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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그녀 이야기

버리고 간 양심

by 여행강타

구정 연휴에 있었던 일이다.

연휴가 시작되면서부터 진눈깨비로 시작해 함박눈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시골에 어르신들을 뵈러 내려가지는 않지만 식구들의 먹을 명절 음식 장만을 하다 보니 운동할 타임밍을 놓쳐 명절 전 날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운동할 채비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위층에서 내려온 엘리베이터 안에는 50대로 보이는 여자가 제법 많은 양의 음식물 쓰레기가 담겨있는 봉투를 들고 있었고,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는 해외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엄마와 아들 관계로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가는 방향이 같아 그들의 뒤에서 걷고 있었다. 엄마로 보이는 그 여자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들고 내려온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통 위에 척하니 올려놓고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차를 타고 가버렸다.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뭐지? 뭐야?' 뭐 저런 게 다 있어? 뭔 생각으로 저리 행동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쓰레기 종량제를 실시하고 있지 않은 곳도 있긴 하지만 웬만한 아파트는 다 종량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아파트 또한 오래전부터 종량제를 실시하고 있어 통 앞에 부착되어 있는 카드 투입구에 카드를 꽂아야만 쓰레기 통 뚜껑이 열리고 음식물을 버릴 수가 있다. 종량제를 실시하고 있는 곳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배출해야 하는 이유는 환경을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지속 가능한 쾌적한 삶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뿐만 아니라 모두의 삶 속에서 지켜야 하는 필수적인 실천이기도 하다.


기껏 분리해서 들고 내려왔으면 마지막까지 잘 처리하고 떠날 것이지 통 위에 올려놓고 가는 것은 무슨 경우인지, 행여나 주민들 불편할까 봐 경비 아저씨들이 수시로 닦고 물청소 함으로써 버리는데 아무 불편사항이 없거늘, 아들이 함께하는 과정에서도 그리 행동한다는 것은 평상시에도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텐데, 그 아들은 그런 행동들을 보며 성장할 것이고, 자신도 비슷한 방식으로 양심을 저버리며 사회적 규범을 무시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크게 비약해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9시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성장과정이 어땠길래를 생각한다.


이번 한번쯤이야, 쓰레기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작은 일들이 모여 결국 큰 문제를 만들 수 있고 본인이 생각한 한 번쯤이야가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과 불쾌감을 주는 것이다.


양심은 작은 일들에서 비롯되고 그것들이 쌓여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 된다. 대부분 큰 문제에 집중하느라 작은 문제에 소홀히 하게 되는데 그 작은 문제들이 큰 문제로 변할 때 이미 늦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양심이란 단지 '올바르게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을 인지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공동체의 규범을 어기고, 남들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사소한 선택들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규범들을 지켜나가는 중요한 부분이다. 양심을 버리고 편리함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결국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그 여성은 자신이 지켜야 할 책임을 '작은 일'로 간주했을지 모르지만, 규범을 무시한 것이고 약속을 깬 것이며 양심을 버린 것이다.


늦게라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공동체 일원으로 어떤 생각과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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