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살다①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by 와와우

절망이 지나간 공허 속에 새롭게

피어난 것들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

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去 然)


그리움으로 살다①


나는 한라산 중턱을 혼자 올라 발아래를 바라보기 좋아한다. 아내와 함께했던 그 많은 공간들은 이제 너무도 많이 변해버렸다. 그렇게 혼자 사색을 하는 것도 습관이 되었다. 나는 그 당시 아내에게 보냈던 편지에 붙여 다시 편지를 쓴다.


잊혀진 듯, 아련한 시간의 흐름 속에 묻혀버린 줄만 알았던,

가슴 밑바닥에 가득히 흐르는 조그만 흔들림이

조용히 미소 짙는 반가움을 흔들어 깨우며,

오늘 나는 나를 향하게 되는 그대의 맑은 미소와

그대의 흔들리는 마음이

가슴 벅찬 기쁨으로 그대를 향하게 되는 작은 소망을 쓰고 싶다.

그러나, 나는 이 어려운 여정에 뜨거워지는

나의 가슴을 부여잡고

손끝에 흘러 나타나는 구체적인 형상들이

하루,이틀….시간을 타고 흐르게 되겠지만,

언제쯤이면 정돈된 모습으로 그대에게 전해지게 될 지는

나 자신 조차 지금은 알 수가 없다.

아니 어쩌면 한 순간의 지나간

용기 없는 추억쯤으로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이 여정이 끝날 때쯤,

나는 당신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을 채우고 말 것은 분명하다.

이것은 참으로 나를 두렵게 하는 일이다.

치열하게 키워진 사랑이란 진실이란 것이

자기애라는 작위에 의해 버려지는 그 공허한 진실의 메아리가

얼마나 나를 아프게 하는 지를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언제나 나를 붙잡고자 하였던 상실감이란 고뇌의 흔적을

"인생은 그렇게 흐르는 거야, 흐르는 물처럼" 하고

애써서 참으로 애를 써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던 나에게

휘몰아 치는 격정의 회오리에 운명이란 야속함이

나를 또다시 휘감기게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순간 나는 하나의 바람만을 생각하며

이 여정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것은 적지 않은 시간을 통한 지나간 모든 어려움과

쉽지 않았던 고뇌의 과정들이

이제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함이고

당신은 나의 사랑으로 나와 함께한다는 것으로

나의 인생이 결론지어지는 것이다.

이제, 나의 치열했던 고뇌의 흔적들과

무척이나 진지했던 그 격정들 속에서

조그만 가슴하나로 우주를 품으려 했던 작은 소망으로

오늘 나란 존재를 땅에 딛게 하고

지금도 항상 꿈을 꾸게 하는 나의 인생에

당신을 초대하고자 한다.

뜨거운 햇살을 머금고 새파란 하늘을 무대 삼아

산허리를 감싸며 화려하게 피어나는

여름날의 뭉게구름이 넘나들던,

한라산 들녘이

지금은 이른 가을 바람에

그 키를 더한 흐드러짐으로 넘실대고 있다.

그 들녘의 어두움 속에서

저 멀리 아래서 올라오는

황금 빛 도시의 아름다운 불빛에 취하고,

어두운 바다를 떠다니는 황금 빛 별들이 흩어지는

눈 아래 수평선 위로부터 머리 위를 휘돌아

한라산 산등성이에 이르는

총총이 빛나는 수많은 밤하늘의 별빛을 헤아리며

당신과 나는 살아있음을 잊고 한순간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알 수 없는 환상과 황홀함으로

그 순간 우리는 오히려 살아있음을 만끽하였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인생이란

가슴 밑바닥을 가득 채우며 흐르는 잔잔한 흔들림의 감동을,

아이러니 하게도 치열한 현실의 격정들의 크기 만큼

그것들을 잊게 하는

순간의 즐거움이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충만한 감동은

인간으로 하여금 우리들의 영혼을 정화시켜

감동이란 유희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소중한 것이다.

