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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3) 달리기

by 햇살처럼

나는 달리기를 잘했다, 둘째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운동회 날이면 학부모 달리기에 손들고 달렸다. 나보다 아주 쪼금 나이를 더 먹은 언니들이 참 빠르다고 말해 주었다. 두 딸도 달리기를 잘 해, 계주에 나갔다. 큰 아이는 역전을 잘 해, 보는 사람들을 신나게 해 주었다.


내 달리기는 외삼촌의 막걸리 심부름에서 시작되었다. 막걸리를 파는 가게는 나무 대문을 나와 비탈길을 내려가면 태극기와 새마을기가 펄럭이는 넓은 곳이 나오고, 논과 밭 사이를 지나 신작로로 들어서서 조금 가면 있었다. 나는 그 길을 걷지 않고 막 달려 다녔다. 외삼촌에게 빨리 막거리를 가져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빨리 다녀오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혼자 다녀오기에는 심심하니까 막 달리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자꾸 달리니까 빨라진 거 같다. 이모는 학교 운동장에서 100미터 달리기를 누가 참 빠르게 달려 누군가했더니 나여서 놀랐다고 했다. 엉덩이를 쑥 빼고 달리는 것이 내가 아닌 줄 알았다고. 아무튼 나는 100미터 달리기도 장거리 달리기도 잘 했다. 달리는 게 좋기도 했다.


가끔 후회를 한다. 왜 마라톤 선수에 도전하지를 않았는지. 또 나에게 마라톤 선수를 해 보라고 추천을 해 준 어른이 없었는지 따져보고 싶기도 하다. 내 생각에 달리기 선수를 했으면 참 잘 했을 것 같다.


나는 그냥 내가 잘 달리는 줄 알았다. 아이들도 그냥 내 유전자를 닮아서 잘 달리는 줄 알았다. 키가 작으면 키가 큰 아이들보다 잘 달린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길면 대부분 느리다는 것을. 두 딸은 키가 큰 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잘 달린다.


한동안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 5천보, 만보, 어떤 때는 2만보까지 걷기는 하는데 달리지는 않는다. 안 달리다 보니, 빨리 뛰어야 할 때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찬다. 그래서 못 달린다.


내가 빠르게 달리지 못한다는 것을 둘째 중학교 운동회 날 알았다. 그날 아무 생각 없이 청바지를 입은 것이 잘못이기는 했다. 몸에 딱 붙은 청바지는 보폭을 넓게 잡아주지 않았다. 내가 살이 좀 쪘다는 걸 생각하지 못한 탓도 있다. 나는 열심히 달렸는데, 마이크를 잡은 체육 선생님이 그랬다. 아이들 뛰다가 엄마들이 뛰니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그 말이 귀에 꽂히고, 나도 느리다고?


내가 빠르다 생각한 건 혼자만의 착각일 수 있었다. 나이를 먹었는데. 이제는 신호등 앞에서도 뛰지 않는다. 신호가 남아도 다음에 건너자고 하는 남편이 참 답답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뛰면 힘드니까.


내 달리기도 안 달린 지 오래되어 녹이 슬었나보다.


지인이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여 완주를 했다. 같이 달리자고 했지만 거절했다. 거절하면서 참 아쉬었다. 달리지 못하는 이 현실을 인정해야 했으니까.


나는 달리고 싶은 게 많다. 다리로도 달리고 싶고, 글로도 달리고 싶고, 마음으로도 달리고 싶고. 정말 아주 빠르게 달리고 싶다. 씽 하니 달려서 기분 좋게 엄지 척을 하고 싶다.


#백일백장 #백일프로젝트 #책과강연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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