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콜라나무 Dec 12. 2021

나를 담는 집 도시락

2021. 6.08.~6.17

급하게 도시락을 싸야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도시락을 끊었기에 몇십 년 만에 먹는 도시락이었다. 원격수업으로 전환하면 급식을 못 먹는다. 학생이 학교에 오지 않아 급식을 안 먹으니 우리는 개인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 어떻게 싸야 하는지 귀찮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그랬다.

집도시락 1일차

1일 차 도시락은 깻잎에 주먹밥을 감싸고 과일로 채웠다. 남편 한알 주고 시식 평가를 기다리니 괜찮다고 해서 준비했으나 막상 현장에서 먹으니 싱겁고 뻑뻑했다. 결국 억지로 먹다가 신물이 넘어왔다. 간을 좀 세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집도시락 2일차

깻잎 주먹밥을 실패하자 간단하면서도 침샘 폭발할 메뉴를 찾다 가공식품의 도움을 받았다. 유부초밥. 만들기도 쉽고 맛도 있으니 대성공이었다. 좋아하는 치즈와 과일들로 묶어서 이날은 맛있게 먹었다.

집도시락 3일차

3일 차는 빵순이답게 토스트를 준비했다. 감자를 삶아 으깨고, 양파와 오이를 다져 소금 간으로 물기를 빼 혼합한다. 재료들이 잘 붙도록 마요네즈 한 숟가락을 넣어 섞으면 완성. 한쪽 옆에 삶은 계란을 반으로 잘라 넣었다. 단백질 보충이 필요하기에. 치즈로 덮어 보이지 않는다.

집도시락 4일차

4일 차부터 욕심이 났다. 이왕이면 이쁘게 싸고 싶었다. 나를 위해  열자마자 웃음이 나오는 도시락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임용고시 시절에도 한 달에 한번 보상을 줬었다. 준보석 반지를 사서 스스로에게 배송을 시킨다거나 여행을 떠났다. 흑돌로 된 하트 모양인데, 임용 반지만 보면 추억에 빠진다. 공부도 감이 떨어지면 계속 놀고 싶어 져 딱 하루만 다녀와야 했다.

집도시락 5일차

마지막 도시락은 남은 유부초를 털어내야 해서 3일 차 메뉴와 같다. 일주일간 도시락을 싸면서 드는 생각이,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빵을 좋아하고, 치즈와 김밥을 잘 먹으며 유부초밥의 새콤달콤한 맛을 즐긴다. 채소는 당근과 방울토마토를 좋아했구나! 과일은 무조건 달면 최고였고, 구운 계란도 자주 먹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뭘 좋아하고 잘 먹는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도시락을 싸면서 알았다.

콜라나무 데이  기념 집김밥

우리는 나보다는 자녀를, 남편을, 아내를, 부모를 먼저 생각하곤 한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안 사는 대신 자녀 옷을 사기도 하고, 남편 옷을 산다. 내가 지금 먹고 싶은 음식인데, 부모님 댁으로 주문한다. 친정 엄마는 조기 구이를 좋아하시면서 한 번도 한 마리를 통째 드신 적이 없었다. 머리 부분이 맛있다면서 살이 없는 곳만 고집하셨다.  이렇듯 자신에게 소홀한 생활을 이어간다. 앞으로 나는 과거에 그랬듯이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려한다. 나만의 도시락을 만들며 스스로 사랑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온라인 인재를 아시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