분노와 울분으로 얼룩지는 말초적인 격정들을

감동의 유희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가슴 밑바닥을 가득 채워

잔잔히 흐르는 감동의 유희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

당신과 나는 그러한 순간을 함께하고 있었다면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그대의 생각 또한 동의한다면

다분히 계획된 나의 오래된 이벤트는 성공을 한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 자리에 다시 섰다.

화사한 봄날,

산길을 달리던 중

나는 문득 길가에 보이는 넓은 초원을 달리고 싶었다.

우거진 잡초들 사이를 지나 내 앞에 펼쳐진 초원의 광경은

지나간 아름다운 추억의 기억은

홀로 벅차 오르는 환희를 진정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도 살아 있는 육체는

아름다움으로 기억하는 추억을 다시 기억한다.

그리고는 이내, 밀려드는 외로움과 서러움에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나는 그 자리를 함께하고 싶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꽤 오래된 습관이 되어버렸지만

이제는 혼자일 때면 문득 아무런 이유 없이 참으로 이유도 없이

내 마음 한 가운데를 치솟는 묵직한 그 무엇이

이내 눈물이 되어 볼을 타고 내리는 것을 느끼곤 한다.

나는 그것조차 유희로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누구든지 경험할 수도 없는

나에게 특별히 주어진 선물 같은 것으로….

그 순간 나는 마음의 정화를 경험했다.

이후 내 주변에 있는 몇몇 사람들은

내가 발견한 이 자리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러한 감흥을 나와 함께할 수는 없었다.

인생은 극히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순리에 순응하고자 하면 할수록

그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란 것이

사실 속에서는 감각적이고 다분히 말초적인

현실이란 것과는 멀리 동떨어진 환상이 되 버리는 것이

사실일지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당신을 그리워하면 그리워할수록

나는 이방인이 되어버린다.


형상이 사라졌다는 것이 나를 서럽게 한다.

어린 나의 머리를 쓰다듬던 젊은 어른들의 기억이

지금도 가슴속에 아련하지만

하나씩 사라지며 쓰러지시는 그 분들의 모습이

18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운명과 같이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인생의 정점을 지나고

사라지는 현실을 향하여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가슴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서러움에 젖어든다.

아버지의 생전의 모습에 대한 그리움을

젊은 나의 모습에서 찾고자 하셨던

그리고, 지금도 나를 반겨주시는

그 분들의 사라짐을 접할 때마다

아버지를 향한 상실의 흔적마저 사라지는 현실을

망연히 바라보아야만 했다.

죽은 아내의 허상은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려

때론, 지금의 어렵게 처한 현실마저 비틀거리게 하고

가슴을 저미지만

아내가 절실했던 순간에 나의 연인이 사라져버린 나에게

오히려 아내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을 알게 하였다.

이제 나는 이러한 고통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감정의 유희로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그래도, 그녀가 남기고 간 아들의 티없는 웃음 속에서

또 하나의 서러움을 바라보는 나의 자아는

인간이기에 받아들여야 하는 무거운 짐인가 보다.

발가벗은 아내의 육체와 뒤엉키어

나의 아내의 부드러운 속살을 가슴으로 느끼고

아름다웠던 아내의 육체를 더듬어가는 손 끝에

그녀의 환희와 사랑을 매만지고 싶다.

처음, 쑥스러웠던 몸짓이 격렬하여 지고,

이제는 익숙해진 그녀의 환희가 요동치는 몸짓을 느끼며

그녀의 쑥스러워 하는 기쁨의 요구를

다시 한 번 받아 보고 싶다.

욕망의 끝인 허탈감을 어루만지며

온 몸으로 내 품에 파고드는 그녀를 감싸 안고

욕망보다 더 컸던 사랑의 선물을 다시 한 번 받고 싶다.

그리움은 서러움으로 가슴을 파고든다.

그리운 이의 형상이 현실로부터 사라져 버렸다는 것,

다시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것......

이제 그리운 시절에 띄우는 한 통의 편지를 쓰며

나는 다시 현실이라는 나의 땅을 다시 내딛는다.

공허한 사색으로부터의 되돌림이 죽기보다 싫은

이 현실의 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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