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고난은 정말 혹독하였다④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by 와와우

절망이 지나간 공허 속에 새롭게

피어난 것들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

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去 然)


현실에 고난은 정말 혹독하였다④


지금까지도 그 사고의 순간은 후회로 나를 괴롭힌다. 아내가 자살을 시도한 것이었을 거라는 사실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살을 했으면 왜였을까? 아내가 병실에 누워 있을 때, 아내는 나에게 여러 번 입모양을 만들며 '미안해'라는 말을 하였었다. 그때는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사고 당시 아내의 곁에 있어야 했다. 아이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침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아내를 찾았어야만 했다. 내가 자고 있을 동안 아내는 내 머리 위 옥상에서 죽음을 생각하며 망설이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잠에서 깬 것은 아내가 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되뇌어 생각할수록 견딜 수가 없다. 나는 나의 아들을 낳은 아내의 마음을 살피지 못했던 것이다. 아내가 마냥 아들을 보고 신기해하며 꿈을 꾸는 것이 전부라 생각했다. 아내의 마음이 허물어져가고 있었음을 생각하지 못했다. 꿈이 많았던 아내에게 부도로 어려워진 현실과 엄마로서의 책임은 너무도 큰 괴리를 낳을 수도 있었다.


나는 정말이지 몰랐다. 나는 아내의 사고가 단지 실족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이러한 후회를 가슴에 안아 살아가고 있다. 아내에 대한 죄책감은 어떠한 경우에도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 더 이상 누구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주유소가 경매에 나왔다. 법원이 평가한 법사가격은 12억 원이었다. 담보를 잡고 있는 정유사가 채권 이하의 가격에 낙찰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13억 5천만 원정도이면 명의를 바꿔 입찰할 수도 있었다. 당시 일찍 사업을 했던 친구에게 부탁을 하였다. 그 친구는 흔쾌히 도와준다고 약속했다. 10%의 입찰금이 필요했다. 3천 5백만 원이었다. 주유소의 가치가 15억 원은 충분하였으니 나머지는 은행과 정유사의 외상대금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대기업을 상대하는 것이었고, 정유사가 13억 5천만 원의 남은 채권을 상계처리하지 않고 채권 잔액을 남기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경매진행이 되기 며칠 전, 친구를 찾았다. 그는 머뭇거림도 없이 자신이 왜 그렇게 해야 하냐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의 약속은 그의 허세였던 것이다. 사촌들의 도움으로 입찰에 참여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그들은 남아있는 채권 전부를 써내고 낙찰을 받았다. 정유사와의 모든 채권은 이것으로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나는 그 친구가 그만한 돈을 회전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급박한 상황에 처한 나를 우롱하진 말았어야 했다. 나는 다시 그 친구를 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거리에서 술에 취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나에게 아들의 안부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 친구는 며칠 후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져 죽었다. 그의 아내와 그, 그리고 나는 초등학교부터 친구들이다. 그의 아들은 내 아들과 생일이 10일 차이가 나는 동갑이다. 나는 그 친구가 지금 살아있었다면 그는 사업적으로 유능한 친구였고 아마도 자신의 과오를 필요한 도움으로 되갚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친구도 가고 없다.


나는 2002년까지 정유사 직영주유소의 소장을 하였다. 남에게서 월급을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마치 사장처럼 일을 하고 150만원이 안 되는 월급을 받았다. 겨우 가족의 생계를 이어나갈 정도의 돈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변함없이 들어오는 월급에 맞추어 산다는 것은 나름 마음편한 생활이었다. 누구에게 아쉬운 도움을 청할 필요도 없었고 아르바이트 직원을 위해 간식이나 간단한 술잔을 기우리는 여유를 베풀 수도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당연히 얻어먹고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친구들의 간단한 경조사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주유소 소장이란 직함은 그런대로 괜찮은 직책이었다. 사람들은 거의 그렇게 살아간다. 나도 3년을 그렇게 살았다.


어머니가 미국으로 가버린 후 나는 이제 돐이 된 아들을 유아원에 맡길 수 있었다. 저녁에는 다음날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우유 열통씩을 만들어 나누어 담는다. 일회용 기저귀도 10개를 미리 준비한다. 저녁 7시에 유아원이 끝나면 친척집을 전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출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정해주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나는 내 주유소를 운영했던 것처럼 내 방식에 맞춰 조직을 하고 내 생각대로 인력을 운영했다. 거래처와 판매관리 역시 내 손을 거쳤다. 나를 거쳐 간 사장이란 사람들은 단지 회계감사만 할 뿐이었다.


