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고난은 정말 혹독하였다②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 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by 와와우

절망이 지나간 공허 속에 새롭게

피어난 것들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

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去 然)


현실에 고난은 정말 혹독하였다②


사고가 있던 날은 오전에 있었던 친구의 결혼식에서 아내의 반주에 맞춰 결혼축가를 하였다. 결혼피로연에 한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함께하고 친정에 남겨진 아내와 아들을 늦게 데리러 간 것이 다툼이 되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나는 피로연에서 마신 술로 인해 아무 생각 없이 잠을 잤다. 어린 아들의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아이를 팽개치고 아래층 2층 서재에서 혼자 자고 있는 아내를 보며 나는 화를 내었다. 아내의 시큰둥한 반응에 결국 나는 아내를 때리게 되었다.


아이는 3층에서 먹을 것을 달라고 심하게 울고 있다. 1층에 주무시고 있던 어머니가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올라오신다. 어머니는 우리가 다투는 모습에 싫은 말씀을 하시고는 아이를 안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간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 우유를 급히 타서 뜨거운 우유를 식히느라 한참을 1층에서 어머니와 함께 했다. 항상 식혀져 있던 따뜻한 분유용 물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식은 물만 있었어도 시간을 그렇게 지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의 울음이 진정되는 것을 보고 사과를 하려고 아내에게로 간다. 아내는 2층 서재에 없다. 3층 우리의 침실에도 없다. 그 순간 나는 아내의 차가 있었는지를 확인하지도 않고 그 밤에 친정에 갔을 것이라 섣부른 짐작을 한다. 나는 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그냥 잠을 잤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문득 이상한 느낌에 잠을 깬다. 순간 알 수 없는 불길한 생각이 엄습한다. 혹시 하는 생각에 3층 옥상을 올라간다. 아내가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없다. 다행이었다. 그래도 그 불길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려오면서 3층 난간을 기대어 밑을 바라본다. 순간 희미한 그림자가 보인다. ‘사람인 것 같다!’ 아내라는 생각이 든다. 움직임이 없다.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을 되뇌며 급하게 계단을 내려간다. 옆집 울타리 안에 쓰러진 움직임이 없는 아내를 보게 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피투성이다. 급한 마음에 무작정 아내를 들쳐 안고 차가 있는 곳으로 달린다. 급한 마음에 발길을 옮길 수도 없다. 숨을 쉴 수조차도 없다. 나는 완전히 정신이 나가 있었다.


병원을 향해 운전하며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했다. 아내는 대답이 없다. 겨우 꺼져가는 숨을 헐떡이고 있을 뿐이다. 병원에 도착하고서 응급처치를 하였지만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다시 도착한 병원은 두개골이 파손되어 위험하니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바로 6시간 가까운 수술을 하였다. 수술이 끝나니 아침이 되었다.


어머니, 장인, 장모, 가족들이 달려온다. 나는 아내의 피로 온몸을 적신 채 넋을 놓고 있다. 시간이 지나는 것을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시간은 한참을 흐르고 있다. 다행히 수술경과는 좋았다. 수술실에서 막 나온 의사는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한다. 그렇게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아내가 곧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 아내가 눈을 떴다. 나는 어떻게 된 것이냐 물었다. 아내는 말을 하려해도 호흡기로 인해 말을 할 수가 없다. 이후에도 경련과 발작으로 몇 번이고 정신을 잃고 있었다.


아내의 체력은 점점 힘을 잃고 있었다. 오른쪽 허벅지와 양 손목이 골절되어 뇌수술과 함께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아내는 몇 주가 지나도록 죽음과 삶을 오가고 있다. 그렇게 밤새 아내를 지키고 며칠이 갔는지 모른다. 나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토록 나의 인생에 간절한 기도는 없었다. 온 교회가 매일 새벽부터 아내를 위하여 기도했다. 아내는 다시 깨어나서 회복의 기운을 보인다.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아내의 가녀린 목에 기도를 뚫어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입으로 모양을 만들어 의사표현을 했다. 나는 아내의 회생을 확신했다.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의사도 희망적인 말을 한다. 한 달이 지나니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이젠 아내가 내 농담에 웃음을 보이기도 하여 한달 내내 정신이 나가 있었던 내 자신을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장인은 간호사였던 처고모의 의견을 쫒아 서울로 이송하여 큰 병원에서 치료받기를 원했다. 나는 당시 최고의 시설을 갖추었던 삼성의료원에 예약을 하고 준비를 하였다. 당시 원장 부인이 제주도 출신이어서 친분이 돈독한 내 친한 친구의 어머니를 통해 어렵게 입원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침상에 실린 아내를 서울로 이송하여 김포공항에 내리니 아내를 실은 119는 엉뚱한 영동세브란스병원으로 향했다. 갑작스런 변동에 당황하였지만 죄인이었던 나는 처고모의 주장에 의견을 낼 수가 없었다. 응급실로 밀고 들어갔다. 나는 처고모가 미리 세브란스 병원 측과 미리 예약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처고모가 세브란스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었기에 친분이 있는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알았다. 힘든 여정은 아내의 상황을 다시 악화시켰다.


