'

'이것은 사랑이 아닌 욕망이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기 위해서는 내가 그녀를 내 마음에서 해방시킬 수 있어야 사랑이다!'

'그래, 진정한 사랑을 해보자!'


(충년(充年)의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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