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73) 가정주부의 배꼽시계

by 햇살처럼

저녁을 달라고 깨우는 남편 목소리가 멀리 들렸다. 남편 목소리는 자장가처럼 아늑히 들리고, 나는 하얀 이불을 뒤집어썼다. 늦은 점심을 먹고 따뜻한 전기장판 속으로 들어가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전화가 와도 받지 않았다. 그 전화를 받으며 일어났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졸려서 이불을 더 끌어당겼다.


같이 자던 아이가 물을 찼을 때야 내가 정신을 차렸다. 아이가 직접 마신다고 일어나서,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또 잠이 들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밤 10시가 넘었다. 아이는 배고프지 않았고, 남편도 피자를 먹어서 괜찮다고 하는데,

외출한 아이는 저녁을 먹고 온다고 치킨 사진을 올려주여, 아무도 밥을 먹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저녁으로 먹으려던 감자탕 냄비를 불에 올리고, 안 먹겠다는 아이와 미니 컵 짜파게티와 고기 구워서 짜파구리를 먹자고 합의 아닌 합의를 한 터라 물을 끓였다.


감자탕 한 접시, 미니 컵 짜파게티 두 개, 고기 몇 점, 김치, 밥. 잠깐 사이에 진수성찬 아닌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호박고구마도.


안 먹겠다던 사람들이, 저녁 먹고 온 큰 아이 빼고, 우리 셋은 늦은 저녁으로 접시와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가정주부 노릇 뿌듯.


그래, 먹기 싫다고 해도, 배부르다고 해도, 가정주부인 내가 배고프면 밥을 차리는 거고, 아니면 먹든 말든 내버려 두는 거다.


내 배꼽시계에 맞추어 같이 먹어준 가족들이 있어 감사한 하루다.


#백일백장 #백일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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