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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7) 포도와 복숭아

by 햇살처럼

고1 아이는 과일을 좋아합니다. 밥보다 과일을 더.

샤인머스켓, 귤, 딸기, 블루베리, 체리, 망고, 사과. 석류. 마트에 가서 아이가 카트에 담은 과일입니다. 이게 일주일 먹을 양이냐고요? 한 3일이면 끝납니다. 저렇게 사서 오막한 그릇에 종류별로 담아 휴대폰을 하면서 먹습니다. 요거트와 아이스크림도 곁들이니까 밥보다 맛있지요.

아이 아빠는요? 아빠랑 마트에 가면 과일을 저렇게 담을 수 없으니, 같이 안 갑니다. 아빠는 딱 2가지면 끝나니까요. 과일을 밥처럼 먹으니 살은 안 찝니다.


나는 여러 과일 중 포도를 좋아합니다. 요즘 나오는 샤인머스켓 말고 검은 색 포도를요. 검은 포도가 나오는 포도철이면 한 박스를 냉장고에 넣어 놓고 저녁 잠자기 전에 꼭 한 송이씩 먹습니다. 피곤이 풀어진다는 친정엄마의 말 때문이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이모와 이모 남자친구가 저를 포토밭으로 데려갔습니다. 데이트를 하는 사이에 제가 낀 거죠. 제가 이모를 따라가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데려 갔던 것 같습니다. 그날 포도를 실컷 먹었습니다. 이모 남자 친구가 놀랄 정도로요.


제가 포도를 좋아했다면, 여동생은 복숭아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두 가지 과일을 사야 했습니다. 그 당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을텐데, 엄마는 우리가 먹으려는 것을 사주었습니다. 꼭 두 가지씩.


엄마는 여동생이 쪼꼬맸을 때 데리고 버스를 타야 하면 먹을 것을 잔뜩 가지고 탔습니다. 여동생이 버스 안에서 누군가가 맛있는 것을 먹고 있으면 '인내! 인내!'라고 먹을 것을 달라고 소리를 질렀기 때문입니다. 멀리서도 누가 먹고 있으면 용캐 알았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여동생의 입을 막기 위해 이것저것 여동생이 좋아하는 것을 한 보따리 가지고 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돈도 더 썼다 했습니다.


고1 아이는 주말에만 집에 옵니다. 그래서 과일을 저리 사도 뭐라 안 합니다. 실컷 먹으라고요. 날마다 집에 있는 아이면 못 사주죠.


과일이 잔뜩 담긴 카트를 계산하고 나오면서 엄마 생각을 합니다. 엄마는 어떻게 날마다 두 가지 과일을 사서 우리에게 저녁 후식으로 줬을까? 하고 말이지요. 엄마 혼자 두 딸을 키웠는데, 엄마는 형편도 어려웠을텐데 과일을 두 봉지씩 매일 샀을까? 하고 말이에요. 날마다 엄마 과일을 두 종류씩 못 챙깁니다. 어쩌다가는 가능하지만요.


여동생은 복숭아만 먹었습니다. 포도는 먹지 않았습니다. 나는 포도도 복숭아도 다 좋아했지만 엄마가 복숭아만 사고 포도를 사지 않을까봐 엄마가 볼 때는 복숭아를 안 먹는 척 했습니다. 그 아이가 그렇게 짧게 갈 줄 알았으면 많이 많이 양보를 했을텐데요. 언니가 되어 이기적이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어떨지 모르지만 복숭아철에 복숭아를 보면 여동생 생각이 납니다. 맛도 있고 아이 생각도 나니까 더 맛있게 먹습니다.


포도는 나, 복숭아는 여동생 그런 것이지요.


올 해는 검은 포도를 많이 먹지 못했습니다. 샤인머스켓이 마트에서 오래 봤다면 검은 포도는 금방 나왔다가 사라졌거든요. 포도를 하루 한 송씩이 실컷 먹지를 못했습니다. 내년에는 포도와 복숭아를 박스 채 사다가 오목한 그릇에 넣고 과일 밥을 먹어야겠습니다.


포도와 복숭아가 마트 매대를 잔뜩 차지할 내년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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