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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8) 내년 묵은지를 기대하며

by 햇살처럼

배추 보고, 양념 보고. 아! 이번에도 모자라겠구나. 또 남은 건 찢어서 겉절이로 가겠구나. 엄마는 양념이 모자라다는 내 말에 걱정이 없다. 양념이야 있는 재료로 다시 만들면 되니, 내 걱정과 엄마 걱정은 다르다.

오늘은 일찍 끝났다, 내가 후다닥 거들어서. 밤 10시가 되어 김치통에 김치를 넣었으니 빨리 끝난 건 아니지만 작년 보다는 빨랐다.


엄마와 김장을 담그면 이상하게 밤 12시가 되어 끝났다. 식구들 밥은 알아서 햄버거나 피자나 시켜 먹으면서 나도 한쪽 얻어먹고 마는데.


엄마는 김장 담그는 계획이 없다. 그저 엄마 손 가는대로. 쪽파를 막 썰다가 액젖이 없다고 액젓 사러 가고, 생새우 사러 가고. 어제도 배추를 사다가 다듬더니 부랴부랴 한 망을 더 사러 가자고 했다, 손질하고 보니 배추 속이 꽉 차지 않아 양이 모자라다고. 그냥 있는 거만 하자는 내 말은 듣지 않는다.


오늘도 생새우를 내가 가서 사와도 되었다. 그런데 같이 간다. 만들어 놓은 양념 속은 잘 덮어두고.

내가 김장김치를 모른 척 하고 싶어도, 묵은지의 맛 때문에 거들지 않을 수가 없다. 어디서 맛볼 수 없는 맛이라서.


엄마와 이모가 하는 김치는 맛있다. 남편이 남자 친구 였을 때, 여동생과 사는 자취방에 김치 한 통을 가져다 주었더니 맛있다 했다. 그래서 엄마가 김치가 입에 맞으면 우리 집 식구 될려나 보다고 그랬다. 아무튼 우리집 김치가 맛이 없어서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 김치가 이모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암 수술을 하고 나서는 맛이 달라졌다. 그래도 사 먹는 김치 보다는 나았다. 사 먹는 김치는 통이 아니라 한 봉지씩이어서 그럴 수 도 있다. 맛이 없다고 투덜거리며 넣어놓은 김치가 잘 익어 묵은지가 되어 김치찜, 김치찌개, 등갈비 찜, 고등어 조림까지 해 놓으면 잘 먹는다. 그래서 이번 김장도 이틀을 스케줄을 비워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솔직히 엄마는 혼자고 우리 집 식구는 넷이라, 내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게 맞긴하다. 엄마가 하는 김장, 6개 망, 18포기, 얼마 안 되는 양인데도 엄마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마친다. 하루종일 천천히 해서 그러는지, 양념도 하나씩 보태면서 맛을 보고 더 넣고.


아무튼 내년에 먹을 묵은지를 생각하면 배추에 양념 넣느라 고생한 나를 토닥거린다.


#백일백장 #백일프로젝트 #책과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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