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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나무 Nov 21. 2022

욕쟁이

2022.11.21.(월)

표정 없이 지낸 날이 벌써 두 달째다.

사건이 터진 건 담임을 맡은 지 보름쯤 지나서였다.


우리 반 아이가 느닷없이 선생님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찾아왔다. 어안이 벙벙해서 다친데 없는지 살피면서 좀 더 알아보려고 서둘러 종례를 마쳤다. 


폭행당했다고 주장하는  아이는 선도위원회를  열만큼 말썽쟁이여서 잘 때가 가장 예뻐 보이는 학생이다.


해당 선생님을 찾아 물어보려던  중에  이미 우리 반 아이와 상담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잘 타이르고 지도하신 후 보내려 하시는구나 생각했다.


퇴근 중  해당 학생의  보호자에게  전화가 왔다. 운전 중이었지만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느낌이 이상했기에.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폭행한 교사 핸드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격분.


이후 날들은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이 건강에 좋을 것이다. 나는 너덜너덜해졌다. 찢기고 멍들고 피폐해져 갔다.


즐거움이 무엇인지, 기쁨은 어떤 것인지, 보람이란 것은 어디에 있으며, 사랑은 누가 가져갔는지, 마음은 만신창이에 표정 없이 지내고 있다.


사실 이 일이 터지 며칠 전에는 쉬는 시간 복도에서 지도하시는 선생님을 향해( "시발" ) 욕설을 퍼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으신 분 있었다.


난 이번 달 초에 겪었다. 수업 중 큐브 놀이 삼매경에 빠진 아이의 큐브를  잠시 압수했다가 "시발년"이란 욕을 들었다.


또 어떤 분 수업시간에 입에 담지 못할 비속어 메들리힘들어하셨다.

차라리 지도를 안 하고 귀머거리, 벙어리로 지내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쉬운 길을 가는 것이다.


아이들은  말한다. "선생님에게 한 욕이 아닌데요?"


학부모들도 말한다. "우리 애는 집에서 욕을 하지 않아요."  


그럼, 학교에서 욕을 가르쳐 복도나 교실에서 남발하도록 허용하는 것인가?


인간발달학에 따르면 언어 습득은 모방학습에서 시작한다. 가정이 최초의 학습터인 것이다.


영유아기를 거쳐 900 단어 이상을  구사하는 유치원생은 형용사와 동사도 쓸 수 있다.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이르러 사회성이 발달하면서 친구 영향을  많이 받아 모방학습으로 욕을 따라 할 수 있지만 일상생활에 늘 비속어를 쓰지 않는다.


욕설을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아이는  욕에 노출된 환경에서 자라온 것이다.

한 번은 욕쟁이 학생과 상담 후 그 보호자에게 참다못해 전화를  한 적이 있다.

"ㅇㅇ 아버지, 집에서 욕설을 그만하십시오"


어떤 분들은 거주지에 따라 수준 차이가 난다고 말하지만 난 생각이 다르다. 예를 들면 빌라촌이나 원룸지역, 구도심 아파트촌 지역 아이들은 교복을 잘 변형해 입고, 화장도 짙고 욕도 잘한다고.

나도 빌라에서 살아봤지만 욕쟁이로 성장하지 않았다.


더 이상 욕설 물타기를 두고 볼 수 없어 교권침해로 간주하고 지도하겠다 공지했다.

시발년이라고 욕했던 아이는 그다음 날 찾아와 잘못했다고 말했다.


나는 여러 차례 내상을 깊게 얻어 상담치료를 예약했다.


오늘 결석한 아이 자리에 누가 앉아 있길래 궁금한 자세로 내려다봤다.

3초였지만 두 달째 표정 없는 얼굴이 미소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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