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 삼켜진, 부서져가는 마음들
삶의 무게는 고스란히 엄마의 어깨에 내려앉았고,
엄마는 밥값도 아껴가며 하루 종일 일터를 전전했다.
점점 텅 비어 가는 냉장고, 식탁 위엔 늘 비슷한 반찬, 그리고 빈집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둘이 있었다.
퇴근 후 아버지를 기다리던 시간,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엄마의 미소,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뛰어나가 마중하던 아이들의 왁자지껄함은 언젠가부터 물안개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남은 건 온기 없는 주방과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커져버린 적막뿐이었다.
그 적막이 언젠가 나를 잡아먹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오빠와 나는 그런 날들을 조용히 견디며 자라야만 했다.
어릴 적 기억 중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해가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세발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하염없이 돌던 어느 저녁이다.
아파트 야시장의 불빛 아래, 가족과 함께 웃고 떠드는 아이들 틈 사이로 나는 작은 페달을 힘껏 밟으며 엄마의 잔상을 좇고 있었다.
그 시간은 마치 갯벌에 홀로 남겨진 작은 조각배처럼, 다가오는 파도에 어디로 떠밀릴지 모르는 불안 속에 있었다.
바다는 잔잔했지만, 그 고요는 평화가 아니라 누군가를 기다리는 쓸쓸한 정적이었다.
또 어느 날은,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수돗물을 컵에 받아 마셨는데, 그 물맛은 차갑고 텁텁해서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입안에 맴도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 물맛이 싫었던 건 단순히 맛 때문이 아니었다. 언제나 엄마가 끊이지 않게 채워두던 보리차의 따뜻한 맛, 그 따뜻함이 그리웠던 것 같다.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던 밤이면, 오빠와 이불 속에서 꼭 껴안고 함께 울기도 했다.
무서운 건 천둥소리보다도 그날따라 더 깊어지는 집안의 정적과 돌아오지 않는 엄마의 빈자리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의지한 채, 낮보다 긴 밤을 견디며 자랐다. 함께 있었지만,
어린 마음에 각자 다른 어둠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같은 파도를 맞았지만, 다른 깊이로 가라앉았던 두 조각배처럼.