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댄서에게 카이로란.
오리엔탈댄스, 즉 벨리댄스의 종주국은 이집트이다. 그중, 이집트의 수도이자 중심 카이로는 아랍 중동문화예술의 허브인 곳이다.
아랍어권을 사용하는 나라들을 위한 채널인 MBC <만나면 좋은 친구 말고 / middle east broadcasting corporation(Masr)/ 표기한 마스르는 이집트라는 뜻의 아랍어이다./ 이는 사람 사는 곳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의 이집트 지국에서 아랍어를 사용하는 각국으로 송출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넷플릭스에서도 방영되는 아랍어로 제작된 드라마, 코미디 프로그램 역시 카이로에서 제작되는 것들이 굉장히 많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리엔탈댄스뿐만 아니라 타 아랍 중동문화 <Middle east north africa: Mena> 메나 지역의 예술가가 스타덤에 오르는 등용문 같은 곳이 카이로 인 것이다.
댄서들이 카이로에서 주로 활동하는 무대는 나일강의 관광객을 위한 유람선이 가장 이른 시간대의 공연이며, 이후 시간으로는 호텔 레스토랑공연, 여전한 프랑스의 영향이 남아 카바레라고 부르는 나이트클럽(하지만 한국 같은 부킹 그런 건 없다), 그리고 결혼식, 20대들이 주로 찾는 한국과 흡사한 클럽 라운지 바 등이 있다.
이런 장소들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댄서들은 대부분 가수의 뮤직비디오 출연의 형태로 티브이에 먼저 데뷔하게 된다. 아주 유명한 가수부터, 저예산으로 작업해야 하는 가수들까지 형태는 다양하다.
나아가 티브이출연을 하게 되기도 하고 영화를 찍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게 댄서는, 쉽게 말해 연예인의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오리엔탈댄서가 연예인의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모르지, 문은 열려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댄서들이 한해에만 수백 명의 외국인이 카이로의 무대에 문을 두드린다. 대부분 큰 소득은 얻지 못한 채 돌아가거나, 취업비자도 받아주지 못하는 소규모의 프리랜서 일거리를 오가기 마련이다. (이집트의 취업비자는 꽤 복잡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 댄서는 취업비자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유니온에 등록해서 허가증까지 발급받아야 합법적으로 근무할 수 있다.)
지난 몇 달 사이에 나 외의 한국댄서 한 두 분이 카이로에서 일을 시작했고 그들도 마찬가지로 관광유람선, 카바레, 호텔 등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모든 분들의 꿈과 노력이 원하는 곳에 닿아 빛나기를 기원한다.
내가 일을 시작했던 10년 전 만해도 동양인이 무대에 오른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이라도 쉽다는 건 절대 아니다. 여전히 힘들 거고 어려울 거라는 건 내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카이로에서 일을 시작할 때, 정말 많은 보트 주인들을 만났고 채용여부보다 그들의 호기심이 더 크다는 것을 감지한 적도 많았다. 나는 당신들의 춤을 추는 독특하게 생긴 사람이니까.
그래도 카이로에 오기 전, 샤름에서 몇 개월 안 되는 시간 동안 쌓아둔 인연들을 통해 에이전트도 소개받으며 오디션은 볼 수 있었다. 불러 놓고 동양인이라고 내 눈앞에서 아랍어로 운영진들끼리 다투는 모습도 보았고(물론 내가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설령 못 알아듣는다고 해도 사람은 느낌으로 다 안다. 우리 못되게 살지 말자.)
오디션장 앞에서 문전박대당한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계속 도전했고 내 카이로는 나를 영 배신하지만은 않았다.
카이로에서 살기 시작하며 처음 살게 된 곳은 외국인들이 모여사는 셰어하우스였다.
피라미드가 보이는, 입구와 1분 컷의 거리. Nazlet El-Samman / نزلة السمان : 기자 피라미드 출입구 쪽, 사운드 앤 라이트 쇼를, 또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한 피라미드 뷰 KFC가 있는 지역이다.
현재는 많이 개발되어 나아졌지만 내가 살던 당시만 해도, 마트나 편의점에 전기공급이 어려워 얼음이나 차가운 음료가 없는 건 허다했고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았다.
옆집엔 낙타들이 살고 우리 집 1층에도 실제로 마구간이 있었다. 낙타나 말로 관광사업을 해서 돈을 버는 게 이 동네 청년들의 대부분의 생계였고 여전히 그렇다. 그럼에도 좋은 점은, 고층의 건물이 없어 피라미드 말곤 내가 가장 높은 위치에 살고, 눈만 뜨면 펼쳐지는 고대의 비밀 같은 유적을 매 순간 만난다는 것이다.
