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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나무 Feb 19. 2022

2022.02.16.(목)

병상일기: 입원실과 감옥의 닮은 점

일주일  전부터 소화가  안 돼, 소식을 했다. 소화제를 먹으면 좋아질 것을 기대하며 여러 병을 마셨지만  어제는 저녁식사 후 모두 토해냈다.


이리저리 뒤척일 때 어지럽고 몸을 일으킬 때 중심을 잃어 휘정거렸다. 속은 여전히 울렁거리고 몸에서 지진이 일어난 듯했다.

어지럽다 보니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적다. 걷다가 바로 주저앉거나 누워야 했다. 중심을 잡을 수 없으니 물 한잔 떠먹으러 정수기 앞에 가는 것도 어렵다.


남편이 옆에 있어 다행이었지만, 내 상태를 경험하지 않아 이해 못 했다. 병원에 가려고 같이 나섰지만 엘리베이터 벨을 먼저 누르지 않고 앉아만 있다고 타박이었다.  갑자기 병원에 가자고 해서 샤워도 못한 채 외출을 하게 한다고 큰소리다.


운전을 직접 못하니 남편의 도움이 절실하여 서운한 마음을 참았다. 입원을 하려면 보호자가 필요한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 때문이라도 감정을 꾸욱 눌러야 했다.


그래서 독신 가족은 입원이 어렵다. 타지에서 혼자 지내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부모에게 알리자니 걱정하실 것이 뻔하고, 지병이 있는 경우는 아픈 자식에게 달려가지 못해 더욱 가슴 아파하실 거라는 걸 알기에 비밀로 하게 된다.


또 형제자매는 각자 가정을 꾸리고 살고 바쁜 생활을 하는 것을 알기에 선뜻 와달라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동료나 지인이 보호자로서 반드시 와야 입원이 가능하다.


결혼에서 장점 중 하나가 입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PCR 검사 음성을 받아 입원실로 올라갔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속마음으로는 올라가기 싫었다.

코로나 때문에 1층에서 남편과 헤어지고 자리배치받고 간호사는 설명을 하고 휑하니 떠나갔다. 모두 갔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보니 눈에서 물이 주르륵 흐른다. 혼자 남았다는 사실과, 이제부터 아픈 나를 내가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슬펐다. 혼자서 물 한잔도 뜰 수  없는 처지에 어떻게 나를 보호할까?  서러움과 무력감이 한순간에 밀려온 것이다.


환자복을 갈아입으면서 울기만 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감옥에 갇혀 죄수복을 입고 울음을 터트린 장면이 동시에 떠올랐다.  

죄수와 나는 환복을 하니 비로소 실감이 난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 의복은 개성과 자율성을 드러내지만, 환자복이나 죄수복은 강제성과 타율성, 순종과 복종을 하도록 만든다.


날이 밝아 다음날 구토를 멈췄다. 어지러움의 강도도 약해진 것을 느낀다. 점점 회복되는 듯하니   어제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환자복에 적응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의료인들을 존경한다. 어질어질한 것을 잠시 뒤로하고 이렇게 글도 쓰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 힘드니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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