의탁할 친척이 없으면 아들을 데리고 주유소에서 아이를 보아야 했다.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보통의 생각과는 너무도 달랐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간난 아이는 두 시간을 멀다하여 우유를 달라하고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것은 엄마가 깊은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런 이유로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고 아내의 사고가 있던 날도 결국은 그러한 이유가 싸움의 발단이었다. 중간에 깨어 보채는 정도가 두 시간 정도이면 순한 아이의 경우다. 아내는 피곤한 목소리로 자는 나를 흔들어 깨우며 아기 우유를 주라고 부탁하였던 기억이 새로웠다. 착한 아내였다. 육아를 도와주지 않는 남편이 괜히 미워지고 자고 있는 남편을 발로 차며 신경질을 부리게 되면 싸움의 발단이 된다. 나의 아내는 조심스럽게 내게 부탁을 했다. 이 모든 과정을 나는 온전히 감당하게 된 것이다. 아내의 우울증이 이런 현실적인 노동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면 아들에게 우유를 먹이며 혼자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육아에 아내가 쏟는 수고와 정성의 정도를 모른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육아의 책임은 아내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육아를 도와준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아주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남자가 아내의 육아를 돕는 가장 큰 도움은 아내에게 시간을 주어 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그렇게 6개월을 지내는 동안 어머니는 미국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오셨다.


지수는 할머니의 사랑 속에서 정서적으로 문제없이 성장하였다. 지수란 이름은 내가 지었다. 물 흐르듯이 살아가라는 의미에서였다. 나의 인생처럼 인생을 역행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나는 아내의 천재성을 지수가 닮아 있다면 그것을 키워야 한다 생각했다. 세 살의 지수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다행히 아빠 엄마를 닮아 재능은 있었지만 천재는 아니었다. 오히려 지수는 운동능력에 탁월함을 보였다. 그러나 단체운동을 어울려 하는 것에는 흥미를 느꼈지만 개인기능을 수반해야 하는 운동에는 흥미를 갖지 못했다. 우리나라 여건에서 단체운동은 실력 이외의 외적인 요인에 의하여 결정될 위험성이 컸기 때문에 나는 모든 지수의 특별활동은 소양을 갖추는 정도의 수준으로 해야겠다고 일찌감치 결정하였다.


지수는 아내처럼 내가 담배 피우는 것을 질색했다. 지수가 말을 배우고 나에게 요구했던 첫마디가 담배피우지 말라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불행히도 지수의 첫마디는 엄마가 아니라 아빠였다. 그것도 아내의 말투와 표정으로 말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지수의 눈망울이 빛나는 것을 경험한다. 지수의 눈이 빛날 때마다 아내가 아들의 몸 속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하였다.


'영혼은 존재한다.' 우리가 모르는 모습으로, 다양한 형태로 분명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나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지수는 아내가 연애시절 나의 뒤를 쫓아다니는 환상에 빠지게 했다. 엄마의 부재는 지수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게 하는 자각이 된다. '엄마. 하늘나라에 있어!' 혼자 독백을 하며 하늘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아들을 보며 저미는 가슴을 접어 아들에게 미소를 보냈다. 나를 바라보는 아들에게서 아들과 아내를 동시에 바라본다. 하루 종일 아빠를 기다리며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 잠을 자지도 않는다. 아빠의 발소리에 자다가도 깨서 아빠를 찾는다. 어머니는 그러한 지수를 참 신기해하셨다.


그렇게 성장했다. 지수의 성장과 함께 그러한 아내의 모습은 사라져갔지만 아들의 눈과 아들의 눈빛은 엄마를 그대로 닮고 있다. 지수가 유치원 때다. 교통사고가 났다. 아들이 아침에 타고 간 승합차가 대형트럭에 측면을 바로 받쳐 완전히 박살이 났다. 늦은 연락을 받고 병원 응급실에 제일 늦게 도착했다. 지수는 마치 남의 일을 보듯 담담하게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았다. 나를 보자 아들은 참았던 울음을 쏟아냈다. 간호사가 신기한 듯 한마디를 한다. 지금까지 울지도 않고 부모가 오지 않은 다친 아이들을 위로하고 있었다고 했다. 지수는 이마와 볼에 깊은 상처가 있었다. 20명 가까운 아이들의 울부짖음과 피로 범벅된 사고당시의 처참한 상황들이 자신의 아픔도 모르게 했던 것이었을까? 아들은 내 품에 안겨서야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이후 아들은 교통사고에 대한 어떠한 정신적 후유증이 없었다. 뒤늦은 의사의 처치가 있었다. 하얀 거즈를 걷어내니 깊이 패인 상처가 보였다. 유리 조각을 제거하고 물로 씻겨 수술바늘로 상처를 꿰매었다.


지수는 나의 손을 잡고 한 마디를 하며 울었다. "아빠! 아프게 하는 게 정말 싫어!" 아들은 삼자 화법을 쓰고 있었다. 아내의 생각방식과 화법을 지수가 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가 이 아이들을 살린 것이었다.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피아노 학원과 공부방을 며칠 동안 가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였다. 매를 든 나에게 몇 시간을 기겁을 하고 울고불고 매를 거부하였다. 아들의 항변은 참 기가 막힌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려 해도 놀고 싶은 마음을 자기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내의 사고 순간을 떠올리게 하였다. 아내를 때린 나를 두려움으로 쳐다보던 아내의 눈빛이었다.


(충년(充年)의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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