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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나무 Feb 20. 2022

병상일기 2:  저 세상과 이 세상

2022. 2.19(토)

꾸역꾸역 적응하면서 살고 있다. 직업을 갖고 있으니 몸 아픈 것도 민폐다. 병가 내야 하고, 대체 인력 뽑아야 하고, 인수인계해야 하고 기타 등등.


무엇보다 나 때문에 뒤치다꺼리하는 동료들에게 무한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낀다. 걱정해주면서 연락해오는 지인들도 감사하다. 또 늘 함께 있어 몰랐던 남편의 감사함은 더 크게 다가왔다.

각 종 간식을 꿀벌들이 벌통으로 나르듯 나에게 놓고 간다.

남편은 먹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로비에서 만나 하나씩  건네준 간식이 쌓이는 중이다.

내가 지내는 이 세상은 똑같은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픈 곳은 다양하나 무표정한 얼굴.  멀뚱멀뚱한 눈의 방향. 인사 없이 수액 막대를 지팡이 삼아 마치 좀비?처럼 걸어 다닌다.


나도 이들과 행동이 같다. 바로 앞 92세 노인과 눈인사를 나눈지는 4일이 넘어가면서부터다. 따님 분이 직장에 다니면서도 번갈아 가며 노인 옆에 붙어 수발을 들고 쪽잠을 잔다.

간호사가 노인의 머리를 깜찍하게 묶어주었고 그모습을 흐뭇하게 보는 딸

놀라웠다. 나는 친정어머니 입원할 땐 간병인을 붙였었기 때문이다.


커다란 눈매를 가진 노인은 따님 덕분에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더니, 물도 토하셨는데 한 숟가락씩 죽을 먹기 시작했다. 사랑의 힘이다.



아프지말자 캠페인 기념촬영


운동도 할 겸 한 바퀴 돌다가 환자 된 기념촬영을 하고 휴게실에 도착하니 두 모녀가 북경 아시아 동계올림픽을 시청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노인분은 침대에서  벗어나 아주 오랜만에 짧은 외출이셔서 그런지 콧노래도 하셨다.  너무나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차들도 제각기 자신들의 길을 오고 가는 모양이 평화롭다.


내가 서 있는 이 세상과 눈 내리는 저세상이 유리창 하나로 까마득 멀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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