아내는 계속해서 설사를 하였다. 반복되는 설사에 아내는 이미 체력이 바닥상태에 이른다. 갑자기 응급실 수련의들이 들이닥쳤다. 여러 명의 수련의는 아내의 부러진 손목과 허벅지 뼈를 억지로 맞추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아내는 고통스러워했다. 한 달 가까이 자라난 잔뼈들이 수술을 통하지 않으면 물리적으로 뼈를 맞출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처고모는 아내에게 참아보라고 한다. 의사들은 여러 차례 똑같은 방법을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이전 병원의 차트가 미리 병원에 도착하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이전 병원의 주치의는 체력이 회복되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자라난 잔뼈를 제거하기 위해 제거수술을 해야 한다고 나와 의논한 사실이 있었다.


제주에서 한 달 만에 겨우 회복한 아내의 체력은 그날 응급실에서 모든 체력을 소진하고 말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억지로 밀고 들어간 응급실에 아내는 단순한 응급환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예약된 것이 아니라 세브란스에 입원시키기 위한 세브란스병원에 경험이 많은 처고모의 고육지책이었던 것이다. 응급실로 예약 없이 들어갔다는 것은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무리한 처치를 시도한 것들이었다. 그 후 아내는 지속적인 안정을 되찾지 못했다. 대학병원의 중환자실에는 규정된 시간 외에 보호자가 면회할 수 없었다. 보호자 대기실은 많은 보호자로 만원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아내는 나를 알아볼 정도의 안정을 겨우 찾았다.


처고모는 무모할 정도로 신앙이 돈독한 사람이었다. 기도를 하고 옆에서 성심으로 돌보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처고모가 삼성의료원을 외면한 것은 당시 일반병실도 전문 간병인이 아니면 환자를 돌볼 수 없는 삼성의료원의 의료체계 때문이었다. 본인이 직접 아내를 돌볼 수 없다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처고모는 자신의 기도만이 아내를 살릴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처고모는 결국 담당 의사를 설득시켜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다가 다시 독방으로 옮겼다. 병원비를 처가에서 전부 부담하고 있는 상황에 몰린 나는 나의 주장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


아내는 안정을 찾는 것 같았다. 그렇게 겨울이 찾아왔으니 3개월의 병원생활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사고가 날 때 기억하냐고 물었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아내는 울림이 없는 목소리로 '나중에'라고 나지막히 대답했다.


"알았어 꼭 나중에 일어나서 얘기하자"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와의 병실생활에서 많은 대화를 하였다. 일방적인 나의 말에 아내는 웃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방식으로 의사표현을 하였다. 아내는 다시 일어나고자 하루에도 여러 번의 고비를 넘기며 싸움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를 바라보고 위로하고 용기를 잊지 않도록 독려한다. 살수만 있다면 내 모든 희생을 다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어도 좋다. 휠체어에 평생을 의지해서 살아도 좋다. 절음박이가 되어도 좋다. '다시 살 수만 있다면' 내가 무엇이든 다 할 것이라 그렇게 다짐했다.


오랜 병원치료에 아내는 스스로도 점점 지쳐갔다. 우리는 아내가 병원 구석에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 패혈증이 갑자기 왔다. 새로운 피가 생성이 안 되어 수혈을 받기도 했다. 담당과장은 가끔 한 번 들릴 뿐, 오고가는 수련의들은 아내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필요한 때 필요한 처방이 정확히 되고 있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처고모의 아집이 병원의사들에게서 방임된 상황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수동적인 처치, 한 발 늦은 의사의 처치는 결국 아내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다. 대학병원이란 구조가 너무도 많은 환자를 수용하고 있었기에 담당의의 관심의 정도가 결국 환자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의사는 실력이 아니라 의사의 관심과 정확한 처치가 생명인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차라리 제주도에 있었으면 더 좋은 결과를 가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 오히려 삼성의료원에 갔더라면 원장의 지시에 따라 좀 더 특별한 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는 생각도 하였다.


처고모의 열정적인 기도는 오히려 아내를 짜증나게 하고 있었다. 패혈증이 있었다가 상태가 호전되어가고 있는데 자주 바뀌는 담당 수련의는 패혈증 증세가 있다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나의 자세한 설명에 그 수련의는 멋쩍어 한다. 갑자기 기흉이 생겨 아내를 중환자실로 옮겼다. 폐에 물이 차는 증상이 생겨 물을 뺀다고 수련의가 아내의 옆구리를 찌르고 밖으로 물을 뺐다. 이틀쯤 지나 기흉이 생긴 것이다. 폐에 공기가 갑자기 통하면 폐에 치명적인 증상이 올 수 있는데 이것이 기흉이다. 갑자기 아내에게 호흡곤란증세가 왔다. 중환자실에 다시 들어간 아내는 일주일 만에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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