그곳에서도 벼룩에 엄청나게 시달렸는데, (당시엔 그게 벼룩인지도 몰랐다. 눈에 보이질 않으니까) 그 외의 카이로 중심부까지 걸리는 소요시간, 사람들의 시선 기타 이유로 다운타운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 자말렉이나 마아디, 지금은 뉴카이로, 셰이크자이드 까지 여성들이 한국만큼 편안한 옷을 입어도 되는 곳이 많지만 당시엔 그렇지 않았고 로컬 중에도 수익대가 낮은, 아주 서민들이 사는 곳은 아무리 가려 입어도 시선까지 차단하긴 어려웠다.
다운타운에 이사하고는 피라미드 쪽에서 셰어하우스에 함께 살던 친구가 다리가 되어 다른 셰어하우스에 들어갔는데, 한 달도 되지 않아 미국인 호스트가 보증금을 빼고 본인 짐까지 하룻밤새에 챙겨서 이사를 나갔다.
그야말로, 길에 나앉았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짐이 아주 많을 때는 아니어서 해결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곳인 26 줄라이 거리에 (이 거리는 자말렉 섬부터 다운타운 카이로까지 이어진다.) 친구이자 선생님인 아티스트의 빈집을 렌트하게 된다.
이 공간은 댄스스튜디오와 이어져있고 위층은 관광객이 오는 호스텔이 있어서 접근성과 안정성 모두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방기기 없음, 에어컨 없음, 댄스스튜디오와 이어져있어서 연습하고 배우기는 좋고, 정말 카이로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음악가들도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다만 정말 혼자 있고 싶을 때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내 스튜디오의 전신이 된다. 이곳의 현재 이름은 바뀌었지만 당시엔, 오리엔탈아트스튜디오/ 지금 내 사업체의 이름이다.)
이후에 조금 더 고정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혼자 집을 얻기 위해 부동산 투어를 다니기 시작했다.
혼자 얻은 집은 마아디 디글라라고 하는 한인들이 꽤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었고 한식당도 당시엔 한인마트도 있는 나에겐 아주 최적화된 공간이었다.
집 앞엔 마트가 2개나 있고 바로 맞은편에 한인마트, 치킨집, 없는 게 없었다.
피라미드 앞에서, 다운타운 카이로에서 살다 온 나에게는 정말이지 천국 같은 곳이었다..! 걸어가서 두부를 살 수 있다니!! (여기가 그 넓은 이집트 땅에서 유일하게 두부를 살 수 있는 곳이다.)
마디에 살다 보니 외국인 친구들과 소통하기가 더 원활해졌고 내 일상도 친구가 하나 둘 생겼다.
하지만 춤을 추는 일에는 점점 더 자신이 없어졌다.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는 오로지 소비자가 원하는, 순간적인 소비를 촉진하는 단순하고 자극적인 이미지를 원했다. 그리고 나는 아무렴 그 틀에 부합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시선에서도 나보다 실력이나 경험이 부족한 댄서들도,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보다 나은 조건과 기회를 얻는 모습들을 마주하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내 화장법, 머리스타일만 봐도 그 추구미는 온전히 외부적인 것들에 의했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집트에서 5년의 시간을 버텨냈고, 그럼에도 나는 카이로를 잠시 놓아주어야겠다고 판단한 것은 다름 아닌, 나의 20대가, 친구들과 저녁 한번 제대로 먹어보지 못하는 그런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꽤 암울했다. 밤엔 일을 해야 하고, 낮엔 잠을 자고 무언가 배우고 싶어도 배울 길이 마땅치 않았다.
모든 일상의 평균적인 조건들이 내가 원하는 바에 미치지 못했다.
나에게 카이로란, 마찬가지로 내가 갈망하고 바라던 스타들의 모습과 같이 나를 비추어내는 곳이었다. 물론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지 못했지만, (하지만 언젠가 여전히 이뤄질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 안 통하던 때라, 늘 얼음과 에스프레소 그리고 물 한 병을 주문해야 했지만 이젠 마디뿐만 아니라 어딜 가도 아이스아메리카노가 통하는 곳이 되었다.
고생을 꽤나 했지만 비로소 나는 조금 더 성장했고 그때의 고생값을 지금 조금씩 돌려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